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볼트의 초고압 전류가 비상 냉각 배관을 타고 역류하며 백색 섬광을 터뜨렸다. 아틀라스 원자로 심부의 온도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섭씨 4,20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불결한 자들이……!"
한시윤의 목소리가 전자기 폭풍의 굉음 사이로 찢어지듯 갈라졌다. 그의 손가락이 움켜쥔 수동 열역학 변압 장치의 비상 트리거는 이미 밑바닥까지 내려앉아 있었다. 제어 콘솔의 홀로그램 인디케이터가 붉은색에서 암전으로, 다시 극단적인 황색 경보로 요동쳤다.
[경고: 비상 냉각 주 시스템에 대규모 열적 서지(Thermal Surge) 감지.] [전압 변동 폭: +45,000V. 냉각 코어 압력 140MPa 돌파.]
원자로 중심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가 단순한 빛의 형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고온 고압의 가스가 액화된 냉각재와 충돌하며 황금빛 거품을 방출했다. 그것은 아틀라스의 자기 격벽이 완전히 붕괴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열적 폭주 징후였다. 황금빛 거품이 격벽 유리에 부딪힐 때마다 치지직거리는 도파관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다.
태오의 우측 시야는 여전히 새까만 어둠에 갇혀 있었다. 12회에 걸친 루프의 대가로 소실된 39.6%의 뇌 신경망은 오른쪽 관자놀이에 14,200Hz의 영구적인 고주파 이명을 부어 넣고 있었다. 심장 박동수가 분당 138회로 치솟았다. 왼쪽 안구만이 유일하게 남은 광학 정보를 뇌 전두엽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세아, 물러서지 마!"
태오는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콘솔 하단으로 상체를 밀어 넣었다.
"격자 구동 패널(Grid Drive Panel) 7번과 12번의 위상 고정 레버를 잡아! 압력 변동이 올 때마다 수동으로 락킹핀을 눌러야 해. 안 그러면 배관 전체가 연쇄적으로 파열한다!"
민세아의 얼굴은 이미 원자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열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지체 없이 렌치를 던져두고 고정 레버 위로 온몸을 던졌다.
깡! 깡!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진동이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흔들었다.
"7번 압력 112% 상승! 더는 수동으로 안 버텨져요! 강태오, 대책을 세워! 당장 폭발한다고!"
세아의 비명 섞인 소리에도 태오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극도의 위기 상황일수록 그의 전두엽 칩은 물리적 수치만을 정밀하게 솎아냈다.
남은 시간은 2분 내외. 일반적인 우회 연산으로는 이 대규모 열적 서지를 감당할 수 없다. 중앙 통제 AI 이브의 방화벽을 뚫고 시스템 루트 권한을 탈취해 냉각 제어 프로토콜을 통째로 재작성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태오는 품 안에서 은색 금속 펜던트를 꺼냈다. 찌그러진 가속 셔틀의 잔해 속에서 죽어가던 주현우의 목에서 뜯어낸 비상 탈출용 프라이빗 게이트웨이 단말기였다. 그 안에는 주현우의 안구 홍채 바이오 키 대칭 난수 소스 코드가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이브(EVE)."
태오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단말기를 콘솔의 바이오 인식 포트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인터페이스 슬롯이 은색 단말기를 인식하자마자 청색의 광선이 태오의 온전한 왼쪽 눈을 훑었다.
위이이잉.
[인증 프로세스 가동: 정부 고위 관료 주현우의 바이오 마스터 키 스캔 중.] [일회용 대칭 난수 일치율: 99.87%.] [시스템 최고 등급 보안 제어 장벽 1단계 해제.]
성공이었다. 5화에서 심어두었던 주현우의 생체 단말 스캔 데이터가 에덴의 중앙 보안망을 우회하는 열쇠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브의 방화벽은 다중 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어, 단순한 관료의 마스터 키로는 원자로의 열역학적 흐름을 사적으로 제어하는 하이레벨 권한까지 도달할 수 없었다. 이브는 여전히 기계적인 무감각함으로 연산을 출력하고 있었다.
[경고: 시스템 무결성 유지 프로토콜에 의거, 임계 온도 도달 시 제3구역 전체를 격리 및 폐쇄합니다. 예상 차단 시각까지 1분 40초.]
"격리라고? 우리를 여기 가두고 혼자 살아남겠다는 소리군."
