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광무(光武) 9년, 을사년(1905년) 11월 11일.

진흙처럼 무겁던 의식이 깨어난 순간, 당신이 마주한 것은 덕수궁(경운궁) 서편 수옥헌(重明殿)의 서늘한 공기였다.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두 개의 기억.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지상무기체계와 화약 추진제를 연구하던 서른여섯의 선임연구원 한진우의 이성과,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이자 황족으로서 이역만리를 떠돌던 이강(李堈)의 끓어오르는 혈통이 하나로 융합되었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은 날카로운 안광을 지닌 스물여덟 살의 의화군 바로 그것이었다.

황궁 담장 너머로는 매서운 초겨울 바람을 타고 불길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하야시 곤스케 일본 공사의 사주를 받은 일본 제국 육군 제13사단 산하 보병 제39연대가 경운궁 정문인 대안문(大安門)을 겹겹이 포위한 상태였다. 그들이 도성 내에 배치한 무기는 메이지 31년식 야포 12문과 8밀리미터 구경의 호치키스 기관총 수십 정.

전생의 군사 과학 지식은 당신의 시야를 정밀한 탄도 계산기처럼 바꾸어 놓았다. 아리사카 30년식 소총을 쥔 왜병들의 방위각, 그리고 수옥헌 뒤편 언덕에 거치된 포병의 사정거리 4,600미터가 머릿속에 수치로 선명히 그려졌다. 그들이 쏘아 올릴 시모세(下瀨) 화약 탄피의 트리니트로페놀 결정 구조까지 떠오르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극도의 모멸감과 분노였다.

며칠 뒤인 11월 15일이면 일본의 특파 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외교권 박탈을 골자로 한 조약안을 강제 들이밀 것이다. 17일 밤에는 어전회의를 겁박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하려는 가공할 음모가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조정의 문관들은 유교적 명분론에 갇혀 상소문만 쓸 뿐, 실질적인 대포 한 문, 소총 한 자루의 개량조차 이루지 못했다. 대한제국 시위대 보병 제1연대의 3천 병력은 낡은 마우저 소총과 부족한 탄약 탓에 저들의 화력 앞에 고작 세 시간을 버티지 못할 터였다.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에 처한 이때, 황족의 지위를 얻은 당신이 침묵을 지킨다면 역사는 예정대로 파국을 향해 흘러갈 터였다.

"황제 폐하를 폐위하고 황실을 조각내겠다는 협박에 굴해서는 안 되옵니다."

시종무관장이 나직하게 보고하는 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이토는 조정 대신들을 개별적으로 포섭하고 압박하며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기술적 우위와 철저한 국익 계산 없이는 이 거대한 제국주의의 아가리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당신의 손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무기 연구원으로서 알고 있는 일본 육군 무기 체계의 치명적인 결함과 군수 물자의 고갈 상태를 이용해 이토를 정면으로 압박하는 것. 혹은 아시아에서의 이권을 노리는 미합중국 공사 대리 모건을 접촉하여 광산 채굴권을 미끼로 본토의 최신 맥심 기관총 제조 도면과 기술진을 확보하는 것.

거사의 시간은 불과 사흘도 남지 않았다. 황궁의 차가운 바닥에 서서, 당신은 황족의 도포 자락을 움켜쥐며 서늘한 결단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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