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구궁!
머리 위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던 오두막의 천장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아나톨이 이끄는 흑기사단의 정예병들이 수성 결계선의 가장 취약한 틈새를 향해 일제히 무기를 내리꽂은 탓이었다. 쩍쩍 갈라지는 서까래 사이로 흙먼지와 부서진 지붕 석판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레티샤!”
디트리히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레티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돌덩이들을 제 등으로 받아냈다. 쿵, 하고 둔탁한 파열음이 그의 단단한 어깨에서 울렸지만, 그는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고 레티샤를 품에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품에 안긴 레티샤는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에클레어와 정화 카누레를 연달아 구워내며 가계부에 지불한 대가는 가혹했다. 온몸의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듯한 영양실조의 통증과 함께, 감정의 밑바닥이 서늘하게 말라붙는 무기력증이 그녀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집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이곳은 그녀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그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놓아줘요, 디트리히.”
레티샤는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 매달린 가죽 가방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것은 상인 힐데가 넘겨주었던 차갑고 울퉁불퉁한 물건이었다. 숲 밖에서 파괴된 고대 성벽의 일부이자, 마력을 무한히 흡수하고 반사해 내는 특이 성질의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
그녀는 이를 악물고 품 안에서 흑색 파편을 꺼내 들어 뒤틀린 지붕의 균열 속으로 힘껏 던졌다.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스위트 가계부의 붉은 가동 버튼을 향해 마지막 남은 손가락 끝을 내리눌렀다.
[시스템 안내: 고대 장벽의 역류 파편을 매개로 한 마력 자폭 시퀀스를 가동합니다!] [경보: 역방향 마력 방출률 400% 돌파!]
“모두 엎드려요!”
레티샤가 앙칼지게 외침과 동시에, 그녀가 던진 파편이 허공에서 맹렬한 은빛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자자작! 콰아아앙!
기사들이 뿜어내던 검은 주박 마력이 파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마력이 역방향으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지붕 위에서 무지막지하게 압박을 가하던 흑기사들의 대형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비명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역류한 마력 폭풍은 적들이 전개했던 주박 결계를 역으로 자폭시키며 그들의 무기에 치명적인 균열을 새겨 넣었다.
“크악! 이게 무슨……!” “안에서 마력이 역류한다! 대형을 유지해라!”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오두막 지붕의 거대한 균열 틈새로, 비틀거리는 기사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폭발의 여파로 그들의 갑옷은 군데군데 찌그러져 있었지만, 황후의 정예병답게 그들은 검을 고쳐 쥐며 무너진 지붕 틈새로 난입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공방의 바닥에 발을 딛기도 전에, 안개 숲의 진짜 주인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우어어어어어어-!
오두막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어둠을 가르고, 대지를 뒤흔드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공방의 배달부이자 레티샤의 든든한 보디가드인 고대종 ‘붉은 사자’가 거대한 앞발로 무너진 담벼락을 짚으며 일어섰다. 사자의 붉은 갈기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기를 무섭게 달구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사자가 거대한 입을 벌리자, 단순한 불꽃이 아닌 고열의 대기 충격파가 지붕 균열을 향해 발사되었다. 공기가 비틀리고 타들어 가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붉은 사자의 열기에 호응하듯, 숲의 어둠 속에서 푸른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레티샤가 에클레어로 정화했던 얼음 늑대 무리가 우두머리를 필두로 지붕 위를 덮쳤다.
스스스스스-!
얼음 늑대들이 내뿜는 차가운 서리가 사자의 열기와 부딪히며 순식간에 시야를 가리는 극도의 칼안개 서리 지대를 형성했다. 뜨거운 열기와 뼈를 찌르는 냉기가 번갈아 몰아치는 기괴한 이중 원소의 폭풍 속에서, 기사들은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끄악! 갑옷이…… 갑옷이 깨진다!” “눈이 안 보여! 숲의 마수들이 왜 인간을 돕는 거지?!”
열팽창과 급속 냉각이 극단적으로 교차하자 기사들이 자랑하던 마도 갑옷들이 유리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수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혼란에 빠진 기사들을 물어뜯고 밀쳐냈다. 붉은 사자의 맹렬한 발길질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흑기사들이 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흥, 제법 쓸 만한 지원군이군.”
디트리히가 낮게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낡고 부러진 철검은 이미 쓸모를 잃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찬란한 황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은신을 위해, 그리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억눌러 두었던 제1황자의 존엄과 무력이 마침내 빗장을 풀었다.
“레티샤,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도록.”
그가 허공을 향해 소리치듯 손을 뻗었다.
스우우웅-!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 마력이 대기를 가르며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빚어냈다. 그것은 아스터 황실의 수호자이자 전신(戰神)이라 불리는 대공 가문의 전설적인 마도 양손검, ‘클레이오’였다. 검신 전체가 투명한 은빛 보석으로 조각된 듯 찬란하게 빛나는 양손검이 그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순간, 공방 내부의 기압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감히 내 고용주의 가계를 더럽힌 대가는 무거울 것이다.”
디트리히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스아아앙-!
단 한 번의 가벼운 검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붕 틈새로 기어들어 오려던 흑색 괴수들과 정예병 세 명이 일격에 반 토막이 나며 먼지가 되어 소멸했다. 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황금빛 투기는 아나톨의 검은 마력을 정화하듯 불태워 버렸다.
