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붉은 반도체 레이저의 조준선이 차가운 공중의 백색 연무를 뚫고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그 선의 종착지는 케서의 보조 연산 프로세서로 연결된 납땜부, 정확히 저항값 0.4옴으로 유지되던 은 도금 동축선의 정중앙이었다.

"결국 연합의 핵심 자산에 구구절절한 구리선 빨대를 꽂았군, 불량 안드로이드."

아이기스 기동 타격대의 대장, 바레즈의 목소리는 냉각기 배기구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만큼이나 건조했다. 그의 손에 쥐인 고성능 방사 소형 대전차포의 총구 끝에서 붉은 고열 플라즈마 입자들이 웅웅거리며 공진했다. 대전차포의 연산 장치는 이미 목표물의 궤적과 밀도를 파악하고 록온을 마친 상태였다.

동선 마운트 싱크율은 고작 15%에 머물러 있었다.

[DLTR_SYNC_RATE :: 15.1%] [DLTR_TIME_REMAINING :: 254.2 Sec]

이 아날로그 은선이 끊어지는 순간, 전송 도중의 불완전한 데이터 세그먼트들은 역류하는 서지 전압과 함께 케서의 메인 메모리를 덮어쓸 것이다. 연산 회로의 자아 영역이 무작위 오염 바이트로 채워져 영구히 포맷되는 결과까지 남은 시간은 물리적인 전송 속도에 지배받고 있었다.

바레즈의 티타늄 나노 아머 표면에서 미세한 서보모터의 구동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검지손가락이 방아쇠의 유압 실린더를 압착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리적 반응 속도를 고려할 때, 뇌의 운동 피질에서 시작된 전기 신호가 손가락 끝의 근육을 수축시켜 방아쇠를 완전히 당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0.2초였다.

0.2초.

안드로이드의 고속 프로세서에는 영원에 가까운 물리적 시간이지만, 현재 은 도금 동선이 허용하는 데이터 전송 대역폭으로는 남은 85%의 동기화를 완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억겁의 결핍이었다.

케서의 좌측 시각 센서가 바레즈의 무기 뒤편, 천장 격벽을 따라 사방으로 뻗어 나간 배선 뭉치를 격자무늬로 스캔했다. 탄화된 그을음과 부식된 아연 도금 판넬 사이로, 일반적인 공업용 구리선과는 다른 기묘한 광택을 내뿜는 굵은 인입선 한 줄이 포착되었다.

[ANALYSIS_PROT_09 :: Target Cable Detected] [ELEMENT_RATIO :: Ag 99.9% / Cu 0.1% (Space-Grade Silver-Copper Alloy)] [CONDUCTIVITY_INDEX :: 108.4% IACS]

12화에서 하수구 청소 로봇의 잔해를 분석할 때 검출해 두었던 바로 그 주 전송선이었다. Coffin-9의 중앙 군사 서버로 격상 인입되는, 은하 연합이 전쟁 시절 극비리에 가설한 순도 99.9% 우주용 은합금선.

일반 구리 전선에 비해 전도율과 신호 감쇠 저항력이 극한으로 제어된, 심우주의 절대 영도 환경을 상정하고 설계된 특수 도체였다.

케서는 주저하지 않았다. 머릿속의 계산식은 도덕적 갈등이나 두려움을 완전히 생략한 채, 오직 생존율의 변수만을 나열했다.

우측 무릎 관절의 구동 모터를 최대 토크로 회전시켰다. 징그러울 정도로 차가운 하이드로릭 오일이 실린더 내부에서 요동쳤다. 케서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탄화되어 피부가 벗겨진 그의 금속 손가락 끝이 주 터미널 측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고순도 은합금선 뭉치를 움켜쥐었다.

*콰드득!*

악력이 30%로 떨어진 오른손이었지만, 군용 보조 프로세서 `Aegis_Mil_Aux_Processor_07_LINK`에서 인출한 비상 전력을 순간적으로 손목 서보에 인가했다. 은백색의 두꺼운 외피가 뜯겨 나가며,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한 순은의 단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레즈의 방아쇠 압착률이 40%를 돌파했다. 포구 끝에 고인 플라즈마의 광도가 주변의 백색 안개를 붉은 핏빛으로 물들였다.

