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마포의 빌딩 숲은 거대한 상喪배를 올린 것처럼 침울한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자정을 단 2분 남겨둔 시각, 늘 웅성거리던 강변북로의 차 소리는 거짓말처럼 단절되었고, 오직 오피스텔 보일러 배관이 덜덜 떨리는 기괴한 마찰음만이 방 안을 채웁니다.
갑자기 싱크대 수전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집니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급격히 식어가는 서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척추를 관통합니다. 동시에 가슴속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쿵, 쿵, 널뛰기 시작합니다. 도심의 온도가 비자연적으로 급강하할 때 나타나는 가문 특유의 신체적 전조 증상입니다. 체온이 내려앉고 호흡이 가빠질 때, 스마트폰 액정 화면이 핏빛 경고등처럼 붉게 점멸하며 재난 문자를 토해냅니다.
[재난 경보: 자정을 기해 도심 내 '경계 침범' 현상 발생. 시민 여러분은 가택의 문단속을 철저히 하시고, 외부의 어떠한 인기척에도 응답하지 마십시오.]
불과 한 시간 전, 동생 수아와 나누었던 시시콜콜한 편의점 간식거리에 대한 통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오빠, 올 때 삼각김밥은 참치마요로 사 와. 매운 건 속 쓰려." 그토록 실없이 웃어넘기던 일상의 목소리가 갑자기 아득한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수아는 분명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는데.
‘스스슥, 스윽…….’
현관문 너머에서 소름 끼치도록 가느다란 마찰음이 들려옵니다. 누군가 손톱을 곧추세워 방화문의 두꺼운 도장면을 아래에서 위로 긁어 올리는 소리입니다. 둔탁하게 긁히는 철판 음 사이로,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낯익은 음성이 고막을 파고듭니다.
"오빠……? 안에 있어? 나 열쇠를 잃어버렸나 봐. 밖이 너무 추워. 빨리 문 좀 열어줘."
수아의 목소리입니다. 억양도, 톤도 분명 내 동생의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한 간격마다 섞여 나오는 기묘한 쇳소리와 어딘지 모르게 기계적인 고저 장단이 본능적인 경보 장치를 울립니다. 마주 보는 거울 속에 갇힌 목소리처럼, 그것은 인간이 내는 온전한 소리가 아닙니다.
머릿속에서 가문 대대로 내려온 누런 한지 서책의 구절이 요동칩니다. '이계의 망량은 산 자의 가장 친밀한 허울을 쓰고 경계를 넘어오려 하니, 문틈의 대화에 절대로 귀와 입을 열어주지 말라.'
문고리가 아주 느리게, 서서히 아래로 덜컥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찬 바람이 문바람벽 틈새를 타고 들어와 방 안의 공기를 얼려버립니다. 주머니 속에서 다급히 꺼낸 조부의 유품, 해어진 가죽 쌈지 안에는 오직 두 가지 비책만이 들어 있습니다. 소리마저 삼켜버린다는 어두운 색의 '참아내는 비단'과, 사악한 것의 출입을 물리적으로 단절한다는 경면주사로 물들인 '붉은 명주실'.
당신의 등줄기로 싸늘한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문밖의 존재가 다시 한번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소리칩니다.
"오빠, 안에서 숨 쉬는 소리 다 들려. 왜 대답 안 해?"
움직여야 합니다. 찰나의 침묵 속에서 당신은 어떤 가문의 계율을 붙잡아 이 밤을 버텨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