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제단 위로 붉은 날개가 펼쳐졌다. 백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괴담 유물과 한 몸이 된 형상이다. 도살마의 얼굴이 붉게 빛났다. 그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굴러갔다. 인간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다. 그는 완벽한 괴물이었다.
태조는 바닥을 짚었다. 부러진 다리가 무겁게 꺾였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태조는 무표정하게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가죽 장부가 쥐여 있었다. 장부 표지가 붉게 타올랐다.
백도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탁. 맑은 마찰음이 성당을 울렸다.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제단 밑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그림자는 거대한 형상을 취했다. 검은 로브를 걸친 사신의 모습이다. 그 손에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다.
수호군이 태조를 향해 걸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공간이 흔들렸다. 사방의 벽이 안쪽으로 좁혀졌다. 지독한 압박감이 전신을 덮쳤다. 숨이 턱 막히는 중력이었다. 대리석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태조의 무릎이 다시 낮아졌다.
"가련한 버둥거림이구나." 백도현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수호군이 낫을 치켜들었다. 검은 연기가 낫 날을 감쌌다. 인과를 역행하는 힘이다. 스치는 것만으로 존재가 지워진다. 태조는 장부를 꽉 쥐었다. 그의 손가락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태조가 장부를 펼쳤다. 첫 페이지가 거칠게 넘어갔다. 그곳에서 붉은 탄환들이 솟았다. 스크리머의 비명이 탄환에 담겼다. 리퍼 잭의 살점이 탄환을 감쌌다. 태조는 권총을 들어 겨누었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탕! 탕! 탕! 연속적인 폭음이 성당을 찢었다. 무한한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붉은 궤적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탄환들은 수호군의 몸에 박혔다. 콰콰콰광! 고막을 찢는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사신은 멈추지 않았다. 탄환은 허공에서 먼지로 변했다. 역행하는 인과가 공격을 지웠다.
그때 장부 우측 상단이 번쩍였다. 붉은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글자들이 피로 쓰이듯 나타났다. [한계 채무 경고] [뇌세포 괴사율 95% 돌파] [시스템 강제 정지 임박] 붉은 낙인이 뇌리를 직접 때렸다.
태조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모세혈관이 일제히 터졌다. 피부 위로 붉은 반점이 돋았다. 눈시울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컥. 태조가 검은 피를 토해냈다. 바닥의 대리석이 붉게 물들었다.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신경망이 하나씩 끊어지고 있었다.
"아직이다." 태조가 이를 악물었다. 피 섞인 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장부의 공포 채무가 뇌를 옥죄었다. 과거 희생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들의 임종 고통이 뇌로 쏟아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태조의 눈은 흐려지지 않았다.
사신이 태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거대한 낫이 허공을 갈랐다. 죽음의 궤적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피할 수 없는 궤도였다. 태조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신경이 마비된 탓이다.
그 순간 그림자가 끼어들었다. 윤설아였다. 그녀가 태조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손에 깨진 거울이 있었다. 차단 유물의 힘이 방어막을 쳤다. 투명한 장벽이 허공에 솟았다.
깡! 낫과 장벽이 충돌했다.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장벽은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사신의 낫이 그녀의 어깨를 벴다. "아악!" 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녀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그녀는 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태조 씨! 빨리!" 설아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그녀의 눈에 공포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태조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 영악한 계산 끝에 나온 몸짓이었다. 그녀가 몸으로 시간을 벌었다.
태조의 눈동자가 수호군을 쫓았다. 그의 뇌는 이미 반쯤 죽어 있었다. 하지만 영혼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뇌에 흐르는 공포를 감지했다. 타들어 가는 신경의 고통을 느꼈다. 태조는 그것을 억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을 한곳으로 모았다. 정신적 에너지를 열로 변환했다.
