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가 풍기던 검푸른 한강 물결이 마침내 제 속도를 찾고 아침 햇살을 받아 잔잔하게 부서집니다. 온 도심을 뒤덮었던 기괴한 검은 안개와 밤마다 빌딩 숲 사이를 기어 다니던 아귀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도 감쪽같이 청소되었습니다. 얼어붙었던 당신의 심장박동이 기적처럼 부드러워지고, 얼음장 같던 목덜미의 수온도 다시 미지근한 인간의 온도로 돌아옵니다.
퇴마는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가문의 핏줄을 타고 흐르던 마지막 금기,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 세상의 인과를 다시 쓰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계율이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로 당신이라는 존재의 궤적은 이 세상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휘발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붉은 벽돌이 늘어선 익숙한 동네 골목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발소리는 나지 않고, 길바닥에 길게 늘어져야 할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대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자, 열린 창문 틈새로 은은한 멸치 육수 냄새와 함께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계란말이가 많이 먹고 싶지? 나 원래 아침 잘 안 먹잖아." "얘가 웬일이래. 배 속에 거지가 들었나. 먹고 싶으면 더 해줄 테니까 남기지만 마라."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어머니와 동생의 얼굴에는 더는 악령들의 위협에 시달리던 그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평온한 일상의 모습입니다. 당신은 거실 유리창 너머로 손을 뻗어봅니다. 하지만 투명한 유리를 통과해 공중에 머무는 당신의 손끝은 그 어떤 온기도 붙잡지 못합니다.
그때, 국을 푸던 어머니가 갑자기 손을 멈추고 멍하니 거실 창밖을 바라봅니다. 당신과 정확히 시선이 마주치는 위치입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이 솟구칩니다.
"엄마? 왜 그래? 밖에 뭐 있어?" 동생의 물음에 어머니는 머리를 긁적이며 쓸쓸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아니... 왠지 이 집에 우리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주 듬직하고 고마운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참,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하네."
어머니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 국그릇을 나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당신의 가슴 속에서 시리면서도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릅니다. 비록 그들의 기억 속에서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졌지만,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가족들의 평화로운 아침이 눈앞에 실재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소중한 대화 속에서 당신의 흔적은 희미한 여운으로나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계율은 온전히 지켜졌고, 당신의 처절했던 사투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당신은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따스하게 공터를 비추는 아침 햇살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놓습니다. 뒤돌아선 당신의 등 뒤로, 마침내 완전한 평화가 깃든 도심의 활기찬 소음이 아련하게 울려 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