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깨에서부터 엄숙하게 흘러내리는 크림빛 자카드 실크는 가혹할 정도로 꽉 조여진 코르셋 위로 섬세한 은빛 자수를 수놓아, 마치 살얼음이 얼어붙은 겨울 호수처럼 차가운 남빛 광택을 발합니다. 당신의 등 뒤를 길게 장식한 불어 가벼운 튤 레이스는 신부의 순결함 대신, 옥죄어오는 올가미처럼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협탁 위에 놓인 은 도금 트레이 위에는 황실 납품용으로 가공된 최고급 보르도 루비 포트 와인이 크리스탈 디캔터 속에서 숨죽이고 있습니다. 잔에 따르지도 않은 채 굳어버린 피처럼 검붉은 빛을 뿜어내는 그 액체는, 이 숨 막히는 침실의 차가운 정적을 기괴하게 대변할 뿐입니다.

당신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문가에 선 사내를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대공 에드윈. 그의 수려한 미간은 잔뜩 일그러져 있고, 이전 생에서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던 그 특유의 오만한 경멸이 눈동자에 서려 있습니다. 평소의 당신이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자비를 구걸했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입가에 걸린 것은 비릿한 조롱의 미소입니다.

“귀여운 고집은 그쯤 해 두시지요, 전하.”

당신은 목소리를 은밀할 정도로 철저히 낮춘 채, 그를 향해 예리한 칼날 같은 속삭임을 던집니다.

“제 사랑을 갈구하며 무릎 꿇던 어리석은 나비는 이미 박제가 되어 벽에 걸렸답니다. 대공 전하의 그 고결하고 고매하신 발걸음이 이 미천한 방바닥을 더럽힐까 염려되니, 이만 그 화려한 쇼를 끝내고 나가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의 오만함을 정면으로 비웃는 당신의 중의적인 양날의 말에 에드윈의 숨결이 턱 막힙니다.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안달복달하던 가냘픈 인형이, 단 하룻밤 만에 완전히 다른 포식자의 눈빛을 하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당신의 거칠고 단호한 태도에 몹시 당황한 에드윈은, 붉게 가라앉은 눈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거칠게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립니다. 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그의 군홧발 소리가 당신의 승리를 선언하듯 고요 속에 울려 퍼집니다.

홀로 남겨진 침실. 당신은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목을 죄던 드레이프 실크 드레스의 뒤편 코르셋 끈을 가차 없이 풀어헤칩니다. 사치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신부의 허울을 벗어던지는 순간입니다.

창가로 걸어가 어두운 수도의 밤거리를 내려다봅니다. 머릿속에는 회귀 전, 비참한 감옥 속에서 우연히 귀동냥으로 전해 들었던 황실 마법 탑의 극비 지식들과 전설적인 고대 배합법들이 또렷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에드윈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벽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대한 자금과 거대 세력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화장대 거울 속에 비친, 독기로 가득 찬 아름다운 눈동자를 응시합니다. 이제 첫 단추를 꿰어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의 손끝에 깃든 마법의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운명의 갈림길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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