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터질 듯한 플래시 세례가 취조실의 회색 벽면을 하얗게 난도질했다. 카메라 렌즈들이 극도로 클로즈업한 것은 지퍼백 속에 갇힌 기괴한 형태의 가위였다. 날 끝이 독니처럼 휘어지고, 표면에는 무언가 단단한 유리에 반복적으로 쓸린 듯한 격자형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미제 위조 가위. 아내 한연희의 목을 꿰뚫었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살해 도구였다.

"그 가위가…… 왜 네 놈 손에 있는 거지?"

강민우 검사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졌다. 늘 칼날 같던 그의 단정한 가르마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썹 끝에 맺혔다. 그의 눈동자는 지퍼백 속의 금속 광채와 카메라 렌즈를 번갈아 오가며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 검사님."

나는 휠체어의 바퀴를 조금 더 앞으로 굴렸다. 차가운 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 가위는 내가 찾아낸 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취조실에 가두고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조작했던 수많은 가짜 증거물들, 그 이면에 실재하던 진짜 어둠이 뱉어낸 유물이지요."

"헛소리 마라! 그건 압수수색 목록에도 없던 물건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을 잃는다는 걸 모르는 건가?"

강민우가 탁상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른 것은 임철주 형사의 묵직한 손길이었다. 임철주는 이미 삼단봉을 집어넣은 채, 사냥감을 노려보는 늙은 야수처럼 강민우의 목덜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강 검사, 가만히 있어."

임철주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다.

"지금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라이브야. 여기서 움직이면 네가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꼴밖에 안 돼."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정전된 취조실 안을 메웠다. 나는 그 침묵의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 가위의 날에 새겨진 격자형 흉터는, 아내가 죽던 날 밤 범인이 들고 있던 특수한 도구가 유리에 긁히며 발생한 흔적입니다. 그리고 이 흔적은……."

나는 말을 멈추고 내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취조실 안의 푸르스름한 LED 액정이 깜빡였다. 이 신호는 서부경찰서 외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은하의 단말기로 즉각 전송되었다.

"지금부터 보여드릴 백야 재단의 진짜 얼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 취조실 한쪽 벽면에 걸려 있던 대형 모니터가 지직거리며 화면을 전환했다. 경찰 전산망도, 방송국의 중계 화면도 아니었다. 그것은 백야 재단이 그토록 감추고자 했던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 관리 원장이었다.

*스르륵.*

검은 화면 위로 수십 개의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가 조합된 계좌 번호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국민은행 4820-……, 스위스 크레디트 992-01-……, 싱가포르 DBS 883-……."

나는 화면에 표시되는 계좌 번호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하고 서늘한 어조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백야 재단이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고위 관료, 법조인,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송금해 온 가명 계좌들의 실시간 거래 내역입니다."

"하태신! 당장 멈춰!"

강민우가 단상 너머로 손을 뻗어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임철주가 그의 허리춤을 움켜쥐고 뒤로 강하게 잡아끌었다. 강민우의 구두 굽이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이 송금 목록의 가장 최근 내역을 보시죠."

나는 턱끝으로 모니터 우측 상단을 가리켰다.

"강민우 검사. 당신의 차명 계좌로 들어간 30억 원의 입금자명이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백야 메디컬'. 아내가 살해당하기 정확히 사흘 전의 일입니다. 아내가 재단의 비밀을 눈치채고 폭로하려 하자, 당신들은 아내를 제거하고 나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이 거대한 기획 수사를 시작한 겁니다."

기자들이 들고 있던 마이크가 강민우의 입 앞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강 검사님! 사실입니까? 백야 재단으로부터 30억 원을 수수하셨습니까?" "하 프로파일러의 주장이 사실인가요? 조작 수사를 기획하신 겁니까?"

강민우의 얼굴이 납처럼 차갑게 굳어갔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의 완벽주의적 가학성은 권력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순간, 한낱 찌질한 비겁함으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드리지요."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기억 장부'의 기하학적 수치들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전두엽 깊은 곳에서 정수리가 타들어 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뇌세포가 연소하는 고통. 소중한 무언가가 또다시 내 안에서 스러져 가고 있었다.

아내 연희와 함께 거닐었던 어느 가을날의 낙엽 밟는 소리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를 보며 지어주던 따스한 미소의 온도일까.

그 상실의 대가로 내 손에 쥐어진 진실의 사슬을, 나는 결코 놓지 않았다.

"아내가 살해당한 날 밤."

나는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며 눈을 떴다. 내 시선은 강민우의 동공 깊숙한 곳을 꿰뚫었다.

"현장에는 아내가 매일 복용하던 인슐린 병이 남아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것을 단순한 당뇨병 치료제로 치부하고 증거 목록에서 제외했지요. 하지만 그 병 속에 들어 있던 것은 인슐린이 아니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고요한 취조실에 잔혹하게 울려 퍼졌다.

"그 안에는 백야 재단이 극비리에 제조해 온 고위층 전용 불법 약물, 즉 뇌신경을 마비시키고 인위적인 가사 상태를 유도하는 특수 성분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죽기 직전, 자신의 인슐린 병에 그 약물의 샘플을 숨겨두었던 겁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그것을 찾아낼 것이라 믿고 말입니다."