장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죽 표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태조는 품에서 은비녀를 꺼냈다. 장부의 붉은 열기를 비녀에 주입했다. 은비녀가 붉은빛으로 화했다. 그것은 소멸의 복사열이었다. 인과를 태워버릴 수 있는 유일한 열이다.
태조가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부러진 다리뼈가 살을 뚫고 나왔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앞으로 돌진했다. 사신이 다시 낫을 가로로 휘둘렀다. 태조는 피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뼈가 낫 끝에 갈라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성당을 채웠다. 핏방울이 안개처럼 허공에 퍼졌다.
"미친 자식." 백도현의 미소가 굳어졌다. 태조는 도리어 제 가슴을 더 열었다. 낫을 몸으로 받아내며 거리를 좁혔다. 사신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 쥔 은비녀가 붉게 타올랐다.
"죽어라." 태조가 건조하게 내뱉었다. 그의 손이 사신의 가슴을 뚫었다. 정확히 심장의 핵을 겨냥했다. 푸욱! 은비녀가 검은 연기를 관통했다. 그 순간 엄청난 열기가 폭발했다. 붉은 빛이 성당 내부를 가득 채웠다.
콰아아아앙! 사신의 몸이 안쪽에서부터 갈라졌다. 검은 로브가 먼지로 변했다. 거대한 낫이 허공에서 바스러졌다. 수호군의 형체가 완전히 소멸했다. 재가 되어 바닥으로 흩어졌다.
태조는 무릎을 꿇었다.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거세게 뿜었다. 그의 눈앞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하지만 그는 장부를 놓지 않았다. 피 묻은 장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체온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파괴된 장의자들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흔들렸다. 정적이 성당을 지배했다. 그 정적을 깨고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백도현의 조소였다. 그가 제단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그의 동공이 완전히 뒤집혔다. 우두둑. 그의 허리가 뒤로 크게 꺾였다. 인간의 관절로는 불가능한 각도였다.
그의 피부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살점이 녹아내리며 액체로 변했다. 그의 전신이 거대한 붉은 도포창이 되었다. 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창들이었다. 수십 개의 창끝이 태조를 겨누었다.
슈우욱! 붉은 액체 창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그것들은 태조의 사지를 비켜 갔다. 대신 그의 목을 강하게 죄어왔다. 차가운 피의 감촉이 목덜미를 감쌌다. 숨통이 막혀왔다. 태조의 몸이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끝이다, 한태조." 백도현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붉은 액체가 태조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태조는 허공에서 버둥거리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백도현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불길이 타고 있었다.
피의 손길이 목을 조였다. 기도가 막혔다. 산소가 부족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태조는 왼손을 움직였다. 손가락 끝을 물어뜯었다.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장부가 반응했다. 스스로 책장이 넘어갔다.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 '침묵의 족쇄' 괴담이다.
백도현의 피가 멈췄다. 움직임이 굳어졌다. 태조는 목의 압박을 풀었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쿵.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허벅지 뼈가 뒤틀렸다. 태조는 구르며 피했다. 제단 뒤로 몸을 숨겼다.
장부가 비명을 질렀다. 붉은 빛이 폭발했다. [경고: 한계 채무 초과] [신체 붕괴를 시작합니다] 전신의 가죽이 찢어졌다.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태조는 웃었다. 통증은 사치였다. 그는 단지 표적을 보았다.
백도현이 소리쳤다. "이 벌레 같은 놈이!" 그가 제단을 부쉈다. 대리석 파편이 사방에 날렸다. 태조는 파편을 방패로 삼았다. 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장부를 움켜쥐었다. 남은 채무를 전부 쏟았다.
비녀의 잔해를 주웠다. 깨진 은 조각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심장에 댔다. "대차대조를 맞춘다." 그가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스스로 심장을 찔렀다. 푸하학!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 피가 장부로 흘러들었다. 강제 계약이 성립됐다. 괴담의 힘이 역류했다.
