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대기가 얼어붙는 속도는 정확히 초당 1.2도였다.

습도는 순식간에 0%에 수렴했고, 유리창 너머의 서울 도심은 거대한 액체 질소 수조에 빠진 것처럼 급속도로 백색의 결정체로 변해갔다.

[주의: 전 지구적 서바이벌 튜토리얼 '동토의 장'이 개막합니다.] [현재 대기 온도: 영하 41.5℃]

망막 위에 떠오른 붉은색 경고 박스가 시각 정보를 일그러뜨릴 만큼 선명하게 명멸했다. 강태혁은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체온 유지를 위해 말초혈관이 극단적으로 수축하며 손톱 밑이 푸른빛으로 변하는 과정이 초 단위로 인지되었다. 인간의 생존 한계를 가볍게 초과한 절대 영도의 한파가 콘크리트 벽을 뚫고 엄습하기 직전, 귓가에 기계적인 파열음이 울렸다.

[시스템 에러 발생.] [알 수 없는 연산 오류로 인해, 미등록 특이 구역 '낙원 빌딩'의 소유권이 생존자 '강태혁'에게 강제 이전됩니다.]

그것이 모든 파멸의 시작이자, 그가 쥔 절대 방어권의 각성이었다.

태혁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홀로그램 장부가 펼쳐졌다. 장부의 첫 페이지에는 정교한 기하학적 수식과 함께 기계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일목요연하게 나열되었다.

[고유 권능: 경영 장부(Lv.1)] [기능: 인게임 내 모든 자원 및 생필품의 시스템 원가(Raw Cost) 조회 및 즉시 구매/가공 권한.] [영역 권능: 낙원 빌딩 내부에서의 모든 물리적·마법적 타격을 100% 반사하는 성역 역장 상시 가동.]

구조는 정밀했고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가 없는 권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부의 하단, 핏빛으로 각인된 '역계약 조항'이 태혁의 시선을 붙잡았다.

[※ 수지타산 결산 규칙] [- 결산 주기: 매주 일요일 24:00] [- 페널티: 결산 시점의 장부 누적 수지가 '적자(Deficit)'를 기록할 경우, 부족한 차액만큼의 마력 및 '최대 수명'이 시스템에 의해 강제 소각됩니다.] [- 제약 조건: 소유주가 빌딩 영토 반경을 단 1cm라도 이탈하는 즉시, 모든 물리 방어력은 '0'으로 강제 고정됩니다.]

"적자일 경우 수명 소각이라."

태혁의 입술 사이로 건조한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눈꺼풀 하나 떨리지 않았다. 그의 뇌는 이미 감정이라는 무익한 데이터를 배제한 채, 생존을 위한 연산식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극단적인 통제 집착증과 냉혹한 기계적 효율주의는 이 가혹한 제약을 즉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치환했다. 부족한 차액만큼 수명이 깎인다면, 역으로 단 1원이라도 흑자를 유지하는 한 이 빌딩 안에서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방어력이 소멸한다는 제약은, 역설적으로 그가 이 안방에 정착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했다.

태혁은 장부의 원가 리스트를 빠르게 쓸어내렸다.

- 생수 500ml: 원가 0.1 마력 (시스템 권장 판매가: 10 마력) - 휴대용 온열 팩: 원가 0.2 마력 (시스템 권장 판매가: 20 마력) - 고농축 비상식량 1팩: 원가 0.5 마력 (시스템 권장 판매가: 50 마력)

원가 대비 마진율은 무려 수천 퍼센트에 달했다. 이 장부를 이용해 외부 생존자들과 철저한 계약 기반의 공급망을 구축한다면 흑자 유지는 확정적인 미래였다. 직접 사지로 기어 나가 괴수와 목숨 걸고 싸우는 하류 모험가들과 달리, 자신은 철저히 내부에서 상업망과 외주 용역들을 제어하는 비접촉 '데스크 상인'으로 군림하리라. 그것이 태혁이 정의한 완벽한 영속적 안전지대의 형태였다.