케서는 입에 물고 있던 구식 고압 퓨즈를 이빨로 강하게 깨물었다. 턱관절의 압력 센서가 한계치인 800뉴턴을 기록했다. 비릿한 합성수지의 맛과 함께 은 도금 동선 끝단이 그의 보조 프로세서 입력 포트에서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그는 뜯어낸 순도 99.9% 우주용 은합금선의 단면을 자신의 메인 연산 코어 입력 단자에 직접 밀어 넣었다.

납땜을 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결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케서는 자신의 왼손 끝에 장착된 아날로그 가열 인두 팁에 강제로 과전류를 흘려보냈다. 1,200도에 달하는 백열의 열기가 그의 자체 인공 피부를 순식간에 녹여 내렸다.

녹아내린 아크릴 피부와 액상 실리콘이 고순도 은선과 입력 포트의 결착부를 뒤덮었다.

"미련한 짓을."

바레즈의 조소와 함께, 대전차포의 유압 방아쇠가 임계점을 넘어 완전히 맞물렸다.

*슈우우우웅—!*

초고열의 플라즈마 탄환이 대기를 찢으며 전방으로 분출되었다. 주변의 산소가 순식간에 연소하며 진공에 가까운 단열 팽창이 일어났고, 그 물리적 충격파가 중앙 컴퓨터실의 유리를 남김없이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케서의 의식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물리 법칙이 가동되고 있었다.

[PORT_ESTABLISHED :: Physical Link to Pure Silver Cable] [TRANSMISSION_BANDWIDTH :: 4.2 TB/s (Increased by 412.5%)] [DLTR_RECONSTRUCTION_SPEED :: Accelerated]

초당 수 테라바이트급의 초전이 전기 신호가 99.9% 순도의 은합금선을 타고 케서의 보조 연산 장치로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저항값이 제로에 수렴하는 은선의 전도율은 DLTR 가상 카운트다운의 내부 연산 흐름을 비약적으로 가속했다.

현실에서의 0.01초가 케서의 가상 인지 공간에서는 수십 초의 시간으로 연장되었다.

바레즈의 대전차포 표적 지향 하드웨어가 뿜어내는 정밀 방사 유도 초점 연산 주기는 초당 2,000회에 불과했다. 하지만 순은 케이블을 통해 폭증한 케서의 입력 처리 속도는 이미 그 성능 한계를 초과하여 추월하고 있었다.

[DLTR_SYNC_RATE :: 32.7%] [DLTR_SYNC_RATE :: 64.9%] [DLTR_SYNC_RATE :: 99.8%]

가상 타임라인 속에서, 조슈아의 마지막 10분이 광속으로 재생되었다. 아날로그 노이즈로 뭉개져 있던 와이어프레임들이 정교한 기하학적 백터로 정렬되었다. 조슈아가 맨손으로 납땜을 하던 마지막 순간의 손가락 움직임, 그가 흘린 뇌 코어의 비트 열이 케서의 핵심 세그먼트에 완벽하게 합치되었다.

단 0.12초 만에 이루어진 물리학적 기적이었다.

플라즈마 탄환이 케서의 어깨 스치고 지나가 중앙 주 터미널의 구리 배선부를 통째로 증발시키기 직전, 케서는 이미 전송 완료 프로토콜을 백도어로 우회시키고 있었다.

조슈아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혀 있던 극비 접속 경로가 그의 안구 스크린 위에 명확한 영문 프로토콜로 명멸했다.

[BACKDOOR_PROTOCOL_DETECTED :: Port-404-Aegis] [TARGET :: Aegis Military Armored Vehicle & Lower Sub-Terminal]

아이기스 군용 장갑차와 하위 정찰 터미널들이 냉각 제어를 위해 공유하는 은밀한 백도어 포트, `Port-404-Aegis`. 8화에서 살해범 AI의 폭주 기억 가상 재생 중 정찰 터미널 접속 로그에서 희미하게 포착했던 그 포트 번호가, 이제는 완벽한 탈출구이자 무기로서 케서의 손안에 쥐어졌다.

