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토리가 무대 중앙의 코어 가시 밸브를 발로 짓이겨 내리누르자, 은하 아파트의 거대한 20층 빌딩 뼈대 전체가 지류 지반 위로 무지막지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고막을 찢는 파쇄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귓가에 들러붙은 이명이 끈적하게 젖어 든 고막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짓눌린 공기는 습하고 비린 콘크리트 가루를 품은 채 사방으로 비산했다. 바닥이 수직으로 꺾이며 발밑의 감각이 통째로 꺼졌다. 수직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궤적 속에서, 강우의 왼쪽 눈이 붉은 광망을 뿜어냈다.
적색 채무 시각.
시야 전체가 핏빛 회계 장부처럼 재편되었다.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더미와 찢어지는 철근 마디마디마다, 붉은색 숫자로 표기된 인과의 채무 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강우 씨!"
백설아의 다급한 비명이 암전된 시야 너머에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녀가 뻗은 손이 강우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거칠게 쓸려 나가는 마찰열과 함께 축축한 땀방울이 강우의 뺨에 튀었다.
지반이 완전히 주저앉고 있었다. 상단의 거대한 천장이 찢어지며 무수한 대들보와 칼날 같은 시멘트 파편들이 주민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방이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아, 악! 내 다리, 다리가……!"
"구, 구해…… 줘…… 누가 좀……!"
수직으로 주저앉는 지옥의 도가니 속에서, 주민들의 단절된 목소리가 사방에서 스러졌다. 뺨을 스치고 지나는 파편들의 촉감이 서늘하고도 끈적였다. 강우는 추락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의 계산기를 멈추지 않았다.
'붕괴 속도 초과. 잔존 자산 가치 급락. 이대로 낙하 충격을 허용하면 주식회사 은하의 인적 자원 80%가 즉시 영구 손실 처리된다.'
손실은 곧 파산이다. 강우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설아 씨, 1동 관리인의 피의 도끼를 잡고 내 뒤를 바쳐."
강우가 이명이 들끓는 왼쪽 귀를 질끈 막으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건조했다.
"아파트 자체의 붕괴 인과율…… 그 근원을 친다."
그가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9화 귀부인의 아방궁 소유 장고에서 확보해 두었던 가죽 책이었다. '마담 바토리의 피 젖은 음악회 초청장 고서'. 표지에 음각된 바이올린 무늬가 진흙처럼 끈적이는 공기 속에서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위잉, 윙.
특수한 주파수였다. 단순한 건물의 붕괴음이 아니었다. 바토리가 가시 밸브를 으깨며 내지르는 단말마와 아파트가 무너지는 소음이 정교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공명하고 있었다. 이 공명음이 주민들의 고막을 흔들고 그들의 영적 방어선을 완전히 해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 저작권 침해다."
강우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무허가 음파 송출로 인한 입주민들의 정신적 자산 침해, 그리고 공용 공간 무단 소음 공해죄. 이 모든 것을 소급 적용해 과세를 처분한다."
강우가 오른손에 쥔 괴담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백지 위에 검붉은 잉크가 번지듯 글자들이 빠르게 새겨졌다.
[체납자: 마담 바토리 및 은하 아파트 3동 관리 주체] [세목: 무허가 소음 공명 및 불법 공연 저작권 침해세] [집행 대상: 3동 붕괴 공명 주파수 및 음향 권능 일체]
동시에 강우는 품에서 꺼낸 초청장 고서 표지의 바이올린 음각 무늬에, 가지고 있던 잔해 속의 날카로운 와이어 줄을 활처럼 맞대어 거칠게 그었다.
끼이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고서의 표지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바토리가 만들어 낸 붕괴의 공명음을 정면으로 상쇄하는 역위상의 감쇄 주파수였다.
스스스스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사방에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던 거대한 콘크리트 대들보와 시멘트 낙하물들이, 강우가 켠 역공명 주파수의 파동에 부딪히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 가속도를 잃었다. 쇳가루와 돌가루가 허공에서 분무기 물방울처럼 흩날리며 좌우로 비껴 나갔다.
"이건…… 소리 차폐막?!"
백설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리적인 자연재해 수준으로 몰아치던 아파트의 침강 소음이, 강우의 정밀 감쇄 가쇄물 변조 조치에 의해 완벽히 제어되고 있었다. 소리의 궤적이 뒤틀리자, 낙하하던 무수한 잔해들이 대피로 바깥쪽으로 쓸려 나가며 안전한 삼각지대가 형성되었다.
"지금이야."
강우가 피가 배어 나오는 왼쪽 눈을 부릅뜨며 백설아를 응시했다.
"백설아 대주주. 주주들의 안전을 사수해라. 낙하하는 잔해물 중 소리막을 벗어난 것들을 전량 파쇄한다."
