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보드 위, 붉은색 마커로 그려진 수비 시프트 도형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좌타자 상대로 2루수를 외야 잔디까지 밀어내고 유격수를 2루 베이스 우측으로 이동시키는 극단적인 변형 시프트. 그리고 태블릿 화면에 떠 있는, 당신이 방금 인트라넷에 업로드한 개막전 라인업 카드.
*쾅!*
두꺼운 감독실 원목 문이 비명을 지르며 벽에 부딪혔다가 튕겨 나간다. 문틀 너머로 우뚝 선 거구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고 연봉자인 헥터 알바레즈다. 34세의 노쇠한 슬러거. 그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감독실 공기를 단숨에 장악한다. 실크 인쇄된 라인업 용지가 그의 두꺼운 손아귀 안에서 사정없이 구겨진다.
"이따위 쓰레기 같은 포메이션 파일과 타순은 대체 누가 짜 준 거지, 꼬맹이 감독님?"
그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올스타 3회 선정에 빛나는 왕년의 거포다운 위압감이다. 하지만 당신의 머릿속 ‘미래 데이터 시트’에는 이미 그의 냉혹한 에이징 커브 수치가 실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시즌 알바레즈의 하드힛(Exit Velocity 95마일 이상 타구) 비율은 42%에서 31.5%로 폭락했다. 타구 평균 발사각 역시 14도에서 7도로 주저앉으며 땅볼 제조기로 전락한 상태. 게다가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95마일을 넘어가는 좌완 투수를 상대로 한 타율은 고작 .188에 불과했다. 내일 상대 선발은 리그 최고의 강속구 좌완 에이스다.
게다가 그가 분노하는 진짜 비즈니스 이면이 존재한다. 그의 5년 1억 달러 계약 조항에는 '이번 시즌 500타석 이상 소화 시 2,200만 달러 베스팅 옵션 자동 실행'이라는 계약 조건이 걸려 있다. 당신이 도입하려는 데이터 기반 플래툰 시스템과 7번 타순 배치는 그의 일확천금 노후 연금을 허공으로 날려 버리는 사형 선고다.
"내가 이 팀에서 쌓은 안타가 몇 개인지 알아? 100마일짜리 타구음이 뭔지도 모르는 풋내기가 컴퓨터 통계 장난질로 날 가르치려 들어?"
알바레즈가 당신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친다.
*콰앙!*
열린 문틈 너머로 클럽하우스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동요하는 젊은 유망주들, 프랜차이즈 스타의 눈치를 살피는 코칭스태프들의 시선이 감독실로 쏠린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 감독의 기강과 구단 장악력이 시험대에 오른 순간.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삐끗하면, 당신의 데이터 혁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라커룸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한다.
당신은 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선다. 잔뜩 독기가 오른 알바레즈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는 당신의 눈빛에 차가운 전율이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