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득.
고막을 찢고 들어온 것은 단순한 파열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관절이 비틀리고, 인대가 가닥가닥 끊어지며 뼈가 어긋날 때 발생하는 날것의 비명이었다.
"아아아아악!!!"
백지훈의 상체가 활처럼 꺾였다. 녹색 잔디 위로 흩뿌려지는 땀방울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 잔인하게 부서졌다. 녀석의 왼 발목을 짓밟은 드래곤즈의 센터백, 안드레는 짐짓 중심을 잃고 넘어진 척하며 능청스럽게 양손을 들어 올렸다. 고의가 아니라는 듯한 비열한 몸짓.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사냥감을 완벽하게 불구로 만들었다는 맹수의 안도감이 그 더러운 상판때기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 개새끼가……!"
강태성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용암 같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머릿속의 모든 사고 회로가 일순간 정지했다. 완벽주의라는 핑계로 스스로를 가두었던 이성의 둑이 단숨에 터져 나갔다.
태성은 테크니컬 에리어를 가르고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감독님! 안 됩니다! 들어가시면 퇴장입니다!"
수석코치가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았지만, 태성의 거친 어깨짓 한 번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지금 퇴장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저기 쓰러져 울부짖는 녀석은 단순한 선수가 아니었다. 자신의 수명을 깎아 가며, 온갖 오물 속에서 건져 올린 FC 로드의 심장이자 태성 자신의 분신이었다.
"어이! 당장 비켜!"
태성이 거구의 안드레를 거칠게 밀쳐냈다. 안드레가 눈을 부릅뜨며 대치하려 했지만, 태성의 눈에 서린 서슬 퍼런 살기에 짓눌려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강 감독! 뭐 하는 짓이야! 벤치로 돌아가!"
드래곤즈의 감독 한재열이 터치라인 근처에서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묘한 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로드의 핵심 창 끝을 꺾어 놓았으니, 이제 승리는 제 것이라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태성은 한재열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잔디 위에서 흙을 움켜쥐고 신음하는 백지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훈아. 정신 차려. 내 목소리 들려?"
태성이 무릎을 꿇고 지훈의 상체를 일으켰다. 지훈의 이마에는 핏줄이 터질 듯 돋아나 있었고, 입술은 이미 피가 나도록 깨물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감, 독님…… 발목이…… 발목이 안 움직여요……."
독기만 남았던 녀석의 눈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축구를 빼앗기면 다시 그 지옥 같은 사채업자들의 구렁텅이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 녀석의 손이 태성의 옷자락을 찢어질 듯 움켜쥐었다.
그때 의무 트레이너 설민우가 구급 가방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지훈의 발목을 살폈다. 스타킹을 가위로 찢어내자, 이미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발목 관절이 드러났다. 외측 인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열되었고, 관절은 제 위치를 벗어나 있었다.
"심각합니다. 아탈구에 외상성 인대 완파예요.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이번 시즌은 물론이고, 선수 생명 자체가……."
설민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이성적인 데이터 만능주의자조차 이 참혹한 부상 앞에서는 평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시즌 아웃.'
그 단어가 태성의 뇌리를 때렸다. 여기서 지훈이 쓰러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 구단의 해체를 막는 것도, 한재열의 코를 납작하게 꺾어주는 것도, 그리고 백지훈이라는 천재를 세계에 증명하는 것도 전부 물거품이 된다.
태성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망막 위로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택티컬 레저(Tactical Ledger)'가 떠올랐다.
[대상: 백지훈 (FW)] [신체 상태: 좌측 족관절 외상성 인대 파열 및 아탈구 (심각)] [경기 수행 능력: 0% (불가)] [잔여 포텐셜 개화율: 42%]
붉게 점멸하는 경고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시스템은 냉혹하게 지훈의 파멸을 선언하고 있었다.
태성은 잇새로 붉은 침을 뱉어냈다. 인간 불신과 독선으로 가득 찬 그의 내면에서 비틀린 오기가 솟구쳤다.
'누구 맘대로 끝내.'
그는 택티컬 레저의 심부(深部)를 파고들었다. 숨겨진 기능, 구단 자본과 감독의 생명력을 극단적으로 치환하여 선수의 신체를 한계 돌파시키는 '긴급 전술 복구' 명령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설민우의 손이 태성의 손목을 강하게 쥐어왔다.
"강 감독님! 안 됩니다! 지금 페이스 칩이 미쳐 날뛰고 있어요! 심박수가 분당 160을 넘었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 보세요, 지금 당신 심장이 어떤지!"
민우는 자신의 품에서 특제로 조제된 한방 안정제 앰플을 꺼내 태성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당장 마셔요! 내가 경고했죠! 한 번만 더 그 미친 짓거리로 몸을 혹사하면, 그땐 안정제고 뭐고 심장이 그대로 멈춘다고 했습니다! 죽고 싶어서 이래요?!"
민우의 절규에 가까운 경고가 그라운드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태성은 차갑게 민우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깊은 안개 속처럼 흐려져 가고 있었지만, 의지만큼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민우야."
"감독님!"
"지훈이 다리가 여기서 부러지면, 내 심장이 뛰고 있어 봤자 아무 의미 없어. 난 실패자로 죽는 게 내 심장이 멈추는 것보다 더 끔찍해."
독설에 가까운 단호함이었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완벽한 승리를 갈구하는 광기. 태성은 민우를 밀쳐내고, 뇌 속에서 소리치는 시스템의 경고음을 강제로 짓눌렀다.
