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성(白華城)의 성벽은 백색 대리석으로 쌓아 올려 한낮의 태양 아래 눈부시게 빛납니다. 정파 무림맹으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 이곳을 지키는 무사들의 안광은 날카롭고 묵직합니다. 당신은 소매 안으로 가짜 신분첩을 만지작거립니다. 낙양의 쇠락한 가문인 팽가의 방계라는 위장 신분입니다.
성문 앞 간이 처소에서 백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노인이 걸어 나옵니다. 무림맹의 집행관이자 완고하기로 이름 높은 백무결 장로입니다. 그의 맑은 혜안이 당신의 전신을 천천히 훑어내립니다. 노인의 짙은 눈썹이 일순 꿈틀합니다.
"팽가의 도법은 강맹하고 거친 법. 한데 자네의 고관절과 어깨의 유연함은 사뭇 다르군."
백 장로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내력이 실려 있어 귓전을 때립니다. 당신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시선은 그의 흔들림 없는 발끝에 고정됩니다. 호흡을 고르게 낮추며 심박수를 조절합니다. 단전 심처의 사파 내력이 요동치려 하나, 기연으로 얻은 태극혜검의 기운으로 깊숙이 짓누릅니다.
"외형은 속여도 기혈의 흐름은 속일 수 없는 법이지."
백 장로가 한 걸음 다가섭니다. 그의 소맷자락이 무형의 기파(氣波)에 흔들립니다.
"자네의 맥박에 숨겨진 그 기이하고 은밀한 기운은 무엇인가? 정종(正宗)의 흐름인 듯하면서도, 뼈마디 사이에 숨은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의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해갑니다. 백 장로는 평생 동안 첩자와 사파의 무리를 가려내 온 인물입니다. 그의 오른손이 서서히 허리에 찬 검자루로 향합니다.
"직접 확인하겠네."
백 장로가 검을 뽑습니다. 청홍색 검기가 치솟습니다. 바람이 날카롭게 찢어집니다. 그가 순식간에 신형을 좁힙니다. 검끝이 당신의 목을 겨눕니다. 서늘한 살기가 피부를 스칩니다. 당신은 급히 뒤로 물러섭니다. 발끝이 지면을 깊게 깎습니다. 노인의 출수는 매섭고 정교합니다. 피할 명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내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순간적인 공방 속에 백 장로의 초검이 당신의 어깨깃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에 강한 이채가 번뜩입니다. 정파의 기운으로 철저히 위장했으나, 방어하는 찰나에 튀어나온 사파 특유의 기괴한 신체 반동을 그가 놓치지 않은 탓입니다.
"역시 평범한 무가가 아니로군! 이 음습한 반탄력은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이냐!"
백 장로의 진기가 극성으로 끓어오르며 그의 장검이 태산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습니다. 사방을 에워싸는 웅장한 기압이 당신의 전신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당신의 턱끝으로 차가운 땀방울이 한 방울 흘러내립니다. 시선은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그의 검로를 고정합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신의 손끝이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