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삐이이이이—!

천장을 찢는 적색 경보음이 밀폐된 주방을 가득 채웠다. 최도현이 억지로 꺾어놓은 수동 배출 밸브에서는 고온의 가스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왔다. 폭발의 여파로 주방 바닥은 이미 시커먼 그을음과 파편으로 덮여 있었다. 매캐한 탄내가 콧구멍을 찔렀다. 허파가 쪼그라드는 감각과 함께 목구멍이 턱 막혔다.

진석은 정면의 허공을 응시했다. 시야에 붉은색 경고 박스가 점멸했다.

[시스템 경고: 가스 누출 및 산소 결핍] * 가스 누출 농도: 4.8% (폭발 하한계 도달 92%) * 산소 잔여량: 11.2% * 남은 시간: 142초 * 권장 행동: 메인 가스 공급관 수동 차단

"진석 씨! 문이 안 열려요! 비켜서요!"

철문 너머에서 연우가 문고리를 쇠파이프로 내리치는 둔탁한 금속음이 울렸다. 하지만 진석은 문으로 향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스가 계속 차오르면 문이 열리는 순간 산소 공급으로 인한 2차 분진 폭발이 발생한다. 물리학적 팩트였다.

진석은 비틀거리며 가열기 뒤편의 메인 배관으로 몸을 던졌다. 뜨거운 열기가 뺨을 그슬렸다.

[시스템 가이드: 배관 제어] * 메인 밸브 위치: 우측 하단 45도 방향 * 안전 잠금 해제 필요 압력: 15kgf/㎠ * 조치: 수동 레버를 시계 방향으로 270도 회전 (3회 연속 수행)

쇠파이프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황동 밸브가 눈에 들어왔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을 뻗었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지직 소리와 함께 극심한 통증이 뇌를 때렸다. 진석은 이를 악물었다. 감정을 지운 채 오직 시스템이 제시하는 수치에만 집중했다.

철컥. 스으으읍.

첫 번째 회전. 배관 내부에서 쿨럭이는 소리가 났다.

[밸브 폐쇄 진행률: 33%]

"강진석... 너, 너 죽어..."

바닥에 쓰러진 최도현이 그을린 얼굴로 신음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풀려 있었다. 진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번째 회전. 황동 레버가 뻑뻑하게 저항했다. 악력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손바닥의 가죽이 찢기며 붉은 피가 뜨거운 배관 표면에서 즉각 증발했다.

철컥.

[밸브 폐쇄 진행률: 66%]

화재 경보기가 고막을 마비시킬 듯 울려댔다. 가스 흡입으로 인해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진석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레버를 끝까지 돌려 잠갔다.

달각.

[가스 공급 차단 완료] * 가스 누출 농도 감소 중: 4.8% -> 3.1% * 폭발 위험성 해제

"후우, 후웁..."

가스의 배출음이 잦아들었다. 진석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의 화상이 욱신거렸지만, 쉴 틈은 없었다. 그는 쓰러진 최도현의 품과 바닥을 훑었다. 불길에 반쯤 그슬린 서류 가방이 보였다. 가방의 지퍼를 찢듯이 열자, 두꺼운 계약서 뭉치가 쏟아졌다.

진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계약서 표지에 선명하게 박힌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입산 대체 소밀 감미료(B-4) 독점 공급 계약서] * 서명인: 대성 F&B 총괄 상무 배선우 * 대상 물질: 메틸-옥시-카르보닐 유도체 (국내 미승인 발암 위험 물질)

진석은 망설임 없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고해상도 카메라로 계약서의 전 페이지를 빠르게 스캔했다.

[시스템 스캔 완료] * 문서명: B-4 수입 공급 계약서 원본 * 법적 효력: 100% (양사 법인인감 날인 확인) * 증거 데이터 저장 완료 (보안 클라우드 동기화)

철문이 굉음과 함께 뜯겨 나갔다. 연우가 소방 도끼를 든 건물 보안요원들과 함께 주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진석 씨!"

연우가 진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석은 그을린 손으로 스캔이 완료된 계약서 원본을 연우의 품에 안겨주었다.

"확보했습니다. 배선우의 숨통을 끊을 물증입니다."

진석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두 시간 뒤, 서초동의 한연우 법률사무소.

주방의 유독가스를 마신 탓에 진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다. 왼손에는 흰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주방에서 수거한 타버린 서류들과 연우가 보관해 오던 파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연우는 가방 깊숙한 곳에서 낡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봉투의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겉면에는 '대성 F&B 특허 이의 신청 자문서'라는 글자가 빛바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이건 제 아버지가 대성 F&B의 레시피 갈취 카르텔에 저항하다가 기소당하기 직전까지 작성하셨던 미완성 법률 자문서예요."

연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버지는 대성이 가맹점주들의 한식 레시피를 우회 등록하는 수법을 완전히 파악하고 계셨어요. 하지만 대성의 전관 변호사들이 압박을 시작하자 법원에 제출도 못 하고 기각당하셨죠. 여기에 대성 F&B의 특허 우회 출원 방식과 선행 기술 분해도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진석은 자문서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시스템 분석 가동] * 분석 대상: 한태수 변호사 유작 법률 자문서 * 핵심 데이터: 대성 F&B 특허 제201X-XXXX호에 대한 선행 기술 문헌 일치율 98.7% * 적용 법조: 특허법 제62조(특허거절결정) 및 제133조(특허무효심판)

"완벽합니다."

진석이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자문서에 기록된 선행 기술 데이터와 우리가 가진 특허 무효 소송의 연결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대성이 자신들의 독점 기술이라고 주장하던 한식 소스 레시피 14종은 전부 무효화됩니다."