[경고: '긴급 전술 복구(한계 돌파)' 가동 시 시스템 스트레스 수치가 임계치(100%)를 초과합니다.] [사용자의 심장 급정지 예고 지표가 활성화됩니다.] [시각 동기화 오류 및 시신경 마비 페널티가 즉각 발생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진행해.'
태성은 망설임 없이 정신의 트리거를 당겼다.
콰아아앙!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날카로운 송곳으로 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극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터질 듯 팽창했다가, 이내 얼어붙는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목구멍에서 쇠 냄새가 훅 끼쳤다.
"끄윽……!"
태성의 입술체서 짙은 핏방울이 흘러내려 잔디를 적셨다.
동시에 눈앞의 세계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색채가 사라지고, 오직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잠식해 들어왔다. 시신경이 마비되며 눈앞의 백지훈의 얼굴조차 흐릿한 형체로만 보였다.
하지만 태성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력을, 쪼그라드는 심장의 수명을 기꺼이 지훈의 발목에 때려 박았다.
[택티컬 레저 오버드라이브 가동.] [백지훈의 신체 데이터를 강제 복구합니다.] [스트레스 수치: 100% 도달.] [심장 급정지 경고 지표 1단계 진입.]
지훈의 발목을 감싸 쥐고 있던 태성의 손끝에서 미세한 청색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훈의 찢어진 인대와 어긋난 관절 사이로 스며들었다.
"아…… 아아?"
지훈이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발목을 지배하던 지옥 같은 고통이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뼈가 제자리를 찾아 맞춰지는 기괴한 진동과 함께, 파열되었던 인대가 미친 가속도로 재생되며 팽팽한 탄력을 되찾았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던 붓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지훈은 믿을 수 없다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부러졌다고 느꼈던 다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경기 전보다 더 가볍고 단단한 힘이 차오르고 있었다.
"서라."
태성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꺼질 듯 가냘팠다.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아 지훈의 대략적인 윤곽만을 바라보며, 태성은 억지로 몸바쳐 중심을 잡았다.
"서서, 저 오만한 새끼들의 대가리를 깨버려."
지훈은 태성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감독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기적의 대가로 감독이 무엇을 지불했는지.
지훈의 눈에 서려 있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광포한 살의로 치환되었다.
"……예. 짓밟아 버릴게요."
지훈이 스스로 들것을 밀쳐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기장 전체에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던 관중석은 물론이고, 드래곤즈의 벤치마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한재열 감독은 쥐고 있던 전술 보드를 떨어뜨릴 뻔했다.
"말도 안 돼…… 저 새끼가 어떻게 서 있는 거야?!"
한재열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주심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드레의 명백한 퇴장성 반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즈 측의 압박과 홈 어드밴티지로 인해 겨우 옐로카드 한 장으로 퉁치려던 참이었다. 지훈이 멀쩡히 일어나자, 주심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공을 파울 지점에 놓았다.
골대까지의 거리 26미터.
지훈이 공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방금 부상을 당했던 왼발을 디딤발로 삼아 공의 위치를 조정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사신 같았다.
상대 골키퍼와 수비 벽을 형성한 드래곤즈 선수들의 얼굴에 짙은 공포가 드리워졌다.
"야, 안드레. 너 제대로 밟은 거 맞아?" "분명히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단 말이다! 그런데 왜……!"
안드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눈앞에 서 있는 백지훈은 인간이 아니었다.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 악마의 형상이었다. 그들의 전술적 대형은 이미 지훈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기세와 불사의 투지 앞에 갈가리 찢겨 나가고 있었다.
지훈이 심호흡을 했다.
빰을 스치는 바람의 촉감, 잔디의 냄새, 그리고 벤치 앞에서 비틀거리며 서 있는 강태성 감독의 실루엣이 느껴졌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을 위해서.'
지훈이 질주했다.
그의 왼발이 잔디를 강하게 디뎠다. 대지를 울리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그의 오른발이 공의 하단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후려쳤다.
쾅!
공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듯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허공을 갈랐다. 드래곤즈의 수비벽이 황급히 뛰어올랐지만, 공은 그들의 머리 위를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낙차가 큰 궤적.
공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반대편 왼쪽 구석을 향해 뚝 떨어졌다. 골키퍼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지만, 그의 손끝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철썩!
공이 그물망의 상단 데드존에 박히며 찢어질 듯한 소리를 냈다.
골이었다.
완벽하고도 찬란한 역전 멀티 골.
경기장이 터질 듯한 함성으로 요동쳤다. FC 로드의 서포터즈들은 광란에 휩싸여 관중석을 뒤흔들었고, 드래곤즈의 수비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넋을 잃었다. 한재열 감독은 머리를 감싸 쥔 채 벤치 깊숙이 주저앉았다. 그의 완벽하다던 전술 철학이, 한 마리 야수의 투지 앞에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
지훈이 포효하며 벤치를 향해 달렸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 강태성만을 향하고 있었다. 동료 선수들이 그의 뒤를 쫓아 환호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벤치 앞의 강태성은 그 환호성을 들을 수 없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는 이미 완전한 암흑에 잠겨 있었다.
가슴속에서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이 마침내 멈춘 듯, 차가운 냉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뇌로 치솟았다. 뇌수로 공급되어야 할 혈류가 급격히 차단되며, 태성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감독님!!!"
달려오던 지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지워졌다.
태성의 몸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듯 벤치 앞 잔디 위로 천천히 쓰러졌다. 그의 귀에 지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지며, 의식의 끈이 툭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