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요동의 광야를 뒤흔들던 신식 화포의 정천기뢰(驚天雷) 소리가 멎고, 천하의 기운이 한양으로 수렴되기 시작한 지 이제 수회가 흘렀습니다.

당신은 북악산의 정기를 뒤로하고 우뚝 솟은 경복궁 근정전의 고청(高廳)에 서서, 저 멀리 남산 너머까지 뻗어 나간 도성의 장엄한 풍경을 굽어봅니다. 일찍이 만방의 외적들이 조선을 낮추어 보고 야만의 변방이라 일컬었으나, 이제 그 눈먼 오만은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화약의 묘리와 정밀 제철의 법식을 꿰뚫은 당신의 손끝에서 탄생한 무비(武備)는, 대륙의 침략군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열강들조차 스스로 굴복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억지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다스리는 대조선은 단순히 패도(覇道)로 천하를 무릎 꿇리는 정복제국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요동을 수중에 넣고도 사대부들의 유학적 도리와 당신의 혜안을 결화시켜, 베이징의 파멸 대신 '만국공법(萬國公法)'을 재정립하는 유려한 외교의 평화 통상을 택한 덕분입니다. 맹목적인 정벌 대신 조선이 제시한 도의와 압도적인 기술 군사력은, 도리어 천하 만국이 조선을 ‘천자(天子)의 나라’ 이상으로 경외하게 만드는 반석이 되었습니다.

지금 도성의 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경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석탄의 그을음 대신 정교한 매연 응축 장치를 달아 맑은 하늘을 유지하는 대공방(大工房)들이 도열해 있고, 그곳에서 찍어내는 증기 전차와 정밀 기계들이 세계 방방곡곡으로 수출됩니다. 더욱이 경이로운 것은 문화의 교류입니다. 대동서국(大東書局)에서 훈민정음으로 인쇄한 공학 서적과 천문 지리서들이 서양의 황실과 대학으로 퍼져나가며, 만국의 학자들은 학문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한글을 필수로 익히고 있습니다. 야만이라 천대받던 동방의 언어가 이제 온 인류의 '지혜의 표준'으로 화한 것입니다.

조정의 백관들은 상소문을 통해 당신의 치세를 일컬어, 삼대(三代)의 치세를 뛰어넘은 만세 성세라 칭송하기 마지않습니다. 무력을 갖추었으되 함부로 휘두르지 아니하고, 도덕을 숭상하되 나약하지 않은 나라. 그리하여 전쟁의 참화를 종식시키고 아시아를 넘어 지구 전체에 따스한 인본적 평화를 영구히 정착시킨 찬란한 나라.

이윽고 궐문이 열리고, 붉은 제복을 입은 서양의 사신들과 오색 비단을 두른 동방의 군왕들이 당신을 알현하기 위해 근정전 뜰 아래 줄지어 엎드립니다. 그들의 손에는 조선의 가르침과 우방의 맹약을 구걸하는 친서가 들려 있습니다.

당신은 마침내 깨닫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심은 화력의 불꽃은 세상을 파멸시키는 지옥의 불이 아니라, 어두운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만만세토록 꺼지지 않을 동방의 평화, 박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밝히는 인류의 등불이었음을. 당신의 장엄한 치세는 이제 역사에 영원불멸할 불멸의 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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