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른쪽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지독한 열감이 뼈마디를 태워버릴 듯 뜨거웠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뇌 내 스피커가 고막을 찢을 듯 비명을 질렀다.

[경고: 게이지가 위험 수치인 75%를 초과했습니다. 지속적인 물리 충격 발생 시 영구적인 신체 손상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현재 발목 과부하 게이지: 78%]

회귀 전, 차디찬 잔디 위에 누워 절망했던 그날의 기억이 유령처럼 발끝을 타고 기어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태성은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태성아!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홍창민이었다. 성질 급한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뒤이어 다가온 백승우 역시 굳은 표정으로 태성의 발목 상태를 살폈다.

벤치 쪽을 힐끗 보았다. 최강식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 경계선까지 나와 교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냉정한 눈빛은 이미 수석 코치에게 대기 선수를 준비시키라는 신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여기서 나가떨어질 수는 없다.

이제 겨우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 그라운드는 내 전장이자, 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제단이다.

태성은 감독을 향해 오른손을 단호하게 들어 올렸다.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교체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다. 뛰겠다는, 아니, 이겨 보이겠다는 의지였다.

최강식 감독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교체 지시를 내리려던 손을 거두고 팔짱을 꼈다. 5분. 그것이 감독이 태성에게 허락한 마지막 유예 시간이라는 것을 태성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 순간, 일본 벤치에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점 골을 허용한 일본 코치진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9번, 강태성이라는 미지의 존재가 보여준 전술적 지배력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일본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로 나와 센터백 쿠리하라와 새로 교체 투입된 거구의 수비수 타카하시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9번이다! 9번을 죽여서라도 세워! 몸싸움으로 완전히 짓눌러라! 두 명이 붙어!”

지독한 대인 더블마크 특명이었다.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본의 수비진은 더 이상 라인을 올리지 않았다. 오직 태성만을 지우기 위해 사정없이 조여들었다.

쿠리하라와 타카하시. 180cm 후반의 단단한 체구를 가진 두 명의 센터백이 태성의 양옆을 가로막았다.

툭. 툭.

공이 없는 상황에서도 거친 어깨싸움이 들어왔다. 은근슬쩍 발목을 겨냥하는 지저분한 스터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야, 한국의 천재 스트라이커라며? 어디 한 번 더 뛰어보시지?”

타카하시가 거친 숨을 내쉬며 태성의 진로를 몸으로 막아섰다.

거칠고 탁한 육탄전이었다. 일본은 전술을 포기한 채, 오직 태성의 신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툭 치고 들어오는 충격마다 발목 게이지가 미세하게 요동쳤다.

[현재 발목 과부하 게이지: 79%]

시간이 없었다. 정면으로 부딪쳐서는 다리가 부러진다. 이 무식한 거구들을 힘으로 이기려 드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힘으로 안 된다면, 뇌로 부순다.’

태성은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릿속에서 ‘미래 전술 장부’가 푸른빛을 발하며 구동되었다. 초록색 잔디 위로 3차원 격자선이 촘촘하게 깔렸다. 상대 수비수들의 예상 이동 경로가 붉은색 반경으로 표시되었고, 우리 팀 선수들의 움직임이 파란색 선으로 시각화되었다.

그중에서 유독 짙은 파란색으로 깜빡이는 인물이 있었다.

백승우.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미드필드 진영에서 볼을 소유한 채 템포를 조율하고 있었다. 승우의 발끝에서 시작될 패스.

순간, 태성의 머릿속에 전생의 기억과 장부의 기록이 동시에 교차했다.

[백승우: 전방 롱패스를 찌를 때, 미세한 골반 축 불균형으로 인해 공의 궤적이 목표 지점보다 언제나 1m 짧게 떨어짐.]

이것은 백승우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신체적 습관이었다. 압박이 강해질수록 그의 골반은 미세하게 닫혔고, 패스는 정교하지만 짧았다.

