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년 10월 14일 14:02, 서울지방경찰청 제1취조실 (37.5700° N, 126.9744° E)]
실내 온도는 영상 17.5도. 습도는 32퍼센트. 사방이 회색 시멘트로 마감된 3.3제곱미터의 밀실은 건조했다. 천장에 매달린 백색 형광등이 미세한 고주파 음을 냈다. 웅, 하는 진동이 귓바퀴를 건드렸다. 철제 책상 위에는 노란색 표지의 피의자 신문조서 파일이 놓여 있었다. 강태혁은 등을 곧게 세우고 앉았다. 척추뼈마디가 딱딱하게 맞물렸다. 맞은편에 앉은 특별감찰팀장 하태수가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금속제 뚜껑이 책상에 부딪쳐 맑은 소리를 냈다.
"강태혁 경정."
하태수의 목소리는 낮았다. 물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본청 특별수사본부의 1급 기밀 매뉴얼. 강 경정이 직접 작성한 프로파일링 매뉴얼 북이다."
하태수가 조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가 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 매뉴얼의 사본이 지난주 마포구 망원동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다. 피해자의 혀 밑에 말려 들어가 있더군. 인쇄된 종이의 지문은 지워졌지만, 복사기 고유의 드럼 긁힘 자국이 강 경정의 개인 집무실 복사기와 일치했다."
하태수가 턱을 약간 치켜들었다. 그의 시선이 태혁의 눈동자에 고정됐다.
"기밀 유출이다. 혹은, 공모거나."
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하태수의 손가락 끝으로 내렸다. 하태수의 왼손 검지 손톱 밑에 미세한 굳은살이 보였다. 펜을 쥘 때 생기는 자리가 아니었다. 마작을 하거나 칩을 만질 때 생기는 마찰의 흔적이었다. 태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일정했다.
"조서 제3조 제2항을 보십시오."
"뭐?"
"하 팀장이 들고 있는 그 보고서 말입니다. '피의자는 기밀 서류를 유출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이라고 적혀 있군요. 주어와 목적어의 배치가 조잡합니다. 내가 유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문장을 모호하게 엮은 겁니다."
태혁의 시선이 하태수의 눈을 꿰뚫었다.
"내가 작성한 매뉴얼 북은 총 320페이지입니다. 그중 유출되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몇 페이지입니까?"
하태수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만년필로 조서의 한 지점을 툭툭 쳤다.
"120페이지부터 140페이지까지다. 연쇄살인범의 행동 패턴 분석 항목이지."
"틀렸습니다."
태혁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그 부분은 115페이지부터 135페이지까지입니다. 개정판이 나오기 전의 구 버전 페이지 번호군요. 하 팀장은 지금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유출된 구형 조서를 기준으로 나를 기소하려 하고 있습니다. 자구의 불일치. 수사관으로서 기초적인 태만입니다."
하태수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말장난은 여전하군, 강태혁. 페이지 번호 몇 개가 틀렸다고 해서 네가 기밀을 넘긴 혐의가 사라지지는 않아. 이 유출본의 인쇄 시점은 정확히 3일 전이다. 네가 감찰팀의 내사 대상이 된 바로 그날이지."
하태수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몸에서 인공적인 스킨 향취와 함께 정체불명의 불쾌한 악취가 섞여 나왔다.
"네가 살인마에게 정보를 팔아넘긴 거다. 네 완벽한 프로파일링이 실제 범죄로 구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렇지 않나?"
태혁은 손가락 끝을 마주 잡았다. 손끝에 가해지는 압력을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태수의 공격은 정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요했다. 이것은 법적인 단죄를 목적으로 한 취조가 아니었다. 강태혁이라는 인물을 기밀 유출범으로 낙인찍어 특별수사본부의 통제권을 빼앗으려는 권력 투쟁이었다.
"나는 3일 전 21시부터 다음 날 06시까지 제2취조실에서 대기 상태였습니다."
태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 시간 동안 내 개인 집무실은 폐쇄되었습니다. 출입 기록을 확인하셨습니까?"
"물론 확인했지."
하태수가 서류를 뒤적였다. 그리고 한 장의 출력물을 태혁의 앞에 제시했다.
"22시 14분. 누군가 네 카드로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폐쇄회로 화면에는 사각지대만 찍혔더군. 하지만 카드의 주인은 너다."
하태수의 눈빛에 확신이 서렸다. 승리를 예감한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네가 직접 들어가서 복사기를 작동시켰거나, 아니면 제삼자에게 카드를 넘겨준 거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진술서에 서명해라. 편해질 거다."
그 순간이었다. 하태수의 입술이 움직이며 "카드의 주인은 너다"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찰나, 태혁의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 파열음이 울렸다. 키이이익.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우뇌 깊은 곳을 찔렀다. 태혁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다. 회색빛 시멘트 벽면이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열감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었다. 소중한 무언가가 모래알처럼 흘러내려 사라지는 감각이었다. 어린 시절, 동생 아현이와 함께 걸었던 붉은 흙길의 색감이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졌다. 기억의 영구적 괴사였다. 그 고통의 대가로, 태혁의 눈앞에 기이한 환영이 펼쳐졌다.