그는 레티샤를 힐끗 바라보며,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렸다. 그 오만하면서도 깊고 높은 미소는 보는 이의 심장을 뛰게 만들 만큼 매혹적이었다.
“일당 50실버짜리 알바생 치고는 꽤 훌륭한 밥값을 하고 있지 않나?”
“……추가 수당은 없으니까 꿈도 꾸지 마세요.”
레티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계산적인 성미는 이 죽음의 고비에서도 어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디트리히의 넓은 등 뒤에 서자, 얼어붙었던 심장이 조금씩 따뜻하게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나아! 레오니가 이고 들고 와써요오!”
그때, 주방 구석에 숨어 있던 레온이 고사리손으로 무거운 나무 상자를 낑낑거리며 끌고 왔다. 상자 안에는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동글동글한 과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은 레티샤가 틈틈이 구워 가계부의 정화 마력을 비축해 두었던 특제 ‘폭신쫀득 마시멜로 힐링 스위츠’였다.
“잘했어요, 레온!”
레티샤는 레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뒤, 가계부 스크롤을 맹렬히 넘겼다.
[시스템 안내: ‘폭신쫀득 마시멜로 힐링 스위츠’의 실시간 투척 버프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효과: 섭취 대상의 생명력 즉시 30% 회복, 마력 정체 해소, 10초간 고속 재생 무한 버프 공급!]
“사자 씨! 얼음 늑대들아! 이거 먹어!”
레티샤는 망설임 없이 상자 속의 마시멜로들을 한 움큼 쥐어 허공으로 던졌다.
슈슈슈슉!
허공을 날아가는 마시멜로들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겉은 미세한 가루 설탕이 뽀얗게 내려앉아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랍고 말랑말랑했으며, 구운 설탕의 구수하고 달콤한 향기가 칼바람이 부는 전장 전체에 몽글몽글하게 퍼져 나갔다.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입안 가득 감기며, 사르르 녹아내리는 극상의 단맛이 뇌를 자극하는 기적의 치유식이었다.
덥석! 덥석!
공중에서 떨어지는 마시멜로를 낚아챈 붉은 사자와 얼음 늑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달콤하고 쫀득한 마시멜로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마수들의 몸에서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기사들의 검에 베여 피를 흘리던 붉은 사자의 옆구리 상처가 눈부신 빛과 함께 순식간에 아물어 붙었다. 얼음 늑대들의 털끝에는 이전보다 세 배는 더 날카롭고 푸른 얼음 가시들이 돋아났다.
“우르르릉-!”
힘이 넘쳐나다 못해 터질 것 같다는 듯, 붉은 사자가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녀석은 적들의 검격 따위는 아예 무시한 채, 들이받고 짓밟으며 전장을 난도질했다. 상처가 나더라도 레티샤가 던져주는 마시멜로를 씹기만 하면 매 초 단위로 상처가 즉시 치유되는 무한 불사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물 놈들이 상처를 입어도 바로 살아난다! 대체 저 계집이 던지는 게 뭐길래!”
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가한 치명상이 겨우 하얗고 말랑말랑한 과자 한 조각에 허무하게 무력화되는 광경은 그들의 상식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더 먹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레티샤는 피로로 눈앞이 핑핑 돌았지만, 이 악물고 마시멜로를 계속해서 던졌다.
그녀의 손에서 쏘아진 달콤한 탄환들은 정확히 부상당한 마수들의 입안으로 골인했다. 디저트를 먹고 힘을 얻은 마수 군단과, 전설의 검을 든 디트리히의 무자비한 참격 앞세워 공방 앞마당은 순식간에 제국 기사들의 무덤으로 변해갔다. 황후가 자랑하던 정예 흑사자 기사단은 말 그대로 먼지 털리듯 처참하게 밀려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디저트 버프 대첩이었다.
“하, 하하…… 이 아나톨이, 고작 시골 오두막의 빵쟁이 계집과 반역자 놈에게 밀린단 말이냐……!”
기사들의 대열 후방에서, 온몸이 기괴한 검은 괴수로 변해가던 아나톨이 핏발 선 눈으로 광소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극도로 압축되며 주변의 대기를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마력 핵이 붉게 충혈되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동쳤다.
패배를 직감한 사냥개의 눈에 마지막 광기가 어렸다.
“황후 폐하를 위하여…… 너희 모두를 이 자리에 묻어주마!”
아나톨이 자신의 마력핵을 강제로 쥐어짜 내며 양손을 대지에 찔러 넣었다.
스스스스스-!
순식간에 공방 바닥 전체가 지독하게 어둡고 끈적이는 검은 먹물 같은 마력으로 뒤덮였다. 그것은 밟는 순간 모든 생명력과 마력을 빨아들여 신체를 마비시키는 최상위 금단 주술, ‘심연 흑공의 주박 결계선’이었다.
“……윽?!”
맹렬하게 질주하던 붉은 사자의 다리가 순식간에 검은 먹물에 잠기며 굳어버렸다. 얼음 늑대들 역시 발이 묶인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검을 치켜들고 아나톨의 목을 베려던 디트리히마저,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끈적한 어둠의 사슬에 묶여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강제로 고정되었다.
“하하하! 꼼짝 마라! 이제 이 결계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려라!”
아나톨이 피를 토하며 잔혹하게 웃었다. 검은 먹물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레티샤의 발밑을 향해 빠르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