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성령의 손길이 다음 발을 쏘기 위해 맹렬하게 열을 내뿜으며 냉각 밸브를 개폐하는 그 순간, 수색 병단이 롤랑 일당과 백민들이 숨어든 황 분말 세련창 복판까지 사슬 문을 뚫고 쏟아져 내렸다. 육중한 철제 문이 경첩째 뜯겨 나가며 바닥을 긁는 파열음이 좁은 정제실 내부를 뒤흔들었다. 자욱한 분진 사이로 은색 기사 투구와 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성령 교단의 갑주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들끓는 열기와 유황 먼지 속에서 그들은 이단의 흔적을 쫓는 사냥개처럼 검을 치켜세웠다.

"이교의 더러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서기장 롤랑과 그를 따르는 이단 무리를 한 놈도 남김없이 압수하라!"

수색대의 선두에 선 심판관이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공기 중의 먼지를 헤치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손에는 성황청이 이단 추적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청동 마력 감지기가 들려 있었다. 감지기 중앙에 박힌 마정석이 롤랑의 공학적 투시안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특이 마력 노이즈를 감지하고 붉은빛을 명멸하고 있었다.

롤랑 에르하르트는 세련창 안쪽의 어둠 속에서 그 광경을 건조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심장이 빠르게 고동쳤으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기사들의 갑주가 부딪치는 금속성 소음과 백성들의 억눌린 신음이 뒤섞이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롤랑은 품속에 들어 있는 양피지의 미세한 촉감을 느꼈다.

그것은 오스벨트의 세무 관리 헤르만에게서 갈취한 영주군의 침공 계획서였다. 탐욕스러운 헤르만을 포섭하는 과정은 철저히 계산된 공리주의적 투자였다. 롤랑은 헤르만의 아내인 엘리제에게 탄산나트륨을 결합하여 정밀하게 가공한 최고급 자스민 향 자치령 비누 세트를 정기적으로 무상 증정했었다. 중세의 조악한 유지 비누에만 익숙했던 변방의 귀부인에게 향기롭고 부드러운 자스민 비누는 신의 은총과도 같은 사치품이었다. 그 향기에 매료된 아내의 집요한 성화와 롤랑이 제시한 백석염 독점권의 이권 앞에서, 세무 관리는 결국 영주 가문을 배반하고 영주군의 야간 침공 루트와 교단 심문단의 세부 이동 경로가 담긴 기밀을 통째로 넘겨주고 말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화약이다.'

롤랑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적들의 이동 경로를 한 발 앞서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 좁고 폐쇄적인 황 분말 세련창으로 그들을 유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기장님, 놈들이 화약 상자 쪽으로 접근합니다. 더 지체하면 위험합니다."

어둠 속에서 리디아 폰 보이스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녀의 소매 안쪽에는 가문의 비밀 문서고에서 찾아낸 '842년 조인된 동부 오스벨트 자치 면책 특권 세칙'의 먼지 낀 고문서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교단이 법리적 명분을 내세워 영지를 몰수하려 들 때, 성황청 스스로가 서명했던 이 고대 조약은 그들의 손발을 묶어버릴 법적 족쇄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위대한 법적 방패를 펼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눈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광신적인 무장 심판관들을 물리적으로 소거해야만 했다.

롤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세련창 구석에 위치한 대형 청동 가마로 향했다. 그 가마는 황석을 가열하여 순수한 유황 분말을 정제하는 특수 제작된 가마였다.

"개릭, 정제 가마의 6번 밸브를 개방해라. 완전히 열어젖혀라."

롤랑의 명령에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대장장이 개릭 아이언피스트가 거친 숨을 내쉬며 청동 레버를 힘껏 움켜쥐었다.

개릭이 쥐고 있는 거대한 가마 끌 망치와 대장장이들의 손에 들린 무기들은 평범한 철기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과거 개릭의 점토 가마가 흑연 비율의 편중으로 인해 폭발 직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롤랑은 공학적 투시안으로 가마 벽면의 미세 균열과 인장 응력을 진단하여 보강 공식을 적어 주었었다. 개릭이 그 공식을 철저히 준수하여 개조한 강철 전용 도가니는 불순물을 완벽하게 걸러내어 탄소 함유량이 극히 일정한 고강도 강철을 생산해 냈다. 그 강철로 주조된 무기들은 교단 기사들의 두꺼운 플레이트 아머조차 찢어발길 수 있는 가공할 경도를 지니고 있었다.

끼이이익!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가마의 고압 벨브가 열렸다.

