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웅성거리는 탁음과 기름때 찌든 등불 아래, 흑풍객잔(黑風客棧)의 밤은 탁했고 비린내가 났다. 강호의 밑바닥을 기는 무리들이 내뿜는 탁한 담배 연기와 침 튀기는 웃음소리 속에서, 당신은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 식어버린 찻잔을 만지작거린다. 이십 년의 세월 동안 동굴 속에서 홀로 삼켰던 한설(寒雪)과 고독에 비하면, 속세의 흙바람은 지독하리만치 쓰고도 매웠다.

만경창파(萬頃蒼波)를 헤쳐 온 서늘한 눈빛이 가뭇없이 흔들린다. 당신의 손끝에는 아직도 만년한철로 제련된 고검(古劍)의 냉기가 서려 있다. 검 끝에 맺힌 것은 한 서린 세월이자, 기어이 토해내야 할 피의 서약이다.

그때, 인근 탁자에서 흘러나오는 칼칼한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스친다. 사독문(蛇毒門). 그 이름이 고막을 찌르는 순간, 가슴속 깊은 심연에서 가느다란 검명(劍鳴)이 울린다. 멸가(滅家)의 그 처절했던 밤, 가문의 붉은 피로 제단을 쌓았던 원수들 중 하나. 그들이 마침내 당신이 나고 자란 가문의 옛 영토, 한림곡(寒林谷)을 무단으로 강점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곳은 본래 사계절 내내 하얀 매화가 지지 않던 고결한 고향이었으나, 이제는 살모사의 독기로 가득 찬 마굴로 변해버린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기형(氣形)을 감추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 억눌린 살기가 소리 없이 허공을 갈랐다. 탁자 위의 빈 잔 표면에 파르스름하게 하얀 서리가 내려앉는다. 마치 얼어붙은 강물 밑을 흐르는 칼날 같은 서늘한 검기(劍氣)였다.

"낙엽이 지기 전에 서리가 내렸군요."

스스스, 소리도 없이 다가와 찻주전자를 기울이는 그림자가 있었다. 남루한 베옷을 입고 머리를 대충 땋아 내린 객잔의 시비(侍婢). 그러나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는 그녀의 기막힌 신법(身法)은 예사롭지 않은 무공의 깊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붉게 물든 찻물이 당신의 잔으로 쏟아지는 사이, 시비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당신의 손가락을 응시한다.

"설풍(雪風)을 품은 칼날은 쉽게 감출 수 없는 법.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곡소리가 이 찻잔 안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사독문의 숨겨진 명맥을 끊고 싶으십니까?"

낮게 깔린 그녀의 목소리는 은침처럼 차갑고도 날카롭게 귀를 파고든다. 하오문의 정보는 강호의 실핏줄과 같으나, 어둠 속의 거래에는 늘 피비린내 나는 대가가 따르는 법. 당신의 손가락이 고검의 자루를 어루만진다. 멸문의 원한을 풀기 위한 복수의 첫걸음, 당신의 검은 이제 누구의 목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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