"맡겨 줘요!"
백설아의 전신에서 낙인의 의지가 뿜어내는 은빛 성수가 불꽃처럼 일어났다. 그녀는 이미 주식회사 은하의 명실상부한 2대 주주이자 행동대장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1동 관리인의 피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파아아앙!
사방에서 날아들던 강철 배관과 시멘트 블록들이 성수의 푸른 방패에 가로막혀 산산조각이 났다. 흩날리는 파편들이 백설아의 뺨을 스쳐 작은 상처를 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모두 내 뒤로 붙어! 대열 이탈자는 주주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고 버린다!"
백설아의 서슬 퍼런 외침에, 공포에 질려 갈팡질팡하던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뒤로 모여들었다. 완벽한 대피선이 구축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무너진 감옥 창살 틈바구니에서 시커먼 흙먼지를 뒤집어쓴 형체가 기어 나왔다.
"커헉! 헤엑, 헥……!"
윤세준이었다. 1동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며 한강우의 장부를 호시탐탐 노리던 사내의 몰골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한쪽 다리는 부러진 철근에 찔려 피가 흥건했고, 자랑하던 단단한 근육들은 찢겨 나가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한강우……!"
윤세준이 끈적이는 피로 범벅이 된 손을 뻗어 강우의 구두 끝자락을 붙잡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날것 그대로의 생존 열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나, 나를…… 데려가라…… 살려줘……!"
강우는 발밑에서 헐떡이는 왕년의 포식자를 차갑게 내려보았다. 그의 적색 채무 시각에 윤세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영적 자산 지표가 보였다. 붕괴하는 아파트 속에서 그의 자산 가치는 바닥을 치고 있었으나, 여전히 탐나는 영적 잠재력과 전투력 지분이 남아 있었다.
"윤세준 씨."
강우가 허리를 숙여 윤세준과 눈을 맞췄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동정심도, 조롱도 없었다. 오롯이 비즈니스적인 건조함만이 존재했다.
"세상에 무상 구출은 없다. 당신도 잘 알 텐데."
"다, 주겠다……! 지분이고, 내 영혼의 권능이고…… 전부 주마! 계약서든 뭐든 가져와……!"
윤세준이 눈물을 흘리며 애걸했다. 지배자의 자존심 따위는 붕괴하는 아파트의 잔해 아래 묻힌 지 오래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숨을 쉴 수 있는 내일이었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괴담 장부의 한 페이지를 찢어 윤세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도주 구출 및 신체 지분 임대 인가 계약서] [피채무자: 윤세준] [채무 내용: 구출 대가로 본인 소유의 영적 권능 85% 및 주식회사 은하에 대한 영구 의결권 양도. 불이행 시 영혼의 소유권은 즉시 주식회사 은하의 고정 자산으로 영구 압류됨.]
"서명해라. 지장을 찍든 피를 묻히든."
윤세준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찢어진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를 묻혀 계약서 하단에 사정없이 짓눌렀다.
찌이이이익.
피 주홍색 낙인이 계약서에 새겨지는 순간, 윤세준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영기가 강우의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붉은색 '채무 이행 중'이라는 표식이 선명하게 돋아났다.
"외주 직원 계약이 성사되었다."
강우가 계약서를 장부 사이에 끼워 넣으며 일어섰다.
"설아 씨, 윤세준 씨를 수거해라. 쓸 만한 고기 방패 겸 채권자다."
"확인했어요."
백설아가 성수 방패를 휘둘러 윤세준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콘크리트 더미를 박살 내며 그를 대열 안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파트의 붕괴 속도는 강우의 역공명 주파수에 의해 억제되었고, 대피로는 완벽하게 확보되었다. 생존자들은 주식회사 은하의 철저한 통제 하에 질서정연하게 아래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옥의 설계자가 순순히 그들을 보내줄 리 없었다.
"아…… 아아아아아……!"
극장 가장 깊숙한 나락, 완전히 붕괴된 무대 중앙의 주춧돌 부근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목소리를 잃었던 바토리가 자신의 영혼 코어 자체를 은하 아파트의 거대한 주춧돌에 통째로 쑤셔 넣고 있었다. 주춧돌의 시멘트 틈새로 그녀의 붉은 피와 으스러진 살점들이 스며들며, 아파트의 뼈대 자체와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구궁!
주변의 모든 거대한 기둥들이 시뻘건 핏빛으로 맥동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표면이 징그럽게 부풀어 오르더니, 이윽고 쩍쩍 갈라졌다.
스슥, 스스스슥!
분명 단단한 시멘트였던 기둥에서 무수히 많은 거대한 콘크리트 팔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마다 날카로운 철근이 가시처럼 튀어나온 기괴한 촉수들이었다.