순간, 정제 가마 내부에서 섭씨 120도로 가열되어 미점 상태를 유지하던 고농도의 유황 가스가 굉음을 내며 살포되기 시작했다. 밀폐된 세련창 내부로 붉고 매캐한 연황빛 가스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붉은 장막에 가로막혔고, 공기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독한 황의 냄새로 가득 찼다.

"콜록! 이, 이게 무슨...! 눈이, 눈이 따갑다!" "연막이다! 이단들이 사술을 부린다! 성호를 지켜라!"

수색 병단의 기사들이 기침을 터뜨리며 비틀거렸다. 철제 투구의 좁은 시야 구멍 사이로 매운 유황 가스가 스며들자 그들은 앞을 전혀 분간하지 못하고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더욱 치명적인 변화는 그들이 자랑하던 마도구에서 일어났다. 심판관의 손에 들려 있던 청동 마력 감지기가 요란한 금속성 비명을 지르며 불꽃을 튀겼다.

파지직! 콰직!

붉은 마정석이 검게 그을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롤랑은 이미 7화에서 정제 가마 내부를 투시하던 중, 특정 농도 이상의 고농도 유황 가스가 방출되는 지점에서는 성황청의 마력 감지기가 방출하는 탐지 파동이 가스 입자의 이온화 반응과 간섭을 일으켜 완벽하게 차단된다는 사실을 정밀한 수치로 분석해 두었었다.

그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열역학적 가스 팽창과 원소의 전기적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기술적 차단이었다. 교단의 자랑거리인 이단 추적 마도구는 매캐한 유황 연기 속에서 고철 덩어리로 전락했다.

"감지기가... 감지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마력이 흐려지고 있어!"

심판관이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그의 음성은 유황 가스의 쉿쉿거리는 소음에 파묻혔다.

붉은 안개 속에서 완벽하게 장님이 된 적들을 바라보며, 롤랑은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야에 푸른빛의 스펙트럼이 펼쳐졌다.

[공학적 투시안 활성화] [잔존 비열 시각 변환 완료] [뇌 신경 과부하율: 34%] [이명 강도: 중(Medium)]

귓가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으나, 롤랑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고통을 억눌렀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전혀 달랐다. 자욱한 유황 연기는 투명한 격자무늬로 변했고, 그 너머에서 허둥대는 기사들의 신체 온도 분포가 붉고 노란 열화상 이미지로 뚜렷하게 관측되었다.

심판관들의 갑주 두께, 관절 부위의 고정 핀 위치, 인장 강도가 취약한 흉판의 접합선이 소수점 둘째 자리의 수치와 함께 3D 모델로 롤랑의 시야에 정밀하게 투영되었다.

"오른쪽 사격선, 거리 15미터. 횡단 열로 전개 중인 은색 투구 세 명. 조준점은 목덜미 고정 핀이다."

롤랑이 나직하고 건조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유황 연기 속에 대기하고 있던 화승총 사수단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사격."

탕! 타앙!

자욱한 붉은 연기 속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오스벨트의 장인들이 규격화된 수치에 맞추어 정밀하게 깎아낸 화승총의 총열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궤적으로 납탄을 날려 보냈다.

푸훵! 하는 파열음과 함께 기사들의 목덜미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투시안이 가리킨 골격 약점을 정확히 관통당한 기사들이 단 한 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이 착용한 두꺼운 철갑은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적들은 좌측으로 이동한다. 사격선 수정. 각도 좌로 12도. 일제 사격."

롤랑의 냉혹한 지시가 이어질 때마다 연기 속에서 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그들은 어디서 총탄이 날아오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사신에게 난도질당하듯, 성령의 심판관들은 비명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고성능 공학 시각과 통제된 화학 전술이 결합한 완벽한 살육이었다. 이단을 처단하겠다며 광포하게 날뛰던 교단의 정예 병력은,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붉은 연기 속에서 장난감처럼 파괴되고 있었다.

"이, 이 악마 같은 놈들이...!"

수색대장 바르톨로메오가 피로 물든 대검을 휘두르며 유황 연기를 갈랐다. 그의 갑주는 이미 여러 발의 도탄으로 인해 군데군데 찌그러져 있었고, 투구 내부에서는 숨을 쉴 수 없어 흘린 침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했다.

그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개릭 아이언피스트였다.

"악마를 찾는가, 교단의 사냥개 놈아."

개릭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묵직했다.

바르톨로메오가 대검을 내리치려 했으나, 롤랑의 투시안은 이미 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개릭, 놈의 우측 어깨 관절 볼트가 충격으로 이완되어 있다. 그곳을 타격해라."

롤랑의 음성이 개릭의 귀에 꽂혔다. 개릭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비틀며 들고 있던 가마 끌 망치를 가로로 휘둘렀다.