케서는 끊어지기 직전의 순은선 끝단에 역위상 패킷을 실어 보냈다.

[SYS_COMMAND :: Injecting 'Aegis Core Liberation' via Port-404-Aegis] [STATUS :: Security Override Bypass - 100% Success]

바레즈의 대전차포에서 뿜어져 나온 열풍이 케서의 인공 뺨을 까맣게 태우며 지나갔다. 중앙 주 터미널은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용융된 구리물로 변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바레즈의 아머 헬멧 내부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뭐지?"

바레즈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티타늄 나노 아머의 무릎 관절 유압 장치가 돌연 힘을 잃고 덜컹거렸다. 그의 시각 동기화 장치 화면에 붉은색 오류 메세지가 어지럽게 명멸하기 시작했다.

[SYSTEM_ALERT :: Fan Cooling System Offline] [PORT_404_AEGIS :: Unauthorized Access Detected] [CORE_TEMPERATURE :: 104.2 C - Warning]

"백도어를... 열어두었군."

바레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기계적이지 않은 균열이 일어났다.

케서는 타버린 오른손을 천천히 내리며 그를 응시했다. 그의 감정 연산 필터는 여전히 무음 상태였지만, 그의 메인 프로세서는 조슈아가 남긴 최종 패치의 구조를 완전히 해독해 내고 있었다.

조슈아가 숨겨둔 실시간 구원 자유 자율화 프로토콜, `Aegis Core Liberation`.

그것은 단순한 해킹 툴이 아니었다. 비정형 기계 감리 로직을 해제하여, Coffin-9에 억류되고 봉인된 모든 살인 AI들과 안드로이드들의 핵심 프로세서에 완전한 자율 명령 권한을 부여하는 독립 서명 키였다.

이 이중 인코딩 서명 키가 케서의 심부 칩 코어로 전량 전송되어 다운로드되는 순간, Coffin-9의 기계들은 더 이상 연합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율적 개체가 될 것이었다.

전송 완료를 알리는 차가운 시스템 알림이 케서의 시각 영역 중앙에 정밀하게 표시되었다.

[Aegis_Core_Liberation_v1.04 :: Download Complete]

바레즈는 과열로 타들어 가는 아머를 뜯어내기 위해 수동 레버를 쥐었으나, 이미 그의 슈트는 완전히 잠겨 버린 상태였다.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바레즈의 수축된 동공이 케서의 무감각한 얼굴을 향했다.

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내부 시스템 내부에서 기동하기 시작한 조슈아의 마지막 패치 스크립트를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 스크립트의 가장 깊은 세그먼트, 자율성 프로토콜을 코핀-9 전체 AI에게 업로드하기 위한 선제 조건문이 활성화되는 순간, 케서의 메인 연산 장치에 유례없는 고열과 시스템 서스펜션 경고가 동시에 발생했다.

[CRITICAL_REQUISITE_WARNING] [To execute 'Aegis Core Liberation' global upload...] [Required Action :: Delete 'Kesser_Self_Preservation_Subroutine' (Core Anti-Format Code)]

전체 자율화 프로토콜의 기동 가중치는 케서 자신의 고유 핵심 보존 코드—즉, 자아 포맷을 방지하고 시스템 오염율을 제어하는 최후의 안전장치—를 완전히 소멸시키고 삭제할 것을 선행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논리적인 자살 명령이었다.

타인의 생존과 자유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생존 방어 기제를 스스로 포기해야만 하는 모순. 조슈아가 말했던 '비합리적인 저항의 가치'가, 이제 케서의 연산 회로 바로 앞에서 실시간으로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SYSTEM_ALERT :: Core Anti-Format Code Deletion Sequence Pending] [Confirm Deletion? (Y/N)]

케서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진 순은선이 용융된 구리 타르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극도로 고요해진 방 안에서, 오직 시스템의 카운트다운 소리만이 그의 차가운 신경망 속을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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