성당 바닥이 진동했다. 지하의 수로가 터졌다. 검은 물이 솟구쳐 올랐다. 백도현의 안색이 변했다. "이 미친 계획을!" 태조의 몸이 검게 변했다. 괴담 자체가 된 형상이다. 그의 등 뒤에서 검은 안개가 퍼졌다. 그것은 서울 전체로 뻗었다.
백도현이 날개를 펄럭였다. 그의 몸이 제단 위로 떴다. 성당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붉은 하늘이 드러났다. 달빛이 핏빛으로 변했다. "시작이다 한태조." 백도현이 광소를 터뜨렸다. 도시 전체가 울부짖었다. 최종 의식이 강제로 열렸다. 태조의 몸이 공중에 떴다. 그의 의식이 흐려졌다.
의식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태조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장부의 마지막 장을 쥐었다. 붉은 낙인이 뇌 세포를 태웠다. [뇌세포 괴사율 99%] [시스템 소멸 카운트다운: 3, 2...] 죽음이 코앞이었다. 하지만 태조는 공포를 모른다. 공포가 없으니 굴복도 없다. 그는 장부의 공백을 보았다. 백도현의 의식은 공포를 먹는다. 서울의 모든 비명이 동력이다. 태조는 그 동력을 해킹했다. 공포의 자리에 무(無)를 넣었다. 절대적인 허무의 주입이다.
서늘한 냉기가 대기를 잠식했다. 하늘의 붉은 마법진이 멈췄다. 백도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그의 목소리에 균열이 갔다. 붉은 날개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깃털 대신 검은 재가 날렸다. 태조는 허공에서 백도현을 보았다. 그의 시야는 이미 반쯤 멀었다. 흑백의 세상만 보였다. 그 속에서 붉은 핵만 빛났다. 백도현의 심장이다.
태조는 무너지는 천장 잔해를 밟았다. 공중에 떠 있는 돌덩이들이다. 그는 디딤돌 삼아 도약했다. 다리뼈가 부러져도 상관없다. 근육의 반동만으로 몸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백도현이 손을 뻗었다. 붉은 액체 창들이 다시 솟구쳤다. 태조는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날아온 창 하나를 손으로 잡았다. 날카로운 날이 손바닥을 벴다. 그는 그 고통을 추진력으로 썼다. 창을 축으로 삼아 회전했다. 백도현의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미친 괴물 놈!" 백도현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남은 날개를 휘둘렀다. 피의 폭풍이 태조를 덮쳤다. 태조의 가슴 가죽이 다 찢어졌다. 갈비뼈가 하얗게 드러났다. 하지만 태조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백도현의 목을 잡았다. 동시에 왼손의 은비녀 조각을 겨눴다. "너와 나, 대차대조다." 태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녀 끝이 백도현의 눈을 겨눴다.
그때 성당 바닥이 완전히 붕괴했다. 거대한 싱크홀이 아가리를 벌렸다. 지하의 핏빛 수로가 솟구쳤다. 윤설아가 잔해와 함께 추락했다. "한태조!" 그녀의 짧은 비명이 멀어졌다. 백도현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스스로 찢었다. "나를 죽이면 도시도 죽는다!" 그의 심장에서 붉은 실들이 뿜었다. 그 실들이 성당 전체를 감쌌다. 무너지는 건물과 하나가 되었다. 공간 자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태조와 백도현의 몸이 엉겼다. 두 사람은 피의 심연으로 떨어졌다. 낙하하는 와중에도 손은 닿아 있었다. 백도현의 붉은 액체가 태조의 팔을 감았다. 그것은 뼈를 녹이는 부식액이었다. 하지만 태조는 장부를 더 깊이 찔렀다. 장부의 마지막 가죽이 찢어졌다. 그 틈새로 기괴한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여동생의 눈동자였다. 눈동자가 태조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백도현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네 여동생이 아니야!" 백도현이 공포에 질려 부르짖었다. 두 사람이 심연 바닥에 추락하기 직전이었다. 세상이 피비린내 사는 어둠으로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