지켜보던 다른 공격수들이라면 ‘패스 미스’라며 승우를 타박하거나, 제자리에 서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수비수에게 차단당했을 터였다.

하지만 태성은 달랐다. 약점은 미리 알고 있다면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

태성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승우야, 패스를 찔러라. 네가 찌르는 그 짧은 패스가, 저 바보들을 무너뜨릴 열쇠가 될 테니까.’

태성이 갑자기 중앙에서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로 강하게 스프린트를 시작했다.

“막아!”

쿠리하라와 타카하시가 동시에 태성의 뒤를 쫓았다. 두 명의 파괴적인 피지컬이 태성을 향해 쏠렸다. 태성은 자신이 완벽한 미끼가 되는 경로를 전술 장부의 좌표에 입력했다.

동시에 백승우의 발끝이 떠났다.

스르륵.

승우의 구두등이 공의 밑부분을 깎아 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전방으로 날아왔다. 일본 수비수들의 예측 낙하지점은 태성의 등 뒤 10m 부근이었다.

하지만 태성은 알고 있었다. 저 공은 정확히 1m 짧게 떨어질 것이다.

태성이 급격하게 전진 기어를 넣었다.

“뭐야?!”

태성을 뒤쫓던 타카하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성의 움직임은 공의 낙하지점보다 훨씬 앞선 곳을 향하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낙하지점 선점이었다.

태성이 수비수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낙하지점에 도달했다.

공은 거짓말처럼 태성의 발밑으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백승우의 미세한 골반 불균형이 만들어낸 ‘1m의 오차’를, 태성이 완벽한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지워버린 순간이었다.

쿠리하라와 타카하시가 뒤늦게 태성의 등을 덮치기 위해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두 개의 거대한 장벽이 태성을 덮쳐 누르려는 찰나.

태성은 공을 잡지 않았다.

잡아서 소유하는 순간, 압박에 갇혀 발목이 박살 날 것을 알고 있었다.

태성은 디딤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날아오는 공의 궤적에 가볍게 왼발 안쪽을 갖다 댔다.

공의 속도를 그대로 살려 반대편으로 가볍게 띄워 올리는 원터치 노룩 로빙 패스.

툭.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춘 듯했다.

태성의 등을 들이받으려던 쿠리하라와 타카하시의 몸이 허공에서 엉켰다. 두 수비수는 자신들이 쫓던 타깃이 공을 잡지도 않은 채, 보지도 않고 패스를 찔렀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들이 태성에게 쏠리면서 발생한 일본의 수비 뒷공간.

그 거대한 빈 공간을 향해, 처음부터 태성의 의도를 눈치채고 달리기 시작한 이가 있었다.

백승우였다.

자신의 패스가 짧았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태성이 이미 그 공을 예측하고 완벽한 각도로 띄워 보냈다는 것을 직감한 승우는 멈추지 않고 전방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허공을 가른 공이 일본 페널티 박스 안쪽, 백승우의 발밑에 자로 잰 듯이 떨어졌다.

골키퍼와 1 대 1 상황.

백승우는 침착했다. 달려 나오는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감각적인 칩슛을 시도했다.

포물선을 그린 공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일본의 골망 구석을 흔들었다.

펄럭.

그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경기장을 지배했다.

“골!!! 골입니다! 백승우! 대한민국의 역전 골이 터집니다!”

중계석의 해설위원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외쳤다.

붉은 물결이 그라운드를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골을 넣은 백승우는 세리머니도 잊은 채, 그대로 뒤를 돌아 태성을 향해 달렸다. 평소의 냉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승우의 얼굴에는 흥분과 경외감이 가득 차 있었다.

“태성아! 너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내 패스가 그리로 갈 줄 어떻게 알고 돌았냐고!”

승우가 태성의 어깨를 거칠게 껴안았다.

뒤이어 달려온 홍창민이 태성의 머리를 헤집으며 소리쳤다.