"가지…… 못해……!"
바토리의 찢어지는 듯한 정신 감응식 비명이 뇌리를 강타했다.
"나의…… 비극…… 나의 무대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나갈 수 없다……!"
슈우우우욱!
수십, 수백 개의 콘크리트 팔들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대피하던 인간들을 향해 사정없이 뻗어 나갔다. 날카로운 철근 가시들이 공기를 가르며 질주했다. 대열의 가장 후방에 있던 한 주민의 가슴을 콘크리트 손아귀가 무자비하게 꿰뚫었다.
푸학!
"커헉……!"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콘크리트 팔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를 낚아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나, 둘, 셋…… 무수한 팔들이 촉수처럼 요동치며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강우 씨! 기둥들이…… 기둥들이 살아 움직여요!"
백설아가 소리쳤지만, 그녀의 성수 방패조차 사방에서 뻗어 나오는 거대한 콘크리트 팔들의 압도적인 질량 앞에서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옥의 진정한 종막극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강우는 붉게 타오르는 왼쪽 눈으로, 자신들을 향해 쇄도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손아귀를 응시했다.
가장 먼저 쇄도한 것은 세 가닥으로 꼬인 시멘트 손가락이었다. 그것들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뱀이 기어가는 듯한 기분 나쁜 **스스슥** 소리가 사방을 메웠고, 갈라진 틈새에서는 썩은 이끼 같은 **축축한** 점액질이 뚝뚝 떨어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한 주주가 그 악력에 붙잡혀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거, 거기…… 살려…… 사, 사람…… 살……!"
단절된 단말마가 채 끝나기도 전에, 쩍 갈라진 기둥 틈으로 그의 신체가 무참히 구겨져 들어갔다.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튄 **끈적이는** 핏방울이 강우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서늘한** 감촉을 남겼다.
강우는 피가 흐르는 왼쪽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장부를 움켜쥔 오른손 끝에서부터 급격히 온기가 빠져나가며, 얼음물에 담근 듯 **질척이는** 마비감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이번 거래의 저당물은 우측 상지의 촉각이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기괴하고 **서늘한** 무(無)의 감각 속에서, 오직 머릿속의 계산기만이 차갑게 작동했다.
"설아 씨, 물러서지 말고 내 뒤를 지켜라."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쇳가루가 섞인 듯 **스슥**거리는 소리를 냈다. 백설아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우의 기이할 정도로 건조한 체온에 이를 악물며, **축축한** 피가 묻은 도끼자루를 더욱 세게 고쳐 잡았다.
"이 아파트의 지반 자체가…… 우리의 계약서 하단에 적힌 연대 보증인이다."
강우의 적색 채무 시각이 살아 움직이는 기둥들의 뿌리를 꿰뚫었다. 기둥 속을 흐르는 마담 바토리의 붉은 영적 자산 흐름이, 백설아의 영혼 계약서와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것이 보였다. 백설아와의 구출 동맹 계약서 제14조 특약 사항. '채무자가 거주하는 도(domicile)인 은하 아파트는 채무자와 운명을 공동으로 나누며, 불법 침범 시 연대 보증 책임을 진다.'
"보증인이 채무자를 해치려 하는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자 자산 가치에 대한 원천적 침해다."
그의 손에 들린 괴담 장부가 **끈적이는** 핏빛 광채를 뿜어내며 찢어질 듯 펄럭였다. 사방의 뒤틀린 공간에서 녹슨 사슬들이 **스스슥** 소리를 내며 튀어나와 살아 움직이는 콘크리트 팔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축축한** 안개 속에서 쇠사슬이 살을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비명이 대기를 찢었다.
[시스템 경고: 연대 보증인 '은하 아파트 3동'에 대한 가압류 및 강제 집행을 선포합니다.]
[경고: 보증 책임 불이행으로 인해 아파트 코어의 영적 소유권이 급격히 박탈됩니다.]
구속된 콘크리트 팔들이 허공에서 굳어 가며 회색 석고상처럼 바스러졌다. 하지만 바토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파산을 각오한 광인이었다.
"크하하핫! 다…… 같이…… 죽…… 어……!"
바토리의 으스러진 얼굴이 바닥의 균열 사이로 떠오르며 기괴하게 웃었다. 그 순간, 발밑의 지반이 단순한 붕괴를 넘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며, 마치 이빨이 가득 돋아난 거대한 **질척이는** 목구멍처럼 변해 그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사방에 진득하고 **습한** 기운이 해일처럼 몰아쳤다.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거대한 붉은 안구가 그들을 향해 **스스슥** 눈꺼풀을 치켜뜨는 순간, 강우와 일행은 제어할 수 없는 인과의 블랙홀 속으로 사정없이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