드르륵, 쾅!

낙원 빌딩 1층 로비의 두꺼운 이중 강화유리문 너머로 둔탁한 소음이 고막을 찔렀다.

"살려주세요! 문 좀 열어줘요!" "안에 사람 있잖아! 제발, 손가락이 얼어 터질 것 같아!"

피난민 군상이었다. 영하 40도의 칼바람 속에서 얇은 겨울옷 한 벌만 걸친 채 도망쳐 온 이들이 유리문에 달라붙어 절규했다. 그들의 입김이 유리에 닿자마자 하얗게 성에로 변해 서리꽃을 피웠다. 어떤 이는 이미 동상으로 검게 죽은 귀를 부여잡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태혁은 로비 데스크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정밀 카메라처럼 관조했다.

로비 안쪽은 시스템 역장 덕분에 정확히 영상 22도의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온도의 경계선은 단 한 픽셀의 오차도 없이 유리문 안과 밖을 철저히 갈라놓았다.

"야! 문 열라고! 너만 살겠다는 거야?"

한 남자가 동상으로 퉁퉁 부은 주먹으로 유리문을 두들겼다. 그의 주먹이 유리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로비에 퍼졌다.

태혁은 천천히 걸어가 유리문 앞의 제어 콘솔을 조작했다. 육중한 강철 빗장이 스르륵 내려앉으며 정문이 완벽하게 잠겼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서늘한 기계음이 피난민들의 통곡 소리를 덮었다.

그의 행동을 본 생존자들의 안색이 절망과 분노로 일그러졌다. 유리벽에 얼굴을 처박고 소리치는 이들의 얼굴은 인간이라기보다 굶주린 짐승에 가까웠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가...!"

태혁은 유리문 너머의 소란을 불필요한 노이즈로 분류했다.

"감정에 기반한 무상 구호는 자원의 영구적인 손실을 초래한다."

태혁의 목소리는 한 치의 고저도 없이 평탄했다.

"너희를 예외적으로 수용하는 순간 내부의 열역학적 균형이 깨지고, 통제 불가능한 인적 변수가 발생한다. 나는 리스크를 수용하지 않는다."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당장 문 열어!"

"이 빌딩은 내 사유지다.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불해라. 계약 없는 점유는 불허한다."

그 냉혹한 거절에 생존자 무리가 웅성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절망이 극에 달하면 분노는 폭력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때, 생존자 무리의 뒤편을 밀치고 거친 체구의 사내 세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시꺼멓게 그을린 쇠파이프와 묵직한 소방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들의 가죽 재킷 어깨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조잡하게 그려진 하이에나 문양이 찍혀 있었다. 이 혼란을 틈타 약탈을 일삼는 무법자 선발대들이었다.

"비켜봐, 이 쓸모없는 약골들아."

가운데 선 흉터투성이 사내가 소방도끼를 고쳐 잡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침은 보도블록에 닿기도 전에 얼음 결정이 되어 툭 떨어졌다.

"야, 안바보 새끼야. 네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걸 모르는 모양인데."

사내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유리인지 삼중유리인지 몰라도, 쇠도끼 앞에서는 다 똑같은 모래알이야. 문 안 열면 네 대가리부터 쪼개줄 테니까 기다려라."

태혁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문 바로 앞, 정확히 5cm 거리까지 다가서서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도발도 없었다. 오직 물리 법칙의 결과를 대기하는 학자의 냉혹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타격 지점 인지."

태혁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질량 4.5kg의 탄소강 도끼. 가해자의 근력을 고려한 예상 도달 에너지는 약 1,200줄(Joule). 반사 계수 100% 가동 확인."

"이 미친 새끼가 끝까지 헛소리를... 뒤져라!"