“미친놈! 진짜 괴물 같은 놈! 방금 패스 뭐야? 뒤에 눈 달렸냐?”

동료들의 뜨거운 포옹 속에서 태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이타적인 플레이. 동료를 이용해 상대를 무너뜨리는 사령관의 축구.

그 순간, 귓가에 맑은 알림음이 울렸다.

[어시스트 및 유기적 연계 플레이 성공!] [발목 과부하 게이지가 대폭 감소합니다.] [현재 발목 과부하 게이지: 25%]

붉게 타오르던 경고등이 사라지고, 편안한 녹색 불빛이 시야를 채웠다. 오른쪽 발목을 옥죄던 날카로운 통증도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태성은 벤치를 바라보았다.

최강식 감독은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우두커니 선 채, 들고 있던 전술 패드를 꽉 쥐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최 감독의 패드 화면에는 한국 선수들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결코 구현할 수 없을 것이라 치부했던 전술 시뮬레이션이 띄워져 있었다.

‘제로톱 가짜 9번.’

스트라이커가 미끼가 되어 수비진을 끌어내리고, 2선 미드필더가 그 공간을 침투해 해결하는 현대 축구의 정수.

그 불가능한 전술을, 고작 19세의 강태성이 그라운드 위에서 완벽하게 실현해 낸 것이다. 최 감독은 전율했다. 자신의 데이터가, 자신의 상식이 이 소년의 천재성 앞에 완전히 깨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익-!

이윽고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대 일본.

최종 스코어 2-1.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중계 카메라와 취재진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많은 마이크가 오늘 결승골의 주인공인 백승우를 향해 집중되었다.

“백승우 선수! 오늘 정말 극적인 역전 결승골이었습니다! 골 상황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땀에 젖은 백승우가 마이크 앞에 섰다. 평소 언론 인터뷰에서 극도로 말을 아끼던 냉정한 천재는, 오늘만큼은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했다.

“제가 넣은 골이 아닙니다.”

승우의 단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국으로 송출되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패스는 원래 짧았습니다. 수비수에게 차단당해야 마땅한 미스 패스였습니다. 하지만 태성이가 그걸 미리 예측하고 움직여 줬습니다. 그리고 제가 달릴 공간을 정확히 보고 완벽한 패스를 찔러줬죠.”

백승우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벤치로 걸어가는 태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깊은 존경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든 플레이는 강태성의 발끝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스트라이커가 아닙니다. 그라운드 전체를 지배하는 사령관입니다.”

그 인터뷰는 즉시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백승우 “오늘의 승리는 강태성의 발끝에서 창조되었다”] [괴물 신인의 등장!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강태성] [최강식 감독의 황태자? 진짜 사령관의 탄생]

국민들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랜만에 등장한 압도적인 재능에 온 나라가 국뽕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 찬사의 주인공인 태성은 축제 분위기의 라커룸을 빠져나와 임시 의무실의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스르륵. 스르륵.

차가운 젤이 오른쪽 발목에 발려졌다. 수석 의사가 초음파 탐촉자를 태성의 발목 피부 위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화면에 흑백의 인대 조직도가 나타났다.

태성은 숨을 죽인 채 화면을 응시했다. 게이지는 내려갔지만, 경기 중 받았던 물리적인 충격의 흔적이 마음에 걸렸다.

수석 의사의 손길이 한 지점에서 멈췄다. 그의 미간이 급격하게 좁아졌다.

“어라……?”

의사가 탐촉자를 조금 더 강하게 누르며 특정 부위를 확대했다. 화면 속, 오른쪽 발목 외측 인대 부근에 아주 미세하지만 짙은 회색으로 변색된 징후가 포착되어 있었다.

의무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수석 의사가 탐촉자를 내려놓고, 무거운 얼굴로 태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깊은 우려와 경고가 담겨 있었다.

“태성아. 너 이거…… 언제부터 이랬니?”

태성의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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