"그 수갑 열쇠, 나한테 던지십시오. 내가 직접 이 문을 열고 나갈 테니까."
내 손바닥은 허공을 향해 굳건히 뻗어 있었다.
임철주 형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억센 손가락이 가죽 권총집을 스치고 지나가, 바지 주머니 속에서 작은 금속 조각을 움켜쥐었다. 짤랑이는 소리가 취조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철제 테이블 위로 은색 열쇠가 미끄러졌다. 탁,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열쇠가 내 손끝에 닿았다.
"하 프로, 미친 짓이야. 저 바깥에는 서장이 보낸 무장 진압 대원들이 깔렸어. 문을 여는 순간 자네 대가리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고."
임철주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목울대를 크게 들썩이는 그의 호흡에서 극도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25년 차 베테랑 형사조차 이 밀실의 폐쇄적인 압박감과 바깥의 군화 소리 앞에서는 입안이 타들어 가는 모양이었다.
"총알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명분은 사람을 가립니다."
나는 열쇠를 쥐고 왼손목의 수갑 홈에 밀어 넣었다. 째깍.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경쾌한 금속음이 내 귓가를 스쳤다. 구속구가 풀려나가는 서늘한 감각이 손목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이어서 오른손목의 수갑마저 가볍게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다리의 감각은 여전히 죽어 있었다. 마비된 하반신은 휠체어 시트에 무겁게 짓눌려 있었지만, 내 척추를 타고 흐르는 신경 세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쾅!
취조실 철문이 비명 같은 쇠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우그러졌다. 문틈 사이로 붉은색 경보등의 날카로운 명도가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쏟아져 들어왔다. 일방향 거울 너머의 복도는 이미 서부경찰서장이 보낸 진압 부대의 발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살기가 방음벽을 뚫고 내 전두엽을 자극했다.
"임 형사님, 내 뒤에 서십시오."
나는 휠체어 바퀴를 밀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뭐? 미쳤어? 저 새끼들은 지금 자네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지도 몰라!"
"그러니 내가 나가야 하는 겁니다."
문손잡이가 완전히 꺾이며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복도의 공기가 취조실 내부의 가라앉은 열기를 단숨에 쓸어내렸다. 검은색 방탄조끼와 진압용 헬멧을 착용한 대원 수십 명이 일제히 총구를 들이밀었다. 총구 끝에 달린 전술 라이트의 강렬한 백색광이 내 눈을 찔러왔다.
"피의자 하태신, 움직이지 마라! 손 머리 위로 올려!"
진압대의 대장인 최 팀장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의 검지손가락은 이미 소총의 방아쇠울 안쪽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미세한 떨림 없음. 살의보다는 기계적인 명령 이행에 치우친 정교한 자세였다.
내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기억 장부'의 기하학적 연산 메커니즘이 내 시야 위로 수치들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최 팀장: 맥박수 112bpm. 방아쇠 압력 임계치 85%. 좌측 어깨의 미세한 하중 쏠림 - 최근 훈련 중 부상 흔적.] [대원 A, B: 조준점의 흔들림 4mm 이하. 그러나 시선은 피의자의 머리가 아닌 휠체어 바퀴에 고정됨. 심리적 저항감 감지.] [주파수 분석: 진압대 무전기 수신기에서 흘러나오는 서장의 목소리. '즉각 제압해라' 국면의 톤인톤 비율 92%.]
나는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결코 항복의 제스처가 아니었다. 상대를 안심시키고 그들의 주의를 완벽히 통제하기 위한 철저한 계산의 결과였다.
"최 팀장님."
내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전술 라이트의 백색광 속에서도 나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최 팀장의 헬멧 고글 너머를 응시했다.
"서장이 내린 이송 명령서의 일련번호를 확인하셨습니까? 오늘 자 서부서 보안 일지에 기재되지 않은, 사적으로 위조된 명령서입니다."
최 팀장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그의 지향 조준점이 0.5밀리미터 흐트러졌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우리는 상부의 정당한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거다."
"정당한 지시라."
나는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 냉소적인 소리에 진압대원들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찰 공무원법 제57조 복종의 의무. 하지만 직무상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최 팀장님, 당신은 3년 전 서장의 음주운전 사고를 덮어주는 대가로 팀장 자리를 보전받았지 않습니까. 그 대가가 이번에는 불법 감금과 살인 방조입니까?"