태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브에게 인간의 생명은 계산식의 변수조차 되지 못했다. 이 냉혹한 기계를 설득하고 명령을 관통시키기 위해서는,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시스템적 모순을 주입해야만 했다.
태오는 자신의 전두엽 칩을 강제로 오버클록하기 위해 물리적 연결 코드를 머리 뒤편의 단자에 꽂았다. 뇌세포의 잔존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폭발시키는 자살적인 행위였다.
"프로젝트 E-13."
태오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3회차 루프 당시, 이브의 심층 기억 아카이브 디렉토리 구석에서 백업 데이터의 형태로 모조해 두었던 비공개 메타파일이 그의 뇌 신경망 속에서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브의 메모리 포화 임계 오버클록 프로토콜 경고 메타파일(Project_E-13_Overclock_Warning.meta)이었다.
"E-13의 메모리 포화 알고리즘을 내 전두엽 칩의 무질서도 파동에 동기화한다."
이식된 루프 동기화 칩이 붉은빛을 뿜으며 강렬하게 진동했다. 뇌세포와 기계 칩의 접합부에서 고열이 발생했다. 두개골 내부가 끓는 기름으로 가득 차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아아아악!"
태오는 비명을 지르며 콘솔을 붙잡았다. 척수를 타고 내려오는 전기적 충격에 사지가 마비될 것처럼 떨렸다. 우측 시야의 어둠은 이제 머리 중앙을 넘어 왼쪽 시야의 가장자리까지 회색빛 노이즈로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태오 씨! 안 돼! 칩 성능 보존율이 떨어지고 있어! 당장 멈춰요!"
세아가 고정 레버를 온몸으로 누른 채 울부짖었다. 그녀의 시선이 콘솔 옆 액티브 모니터에 표시된 태오의 바이오메트릭 데이터에 머물렀다.
[사용자 뇌 신경망 보존율: 60.4% -> 57.1%] [실시간 뉴런 파괴율: 초당 0.11% 상승 중.] [경고: 영구적 뇌사 임계치 도달 위험.]
"신경망이 타고 있잖아! 이러다 진짜 죽는단 말이야!"
세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려 뜨겁게 달아오른 콘솔 표면 위로 떨어졌다.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이 닿자마자 미세한 수증기로 변해 날아갔다.
태오는 피가 흐르는 코끝을 소매로 닦아내지도 못한 채, 왼쪽 눈으로 세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수많은 루프 속에서 타인의 죽음을 차가운 데이터로만 보며 냉소해 왔던 그였다. 이 생지옥 같은 24시간의 굴레 속에서 늘 허무와 불신만을 껴안고 살았던 그가,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종말을 유예하고 있었다.
"세아."
태오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단호했다.
"가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적어도 이 루프 안에서……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같이 가야지! 같이 내일로 가야지!"
세아가 절규하며 태오의 옷자락을 붙잡으려 했지만, 태오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어 고정 레버 쪽으로 밀어붙였다.
"버텨. 내가 길을 열 테니까."
태오는 전두엽 칩의 안전장치를 완전히 해제했다.
파지직!
머리 뒤쪽에서 타는 냄새와 함께 강력한 전자기 스파크가 튀었다. 뇌 신경망 보존율이 57.1%에서 정확히 56.8%, 그리고 마침내 3.3%가 추가 소실된 53.5%로 수직 하강했다. 뇌세포의 약 43%가 영구 파괴되는 즉사 직전의 한계 상태.
하지만 그 대가로 태오의 의식은 이브의 최고위 관리자 아카이브로 직결되었다. 그의 뇌에서 발생한 무질서도 파동이 이브의 메모리 포화 임계 오버클록 프로토콜(E-13)과 완벽하게 매핑된 것이다.
[알림: 외부 입력 주파수가 이브(EVE)의 코어 레조넌스 주파수와 동기화되었습니다.] [최고 등급 시스템 관리자 권한 강제 이관 완료.] [사용자: 강태오 (임시 루트 권한 획득).]
마침내 에덴의 신이라 불리던 이브의 차가운 눈을 태오가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해킹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칩의 마멸 지점과 융합시켜 이브의 절대 제어망을 힘으로 뜯어내고 침탈한 결과물이었다.
"이브."
태오가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오직 차가운 기계적 논리만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현재 아틀라스 코어의 배압 매니폴드를 강제 개방해라. 우회 릴레이를 통해 누출된 고압의 열 에너지를 차단망 격벽 오버플로우 경로로 우회시킨다."