과거 롤랑의 보강 공식으로 완성된 고강도 강철 도가니에서 탄생한 망치 머리가 바르톨로메오의 우측 어깨를 정확히 강타했다.

콰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굉음과 함께 신성 기사의 어깨 갑주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뼈가 바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뒤이어 울렸다. 바르톨로메오의 대검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악!"

바르톨로메오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투구 틈새로 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개릭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무고한 백성들을 이단이라는 명목 하에 무자비하게 도륙했던 교단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서린 것은 분노를 넘어선 차가운 집행의 의지였다.

"이 망치는 우리 대장간의 가마를 지켜낸 철이다. 너희가 짓밟으려 했던 오스벨트의 흙이다."

개릭이 두 손으로 망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죽어라."

우지끈!

묵직한 강철 망치가 바르톨로메오의 투구 정중앙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완벽한 주조 공정으로 단련된 고탄소강의 경도는 기사의 신성 투구를 가볍게 관통하여 두개골을 분쇄했다. 기사는 단 한 번의 단말마도 남기지 못한 채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시신 위로 매캐한 유황 연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주변을 채우고 있던 사제들과 남은 병사들 역시 오스벨트 포수들의 무자비한 사격과 대장장이들의 연장 아래 차례로 쓰러졌다. 소리를 지를 기회조차 빼앗긴 채, 교단의 정예 수색대는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세련창 바닥의 진흙 속에 파묻혀 생을 마감했다.

"상황 종료."

롤랑이 투시안의 활성화를 해제했다. 시야를 뒤덮고 있던 푸른 격자들이 사라지며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요란하게 울렸으나, 그는 가볍게 이마를 짚을 뿐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세련창 내부의 붉은 유황 연기가 환기 구멍을 통해 서서히 빠져나가며, 바닥에 겹겹이 쌓인 교단 병사들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디아 폰 보이스트가 롤랑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시신들을 무감각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품속의 조약 문서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교단의 무장 심문단을 이곳에서 전멸시켰습니다. 법리적으로는 그들이 먼저 면책 특권을 침해하고 불법 침입한 것으로 구성할 수 있겠으나, 성황청이 이 사태를 묵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다."

롤랑이 바닥에 떨어진 찌그러진 청동 마력 감지기를 발로 툭 차며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가 이토록 철저하게 깨진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거다. 이성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더 거대한 힘의 물리적 한계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물리 법칙과 공리적 계산에 기반한 확신만이 서려 있었다.

* * *

같은 시각, 오스벨트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고원 지대의 임시 천막 안.

칼렌 대주교는 탁자 위에 놓인 성령의 기도서 위에 손을 얹은 채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천막 외부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런 전갈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바르톨로메오의 심문단이 세련창으로 진입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대주교의 물음에 보좌 사제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곳의 지형이 험하고 유황 가스가 가득하여 통신 마도구의 신호가 간헐적으로 끊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톨로메오 경의 정예 병력이니 필시 이단 무리의 목을 들고 복귀할 것입니다."

"아니, 무언가 잘못되었다."

칼렌 대주교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슴에 걸린 금빛 십자가를 꽉 움켜쥐었다. 성령의 손길이 파괴되었을 때 느꼈던 그 불길한 진동이 오스벨트의 대기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천막의 가죽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전령 기사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와 바닥에 엎드렸다. 기사의 갑주에는 검은 그을음과 붉은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대대주교님! 협곡 하부의 세련창에서... 심판관 전원이 전멸했습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무엇이라?!"

칼렌 대주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분노와 경악으로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성령의 이름을 받든 정예 무장 심문단이, 변방의 천한 광부들과 서기장 놈에게 흔적도 없이 소멸당했다는 사실은 그의 종교적 확신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단... 더러운 악마의 자식들이 감히 성령의 대행자들을 도륙했단 말이냐!"

대주교의 입에서 핏발 선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이성은 이미 오스벨트의 화약 연기 속에서 증발해 버린 지 오래였다. 그에게는 이제 법리도, 성황청의 규율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저 불온한 기술의 싹을 대륙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는 광신적인 사명감만이 뇌리를 지배했다.

"당장 전령을 보내라! 동부 교구의 모든 무장 용병 연합과 성령 기사단에게 대소집령을 발포한다!"

칼렌 대주교가 탁자를 내리치며 선언했다.

"머릿수 2,000명의 대군을 구성하라. 오스벨트 교구의 자치권 따위는 이제 무의미하다. 그 땅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모두 악마의 오염을 정화한다는 명목 하에 완전히 불태워 버려라! 대총동원 사법을 즉각 시행 공포한다!"

광기에 찬 대주교의 선언이 고원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오스벨트 협곡을 향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2,000명의 무장 대군이 오스벨트 전역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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