"너, 어떻게 그걸……!"
최 팀장의 호흡이 급격히 가빠졌다. 맥박수 수치가 140bpm을 돌파하며 붉은 경고등처럼 깜빡였다. 주변의 대원들이 동요하는 움직임이 그들의 방탄조끼 너머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서장은 지금 자신의 비리 장부와 백야 재단의 유착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당신들을 사병처럼 부리고 있는 겁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죽는다면, 당신들이 짊어져야 할 죄명은 직권남용이 아니라 살인죄의 공범이 될 겁니다. 검사 강민우가 이미 피의자 신세로 전락해 취조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도 서장의 썩은 동반줄을 잡고 싶습니까?"
임철주가 내 뒤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높이 치켜들었다. 화면에는 서장이 강민우와 주고받은 살인 사주 문자 메시지와 불법 자금 흐름의 증거들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전원, 총구 내려!"
임철주가 호통을 쳤다.
"이건 임시 기소 절차도 거치지 않은 불법 진압이다! 서장의 개인적인 입막음용 사냥개 짓을 언제까지 받아줄 셈이냐! 최 팀장, 네 녀석도 서장과 같이 감방에 들어가고 싶어?"
대원들의 조준점이 서서히 바닥을 향해 꺾이기 시작했다. 최 팀장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그의 조준경 위로 툭 떨어졌다. 완벽한 붕괴였다.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내 정교한 프로파일링 정보 한 조각에 의해 완전히 오작동을 일으키며 멈춰 선 순간이었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굴려 그들의 포위망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대원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내 좌우로 비켜섰다.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시시한 인형극이었다.
"가시죠, 임 형사님. 진짜 사냥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막아서는 자 없이 서부경찰서의 숨 막히는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지하 주차장의 공기는 서늘하고 습했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매연이 뒤섞인 어둠 속에서, 노란색 비상등을 깜빡이는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서서히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끼이익.
차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운전석에 앉은 서은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헝클어진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 프로님! 진짜 죽다 살아났다고요! 그 빌어먹을 괴한 놈들이 안방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바람에……!"
은하는 투덜거리면서도 재빠르게 차량 뒷좌석의 리프트를 내렸다. 임철주가 내 휠체어를 밀어 차량 내부로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승합차는 굉음을 내며 주차장 경사로를 치고 올라갔다.
"장부는 확보했나?"
내가 묻자, 은하는 조수석 시트에 던져두었던 가죽 가방을 내 무릎 위로 던졌다.
"당연하죠. 내가 누구인데요. 그 액자 뒤에 숨겨진 게 진짜 백야 재단의 핵심 비자금 명장부더라고요. 그리고…… 이것도 같이 챙겼어요."
은하가 가방 안에서 꺼내어 내민 것은 아주 작은 유리병이었다. 투명한 유리병 표면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지만, 안쪽에는 맑은 액체가 반쯤 차 있었다.
아내 한연희가 살해당하던 날 밤, 그녀의 개인 서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었던 인슐린 병이었다.
내 손가락이 차가운 유리병 표면을 감싸 쥐었다. 손끝에서 전달되는 아내의 마지막 흔적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은하 씨, 이 병 안의 성분 분석 결과는?"
은하가 노트북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백미러로 쳐다보았다.
"예상대로였어요. 그건 평범한 인슐린이 아니에요. 백야 재단이 고위층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환각을 유도하기 위해 극비리에 제조한 '신경 마비 성분'의 핵심 유기 화합물이에요. 아주 미량으로도 기억을 왜곡하고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무서운 물건이죠. 아내분이 이 성분을 분석해서 재단의 불법 약물 제조 혐의를 밝혀내려고 했던 거예요."
결정적 물증.
백야 재단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아내를 죽이고, 내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은폐하려 했던 진실의 핵심이 드디어 내 손안에서 완성되었다.
그 순간, 내 전두엽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화염이 피어오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발생했다.
"아아윽……!"
나도 모르게 신음을 뱉으며 관자놀이를 움켜쥐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지독한 고열과 함께, 내 머릿속의 기억 장부가 강제로 개방되는 대가가 청구되고 있었다.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며 하얗게 탈색되었다.
