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태고의 만년설이 휘몰아치는 곤륜산(崑崙山)의 정상, 만리장풍(萬里長風)이 서늘하게 일어 당신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발밑으로 구름이 바다처럼 깔려 있고, 그 너머로 인간사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한때는 한 줌의 사료를 주무르던 삼류 문파의 마부였다. 이제는 천하의 영웅호걸을 모두 무릎 꿇린, 단 한 명의 절대자다.

정사(正邪)의 무수히 많은 고수들이 흘린 피는 강이 되었고, 그들이 탐냈던 천룡여의주(天龍如意珠)를 비롯한 신화적 기연들은 지금 당신의 손안에 쥐어져 있다. 손끝을 스치는 영롱한 진기(眞氣)는 당장이라도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강성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저 창공의 달처럼 차갑게 식어 내린 지 오래다.

"지독한 진흙탕이었군."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백설(白雪)의 침묵 속으로 흩어진다. 은원(恩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는 다시 피를 부른다. 천하인들이 갈망하는 이 압도적인 힘과 기연들이 존재하는 한, 강호의 피바람은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그 탐욕의 고리를 끊어낼 자는 오직 이 힘의 주인이자 무림의 유일무이한 정점에 선 당신뿐이다.

스릉―.

천외천(天外天)의 신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달빛을 칼날로 쪼갠다. 당신은 내력을 끌어모은다. 신화적 기연들의 정수가 담긴 보옥들이 공중에 떠오르며 찬란한 빛의 기둥을 만들어낸다. 만고창연(萬古蒼烟)의 세월 동안 숨겨져 왔던 곤륜의 동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혜의 절벽 아래로 당신은 한 가닥 망설임도 없이 기연들을 밀어 넣는다.

우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거대한 봉인이 빙벽을 가로지른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수법으로 시전된 신선(神仙)의 봉인이다. 이제 이 기연들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자는 강호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연을 탐하던 자들의 헛된 야욕 또한 이 깊은 얼음의 함 속에 영원히 묻히리라.

검을 거두어 검집에 밀어 넣는 소리가 정막을 깨운다.

바람이 불어와 당신이 딛고 섰던 자리에 쌓인 눈을 흩뿌려, 남겨진 흔적마저 지워낸다. 세상은 이제 당신을 '태고 무신'의 신화로 기억할 것이다. 천하의 모든 영험한 기연을 독식하고 홀연히 서천(西天)으로 사라졌다는 전설.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당신은 칠흑 같은 밤하늘과 하나 되어 끝없는 설산의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휘영청 밝은 달만이 홀로 남아, 신선이 은거한 하얀 침묵의 영토를 비추고 있을 뿐이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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