강민우의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그의 가슴이 잘게 오르내리며 극도의 공포를 체현하고 있었다.

"그 약물은 백야 재단이 대한민국 정재계 인사들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는 핑계로 그들의 약점을 잡고 휘두르던 결정적 무기였습니다. 아내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그들의 비밀 심리 치료를 담당하다가, 이 추악한 약물 제조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때, 모니터의 화면이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잉- 위잉-*

붉은색 경고등이 모니터 화면 전체를 채웠다. 서은하의 해킹 포트가 백야 재단의 핵심 금융 데이터베이스를 완전히 장악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백야 재단의 자금 동맥을 끊겠습니다."

나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화면 우측에 표시된 실시간 통계 차트가 나타났다. 백야 재단이 보유한 유령 회사들과 페이퍼 컴퍼니들의 자산 가치가 초 단위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1,000억, 800억, 500억…… 숫자가 아래로 곤두박질칠 때마다 취조실 안에는 비현실적인 침묵이 내려앉았다.

"실시간 자금 세탁 경로를 추적해 전 세계 금융감독원에 동시 송출하고 있습니다. 불법 세탁 자금으로 판명된 재단의 모든 자산은 이 시간부로 동결됩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생방송 라이브 화면 속에서, 기득권의 거대한 성채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체포당해 휠체어에 갇힌 피의자가, 자신을 가둔 자들의 심장부를 실시간으로 난도질하는 광경. 그것은 단순한 반격이 아닌, 신성 모독에 가까운 지배였다.

강민우는 무릎을 꿇듯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의 손이 콘크리트 바닥을 쓸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아직 끝내기엔 이릅니다, 강 검사님."

나는 스마트 워치의 화면을 쓸어 넘겼다.

"서은하 요원이 확보한 백야 재단의 사설 연명 치료 실험 리포트입니다."

모니터에 수십 장의 문서 파일들이 나열되었다. 인체 실험 대상자들의 명단,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약물에 종속되어 재단의 꼭두각시가 되었는지가 상세히 기록된 비밀 보고서였다.

"이 리포트가 대중에 공개된 이상, 백야 재단이 그동안 법망을 피해 구축해 온 모든 의료 재단 설립 허가와 법적 면죄부는 원천 무효가 될 겁니다. 당신들이 믿고 있던 법률적 방패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임철주가 강민우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채웠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전된 방 안에 서글프게 퍼졌다.

"강민우. 넌 끝났어."

임철주가 차갑게 뱉었다. 강민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완벽한 승리였다. 취조실이라는 밀실에서 가해진 나의 정교한 메스는 백야 재단의 가장 깊고 어두운 혈관을 정확히 끊어냈다.

하지만 내 전두엽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상실감은 승리의 온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반격을 위해 내 기억 장부의 수치를 무리하게 가동한 대가.

머릿속에서 연희의 목소리가 조금 더 아스라이 멀어졌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특유의 억양과 잔향이, 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구체적인 파형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지옥으로 진범을 보내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강민우의 품 안에서 날카로운 진동음이 울렸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임철주가 강민우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에는 발신 번호 제한 표시가 떠 있었다. 임철주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철주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스피커폰을 켰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정제된 기계음처럼 차갑고 기괴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백야 재단의 수뇌부 중 한 명임이 틀림없었다.

- "하태신 프로파일러."

목소리는 방송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깃털만큼의 동요도 없었다.

- "과연 천재답군. 우리의 숨통을 이토록 정교하게 조여올 줄은 몰랐네. 하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어."

나는 휠체어 바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 "자네 아내, 한연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사실을 기억하나? 아니, 기억하지 못하겠지. 자네 머릿속은 이미 반쯤 타버렸을 테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서,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내 연희의 목소리였다.

- "태신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 사람의 뇌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어요. 내가…… 내가 다 안고 갈 테니까, 제발 그 사람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 사람이 나를 잊어버려도 상관없어요……."

울먹이는 연희의 목소리가 취조실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내 온몸의 피가 일시에 얼어붙는 것 같았다.

- "우리가 가진 이 녹취 파일의 뒷부분에는, 자네가 평생을 바쳐도 감당하지 못할 진실이 담겨 있지. 아내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자네가 왜 그날 밤의 기억을 잃었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가 말일세."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잔인하게 번뜩였다.

- "이 파일을 완본으로 듣고 싶다면, 내일 오전까지 자네가 가진 진짜 장부를 가지고 지정된 곳으로 혼자 오게. 만약 경찰이나 그 해커 계집을 움직인다면…… 이 녹취 파일은 자네 아내가 자네를 파멸시키기 위해 우리와 공모했다는 증거로 전 세상에 뿌려질 걸세. 선택하게, 하태신."

*뚝.*

전화가 끊겼다. 취조실 안은 다시 정적 속으로 가라앉았다.

카메라의 빨간 녹화 등이 나를 향해 기괴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내 전두엽의 깊은 심연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아내의 마지막 절규가 환청처럼 맴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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