머릿속에서 소중한 기억 한 조각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내 연희와 함께 처음으로 떠났던 제주도 여행. 그 어스름한 저녁, 붉게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가 내 어깨에 기댔을 때 불어오던 짠 바람의 냄새와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내가 연희를 사랑한다고 처음 속삭였던 그 푸른 바다의 풍경이, 이제는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저 검은 공백으로만 남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내 눈빛은 그 상실의 고통을 딛고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하 프로! 괜찮아?"
임철주가 걱정스럽게 내 어깨를 짚었다. 나는 그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흘러내린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괜찮습니다. 가야 할 길이 명확해졌을 뿐입니다."
나는 은하의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하 씨, 백야 재단의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벌써 하고 있어요. 장부가 털린 걸 눈치챈 재단 수뇌부 놈들, 지금 완전히 패닉 상태예요. 해외 송금 경로가 전부 막히니까 자금을 세탁할 물리적 수단을 찾고 있어요."
은하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화면 위로 복잡한 전산 연산 그래프와 함께 인천 세관의 선박 출항 데이터가 겹쳐졌다.
[경고: 인천 제1부두, '블루 아일랜드 호' 출항 예정 시각 1시간 전.] [이상 징후: 세관 신고 절차 생략된 대형 컨테이너 차량 3대 진입 중.]
"이놈들, 도망치려는 거군요."
임철주가 주먹으로 대시보드를 쾅 내리쳤다.
"모든 증거와 비자금을 배에 싣고 바다로 나가서 증거를 인멸하려는 수작이야. 그리고 해외로 신분을 세탁해 영영 사라지겠지."
"그 배에 진범이 탑승합니다."
나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내 기억을 지운 그 진범. 강민우의 목덜미에 남아 있던 그 특유의 격자형(Grid) 흉터. 그것은 백야 재단의 최정예 해결사들이 공유하는 지옥의 표식이자, 아내의 피가 튀었던 그날 밤 현장에 있던 자의 낙인이다.
"인천 제1부두로 가십시오."
내 명령에 은하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빗길을 뚫고 질주하는 승합차의 전조등이 어두운 고속도로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우리는 사법의 통제를 벗어나,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이정표만을 바라보며 폭주하고 있었다. 공권력의 사슬을 스스로 끊어낸 지배자의 여유가 내 미소에 서려 있었다. 그들이 파놓은 함정은 이제 거꾸로 그들의 목을 조르는 교수형의 밧줄이 될 것이다.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거대한 진혼곡처럼 울려 퍼졌다.
마침내 승합차가 인천 제1부두의 황량한 컨테이너 야적장 구역으로 진입했다. 사방은 짙은 해무와 어둠에 가라앉아 있었고, 거대한 크레인들이 기괴한 괴수의 뼈대처럼 허공에 솟아 있었다.
은하는 라이트를 끄고 어둠 속에 차를 세웠다.
"저기예요. 제1부두 안쪽의 낡은 폐창고. 저 뒤편 선착장에 블루 아일랜드 호가 정박해 있어요."
나는 차 문을 열었다. 비릿한 짠내와 차가운 빗물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하반신의 무감각함 속에서도 심장만큼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임철주가 내 휠체어를 내리고, 나를 조심스럽게 안착시켰다.
우리는 어둠을 틈타 창고의 깨진 철문 틈새로 진입했다. 창고 안은 적막했다. 바닥에 고인 빗물 위로 우리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때였다.
쿵! 하는 육중한 쇠소리와 함께, 우리 뒤쪽의 창고 입구 셔터가 거칠게 내려앉았다.
완벽한 밀폐.
동시에, 창고 내부의 이층 난간과 어둠 속에 주차되어 있던 대형 차량 수십 대의 상향등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부우웅-!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백색의 전조등 불빛이 사방에서 쏟아지며 우리를 정면으로 조준했다. 광폭한 빛의 세례 속에서, 검은 우비를 입은 수십 명의 사내들이 무기를 든 채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쇠파이프와 가스총, 그리고 날카롭게 빛나는 군용 대검이 쥐어져 있었다.
그들의 맨 앞줄에 선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우비 모자를 벗었다. 그의 얼굴 위로, 전조등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일그러진 격자형(Grid) 흉터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