사내가 온 힘을 다해 소방도끼를 활처럼 휘둘렀다. 도끼날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쇠붙이가 이중 강화유리문의 정중앙을 정확히 내리찍는 순간이었다.

콰앙-!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성 파열음이 로비 앞마당을 강타했다.

유리창에는 단 한 줄의 금조차 가지 않았다. 먼지 한 톨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가해진 물리 에너지는 단 1초의 지연도 없이 정확히 반대 방향의 벡터로 변환되어 방출되었다.

"끄아아아악?!"

비명은 도끼를 휘두른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100% 반사된 1,200줄의 충격파가 그의 두 손목을 타고 그대로 역류했다. 우드득하는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사내의 요골과 척골이 동시다발적으로 부러지며 피부 밖으로 하얗게 뼈끝이 튀어나왔다. 손목 관절은 완전히 뒤틀려 걸레짝처럼 덜렁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내가 들고 있던 소방도끼는 반사된 역학적 에너지에 의해 하늘로 솟구쳤다가, 그의 오른쪽 쇄골을 그대로 수직으로 찍어 내렸다.

퍽!

"커흑...!"

사내는 비명조차 온전히 지르지 못하고 선혈을 뿜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쇄골에 깊숙이 박힌 도끼 자루가 그의 경련하는 신체와 함께 기괴하게 흔들렸다. 하얀 눈밭 위로 붉은 피가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빠르게 번져나갔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옆에 서 있던 나머지 두 명의 약탈자가 경악하며 도망치듯 물러섰다. 그들의 눈에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 현상에 대한 경외감이 서렸다.

"유리창에 물리적 타격이 가해진 흔적 없음."

태혁은 망막에 실시간으로 출력되는 로그를 읽어 내려갔다.

[시스템 알림: 외력 감지. 물리 반사 역장 100% 작동.] [결과: 가해 에너지 1,210J 반사 완료. 대상자 '임수철'에게 물리적 대미지 100% 전이.]

"물리 법칙의 인과관계는 정직하다."

태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은 두 명을 응시했다.

"가한 힘만큼 자신에게 되돌아갈 뿐이다. 계속하겠나?"

"이, 이 괴물 같은 새끼...!"

한 놈이 겁에 질려 쇠파이프를 떨어뜨렸다. 쇠파이프가 얼어붙은 보도블록 위를 구르며 쓸쓸한 금속음을 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동료의 겨드랑이를 붙잡고 눈밭 위를 허겁지겁 기어갔다.

주변의 생존자들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적의 방벽. 이 지옥 같은 아포칼립스에서, 어떠한 물리적 타격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요새가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분노에서 간절한 애원으로, 그리고 이내 범접할 수 없는 경외로 변해가는 과정은 태혁에게 아주 정량적인 데이터의 변화에 불과했다.

생존자들이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인 눈으로 태혁을 바라보던 그 순간.

우우우웅-!

대기를 찢는 듯한 거친 엔진 굉음이 얼어붙은 도로 저편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눈보라를 뚫고 육중한 철갑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면에 두꺼운 철판을 덧대고 날카로운 가시를 용접한 개조 트럭이었다. 트럭의 보닛 위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잔인하게 웃는 하이에나의 해골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블랙 하이에나'.

이 주변 지역의 생존자 캠프를 도륙하고 약탈해온 무법 집단의 본대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트럭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가 확성기를 대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에 있는 쥐새끼 같은 놈! 그 잘난 유리문이 철갑 트럭의 운동에너지도 버티는지 보자고!"

트럭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영하 40도의 빙판길 위에서 체인을 감은 거대한 바퀴가 불꽃을 튀기며 낙원 빌딩의 정문을 정확히 조준했다. 시속 8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수 톤짜리 쇳덩어리가 빌딩을 향해 맹렬히 가속하는 순간이었다.

태혁의 눈동자가 그 파괴적인 궤적을 쫓으며 서서히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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