취조실의 회색 공기 위로 붉고 푸른 빛의 선율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하태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카드의 주인은 너다"라는 문장이 공중에 글자 형태로 떠올랐다. 그중 '너다'라는 글자가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지며 붉은 낙인처럼 타올랐다. 거짓이었다.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강렬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탄내였다. 무언가 유기물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불쾌한 냄새.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묘할 정도로 달콤하고 짙은 복숭아꽃 향기. 매캐한 그을음과 흐드러진 봄의 향기가 뒤섞인 이질적인 후각 자극이 태혁의 뇌신경을 강타했다. 태혁은 책상 모서리를 꽉 쥐었다. 손톱이 하얗게 변했다. 이 냄새는 하태수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태수가 숨기려 하는 진실의 현장에서 흘러나온 정보였다.
'복숭아꽃 향기... 그리고 탄내.'
태혁은 고통을 삼키며 하태수의 얼굴을 응시했다. 하태수의 오른쪽 뺨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태혁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왼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신경학적 회피 반응이었다. 태혁은 뇌신경의 통증을 억누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 팀장."
"서명이나 해."
"22시 14분이라고 하셨습니까."
태혁이 상체를 숙였다. 하태수와의 거리가 30센티미터로 좁혀졌다.
"그 시간, 하 팀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태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왜 네 질문에 답해야 하지? 여기는 감찰 취조실이다."
"조서 제5페이지의 타임라인을 다시 확인해 주십시오."
태혁이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하태수 앞의 서류를 가리켰다.
"거기 보면, 하 팀장의 개인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22시 10분, 영등포의 한 사설 도박장 근처에 있는 무인 현금인출기에서 500만 원이 인출되었습니다."
하태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건 사적인 용무다. 이번 사건과 무관해."
"무관하지 않습니다."
태혁의 목소리가 취조실의 차가운 벽에 부딪쳐 공명했다.
"500만 원을 인출한 카드의 소유주는 하 팀장이 아닙니다. 불법 도박 자금 세탁용으로 개설된 이른바 '대포 통장'의 연계 카드였죠. 그리고 그 카드의 명의자는 명동의 사채업자 김 씨입니다. 김 씨는 지난달 마포구 연쇄살인 사건의 세 번째 피해자와 긴밀한 채무 관계로 얽혀 있던 인물입니다."
하태수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의 가슴팍이 크게 들썩였다.
"무슨 소설을 쓰는 거냐! 증거 있어?"
"증거는 하 팀장이 방금 제출한 이 조서 안에 있습니다."
태혁은 조서의 특정 문장을 손톱으로 강하게 긁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밀실을 채웠다.
"하 팀장이 작성한 내사 보고서 8페이지를 보십시오. '피의자 강태혁은 기밀 서류의 유출 대가로 무기명 채권을 수령했을 가능성이 농후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농후함'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확신이 없을까요? 실제 채권을 수령한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태혁의 어조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 채권은 하 팀장의 개인 금고에 들어 있습니다. 3일 전 22시 14분, 내 카드로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복사기를 작동시킨 인물은 내가 아닙니다. 내 카드를 복제하여 사용한 감찰팀 소속의 누군가겠지요. 그리고 그 지시를 내린 것은, 22시 10분에 도박 자금 인출을 지시하던 하 팀장 바로 당신입니다."
"이 자식이...!"
하태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철제 의자가 뒤로 밀리며 요란한 파열음을 냈다. 취조실 뒤편 참관실의 유리에 하태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이 비쳤다. 참관실 안에서 대기하던 감찰반원들의 웅성거림이 방음벽을 뚫고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그들의 시선이 하태수의 등 뒤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억지 부리지 마라, 강태혁! 네놈의 추측성 발언은 법정에서 아무런 효력도 없어!"
하태수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검찰이 판단할 겁니다."
태혁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태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투명했다.
"하 팀장이 도박 자금으로 사용한 500만 원의 일련번호와, 이번에 유출된 기밀 매뉴얼 북의 복사본이 담겨 있던 파일철에서 검출된 미량의 화학 물질 성분이 일치할 겁니다. 도박 칩에 묻어 있던 특수 형광 염료지요. 하 팀장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는 저 굳은살처럼 말입니다."
하태수가 급히 자신의 왼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완벽한 오만함으로 무장했던 하태수의 성벽이 단 몇 마디의 자구 모순과 정밀한 프로파일링 앞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태혁은 하태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당신은 나를 기밀 유출범으로 몰아세워 능력을 의심받게 만들고, 특별수사본부의 지휘권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조서의 문장들을 너무 서둘러 조작하느라, 자신의 알리바이와 자금 출처의 논리적 고리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가 꼬이듯, 당신의 음모도 꼬여버린 겁니다."
하태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거친 숨소리만이 취조실의 건조한 공기를 부유했다. 그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굴욕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조서 한 장으로 강태혁을 매장하려던 하태수의 계획은, 그 조서에 적힌 자구들의 모순으로 인해 역으로 자신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었다.
완벽한 역전이었다. 취조실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간 것처럼 차가운 침묵이 지배했다. 참관실의 문이 열리고, 한 감찰반원이 초조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하태수의 곁으로 다가가 귀속말을 건넸다. 하태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태혁에게로 향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사실인가?"
하태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원에게 물었다. 반원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하태수에게 무선 전화기를 건넸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다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새어 나왔다.
- 팀장님, 정문입니다. 방금 자수자가 들어왔습니다. 마포구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입니다.
하태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용의자의 신원은?"
- 서준희라고 합니다. 본인이 직접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반원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 자수 조건으로 오직 한 사람만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지금 취조실에 있는 강태혁 경정님이 직접 자신을 심문하지 않으면, 단 한 마디의 진술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태수의 전화기가 책상 위로 툭 떨어졌다. 태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침내, 진짜 모방범이 제 발로 3평짜리 밀실을 향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