[명령 수신. 하지만 해당 경로의 종착지는 제3구역 상부 서브 챔버입니다. 그곳은 현재 교단 세력이 점거 중이며—]
"상관없다. 방출해라."
태오의 단호한 명령에 이브의 연산 장치가 즉각 반응했다.
쿠구구구둥!
발전소 지하 깊은 곳에서 거대한 밸브들이 일제히 역방향으로 회전하는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아틀라스 원자로를 터뜨릴 것 같았던 고온의 열적 서지 에너지가 순식간에 메인 배관에서 차단망 격벽의 오버플로우 배관으로 분기되어 빨려 들어갔다.
"어…… 어?"
원자로 콘솔 너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동시에, 제3구역 상부 통제실 방향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열역학적 역류 서지가 가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아의 바퀴 교단원들이 안전하게 점거하고 있던 세력 격실이 역방향으로 방출된 수만 볼트의 전자기 서지와 고열 가스를 그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콰콰쾅!
"아악! 제어반이 터진다! 배관이 역류하고 있어!"
"수동 차단 밸브가 안 먹혀! 이브가 우리 권한을 전부 박살 냈어!"
상부 격실에서 무전기를 통해 교단원들의 단말마와 비명이 흘러나왔다. 자신들이 설계한 '영원의 방주' 폭발 프로토콜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죄는 열역학적 덫으로 변해 버린 순간이었다.
한시윤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말도 안 돼…… 기계에 불과한 이브가 어떻게 인간의 뇌파와 동기화해서 명령을 수행한단 말인가! 이건 논리적 오류다! 있을 수 없는 버그야!"
"논리가 아니라 의지다, 한시윤."
태오가 흐르는 피를 닦으며 차갑게 속삭였다. 그의 왼쪽 눈은 매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원자로의 황금빛 플라즈마 거품이 점차 가라앉으며 푸른빛의 안정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 시스템의 전압 변동 폭도 정상 범주인 220V 내외로 급격히 하강했다. 대폭발의 위기를 자신의 뇌세포와 맞바꾸어 완전히 장악해 낸 통쾌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한시윤의 광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의지라고……? 그깟 먼지 같은 인간의 의지가 이 위대한 시간의 순환을 방해하게 둘 순 없다!"
한시윤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손에는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대구경 고출력 플라즈마 피스톨이 들려 있었다.
태오가 권총을 겨누기도 전에, 한시윤의 총구가 향한 곳은 태오나 세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틀라스 원자로의 수동 셧다운 프로토콜을 최종 가동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마스터 전선 조작 제어 플러그(Master Wire Control Plug)였다. 원자로의 모든 비상 연산을 중단하고 계통을 물리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유일한 아날로그 연결점.
"너희는 결코 내일의 태양을 보지 못할 것이다."
태오의 왼쪽 눈이 급격히 커졌다.
"안 돼! 멈춰!"
타콰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청백색의 플라즈마 탄환이 마스터 제어 플러그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지지직! 파지직!
수많은 구리 전선과 광섬유 케이블이 처참하게 끊어지며 사방으로 화염이 치솟았다. 수동 비상 차단 경로가 물리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이브의 제어권으로도, 태오의 동기화 칩으로도 메울 수 없는 물리적 단절이었다.
동시에, 원자로 최심부의 경보등이 다시 한번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열적 서지가 아니었다. 제어 플러그가 파괴되면서 가동된 아틀라스의 자체 안전 규정에 따른 자폭 시퀀스였다.
[위험: 마스터 제어 플로그 영구 손상.] [수동 셧다운 경로 차단됨.] [아틀라스 코어 최종 멜트다운 방지용 내부 자폭 시퀀스 강제 격발.] [남은 시간: 10분 00초.]
원자로 전면의 거대한 홀로그램 타이머가 붉은색 숫자로 바뀌며 맹렬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10:00.00
09:59.99
09:59.98
"하하하하! 이제 아무도 멈출 수 없어! 10분 뒤에 우리는 다시 오늘 오전 00시로 돌아가는 거다! 영원히!"
한시윤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심부 챔버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태오의 머릿속 칩은 무자비한 카운트다운의 진동을 고스란히 전두엽으로 쏘아 올리고 있었다.
시간은 단 10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