진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태블릿 화면을 켜고, 과거 최도현의 플래그십 매장에서 은밀히 스캔해 두었던 식품위생 데이터를 띄웠다.

[최도현 플래그십 매장 위생 오염도 분석] * 검출 균주: 낙산균 (Clostridium butyricum) 오염도 기준치 450% 초과 * 조리 도구 표면 세균 수치: 8,400 RLU (기준치: 200 RLU 이하) * 유통기한 경과 식재료 점유율: 전체 재고의 34.2%

"최도현이 그동안 스타 셰프로 군림하며 운영하던 매장의 실태입니다. 낙산균 오염 데이터와 유통기한 위반 사실을 식약처 위생 표준 점검 부서에 정식 신고서로 접수하겠습니다. 단순한 폭로가 아닙니다. 식품위생법 제4조 및 제72조에 의거한 즉각적인 영업정지 및 행정처분 대상입니다."

연우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거기에 더해, 민동현 셰프님이 주신 이 데이터가 마지막 쐐기를 박을 겁니다."

진석은 민동현 셰프에게 전수받은 전통 한식 미생물 발효액 종균 데이터 시트를 테이블 중앙에 놓았다.

[전통 한식 미생물 발효액 종균 분석 결과] * 주요 성분: 천연 단백질 분해 효소 (Protease) 활성도 99.4% * 방부 효과: 화학 보존제 대비 3.2배 우수 * 특이 사항: 대성 F&B가 사용한 유해 대체 감미료(B-4)의 독성을 분자 단위에서 중화 및 대체 가능

"배선우가 쓴 대체 소밀 감미료 B-4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입한 유독 물질입니다. 반면 민 셰프님의 종균 데이터는 화학 첨가물 없이도 완벽한 단맛과 보존력을 낼 수 있음을 입증하는 과학적 반증 자료입니다. 대성이 '화학 소스 없이는 한식의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던 논리를 정면으로 박살 낼 수 있습니다."

진석의 눈동자에 기계적인 차가움이 서렸다.

"한 변호사님. 준비된 모든 자료를 공정거래위원회 지적재산부서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에 동시에 투고하십시오. 배선우가 숨길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연우는 서류들을 모아 가방에 넣었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 즉시 접수하겠습니다. 오늘부로 대성의 카르텔은 법적으로 종말입니다."

***

다음 날 오전 10시.

대성 F&B 본사 총괄상무실. 배선우는 창밖의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며 비서가 올린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최도현의 플래그십 매장에 식약처 단속반이 들이닥쳤다고?"

"예, 그렇습니다, 상무님. 단순 불시 검문이 아닙니다. 제보자가 구체적인 낙산균 오염 수치와 유통기한 위반 식재료의 보관 위치가 적힌 내부 도면까지 제출했다고 합니다. 현재 매장은 압수수색 및 무기한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배선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쓰레기 같은 놈.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해서 꼬리를 잡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인터넷에 속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비서가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건넸다. 화면에는 대형 언론사의 단독 보도가 붉은 헤드라인으로 박혀 있었다.

[ 단독 ] 대성 F&B, 국내 미승인 '발암 위험 대체 감미료 B-4' 불법 수입 및 조직적 유통 정황 포착... 식약처·공정위 전격 조사 착수

"이게 무슨..."

배선우의 안색이 처음으로 흙빛으로 변했다.

"계약서... 수입 계약서 원본은 최도현이 불태웠다고 보고하지 않았나?"

"그, 그게... 현장에서 강진석이 계약서 파일을 확보해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와 식약처에 스캔본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분석 결과 계약서의 화학적 데이터와 대성 F&B 법인 인감이 100% 일치하여, 행정 처분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비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면에 걸린 대성 F&B의 실시간 주가 전광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성 F&B (005230) 실시간 주가 현황] * 현재가: 42,000원 (▼ 18,000원, -30.00% 하한가) * 거래량: 4,850,000주 (매도 잔량 12,000,000주 폭주) * 상태: 사이드카 발동 및 거래 일시 정지

"하한가... 30% 폭락입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작아졌다.

"주주들이 본사 로비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대성 F&B의 브랜드 신뢰도가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기관 투자자들도 자금 회수를 통보하고 있습니다."

배선우는 책상 위의 크리스탈 패이퍼웨이트를 바닥으로 던졌다. 쨍그랑하는 파편 소리가 넓은 집무실을 울렸다.

"강진석... 하찮은 주방 보조 새끼가 내 목을 죄어오겠다고?"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굴렸다. 대성 F&B의 지주사 지분을 지켜내지 못하면 그룹 후계자 구도에서 영원히 탈락한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방어하고, 강진석의 기세를 꺾을 마지막 카드가 필요했다.

배선우는 수화기를 들었다. 수신인은 대형 사모펀드의 수장이자 사설 금융 카르텔의 우두머리였다.

"나 배선우요. 지금 즉시 대성 F&B의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무자본 무차입 공매도 물량을 수색해서 띄우시오. 타겟은 강진석이 최근 설립한 신생 법인 '진석 F&B'다."

그의 목소리가 뱀처럼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그놈들의 주식 가치를 바닥으로 후려쳐서 역으로 흡수합병한다. 지분 연맹단을 소환해라. 내일 아침 개장과 동시에 공시를 띄운다."

배선우는 전화를 끊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았다.

화면 속에는 '진석 F&B 영업 정지 및 적대적 인수합병 검토 공시'의 초안이 작성되고 있었다. 대기업의 거대한 자본력이 마지막 발악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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