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천지를 뒤흔들던 극양(極陽)의 기운을 심연보다 깊은 단전의 밑바닥에 가두어 둔 채, 당신은 음풍(陰風)이 가득한 교의 비밀 분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린 살기는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우나, 당신의 혈관을 흐르는 구양신공(九陽神功)의 진기는 보이지 않는 화룡(火龍)이 되어 내맥을 용틀임하며 맥동하고 있습니다. 마치 거친 파도가 고요한 심해를 감추듯, 당신은 한 줌의 인기척도 남기지 않은 채 배신의 악취가 풍기는 밀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스며듭니다.

그곳에는 한때 당신에게 평생의 충성을 맹세했으나, 가문의 비정한 후계 암투 속에서 이복형의 눈짓 한 번에 손바닥 뒤집듯 안면을 바꾸었던 분타주 육태강(陸泰江)이 기름진 고기를 씹으며 승전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장막이 걷히고, 허공을 가르는 당신의 형상이 흔들리는 촉광 너머로 비쳤을 때, 육태강의 비대한 안면은 경악으로 일그러집니다. 죽어 백골이 되었어야 할, 혹은 단전이 파괴되어 진흙탕을 기며 구걸해야 할 폐인이 온전한 풍채로 신형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네, 네놈이 어찌…! 분명 단전이 분쇄되어 폐인이 되었거늘, 어찌 살아서 이곳을 품었단 말이냐!"

그의 비열한 음성이 가을날의 낙엽처럼 바르르 떨립니다. 당신은 대답 대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뜹니다. 불꽃의 빛깔은 허공에 드러내지 않으나, 오직 천지를 뒤흔드는 구양의 열 압력만을 가둔 채 밀실 전체의 공기를 숨 가쁘게 옥죄기 시작합니다. 순간 대지에 깃든 수분이 단숨에 마르고, 사방의 벽면에 서렸던 축축한 습기가 백색의 수증기로 변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화염을 겉으로 발산하지 않는 억제된 극양지기(極陽之氣)는 마치 대지 깊숙한 곳에서 분출을 앞둔 활화산의 기세와도 같습니다. 들이쉬는 숨결마다 허파가 타들어 가는 고통에 육태강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을 움켜쥡니다. 일사천리로 도망치려던 그의 신형은 초목개병(草木皆兵)의 두려움 속에 완전히 굳어 버려, 끝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소주(少主)여… 소인을, 이 불민한 소인을 살려주소서! 이 모든 것은 본교의 대세에 밀려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나이다!"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린 그의 등 위로 배어 나온 땀방울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사라집니다. 당신은 오만하면서도 장중한 태도로 그를 내려다봅니다. 그의 목숨은 이제 바람 앞의 등잔불이자, 당신의 손끝에 쥐어진 한 줌의 재와 다름없습니다.

운명의 기로에서 당신의 뜨거운 시선이 숨죽인 배신자의 정수리를 향해 고요히 내리꽂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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