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네놈의 그 오만한 도면을 그냥 가져간 줄 아느냐!"
철창문 너머,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형조 감옥 바닥에서 채충순이 광기 어린 조소를 퍼부었다. 이빨 사이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거친 수염을 적시고 오물 투성이인 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 가문의 몰락을 목전에 둔 노신의 눈빛에는 서릿발 같은 독기만이 남이 있었다.
"요나라의 천자께서는 이미 네놈의 화포가 가진 한계를 알고 계신다! 네놈의 얇은 탄창과 연약한 포신을 일격에 박살 낼 특수 동갑 중철기(銅甲 重鐵騎)가 이미 완성되어 남하하고 있단 말이다! 네놈의 불벼락도 그 두꺼운 구리 장갑 앞에서는 한낱 불꽃놀이에 불과할 것이다!"
왕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벼락같은 고통이 치밀어 올랐다. 왼쪽 가슴을 옥죄는 가혹한 압박감에 호흡이 턱 막혔다.
[경고: 심근 손상도 14.2% 돌파.] [잔여 수명: 120일.] [비정상적 심실세동 감지. 오버클록 연산을 즉시 중단하십시오.]
왕선은 입술을 악물며 차오르는 비린 피를 삼켰다. 그의 눈앞에 푸른색 연산 스펙트럼이 어지럽게 명멸하더니, 7화에서 요나라 은간사 스파이를 추적해 확보했던 '야율융서의 특수 화공 방조용 찰갑 조립 밀서'의 데이터 시트가 3차원 기하학적 형상으로 부유하기 시작했다.
구리와 철의 이중 레이어 장갑.
구리(둥)는 전성과 연성이 뛰어나며 열전도율이 극도로 높다. 고려의 서경포가 발사하는 일반 화약 유탄의 폭압과 화염은 표면의 구리판이 급격히 열을 흡수해 분산시키고, 뒤를 받치는 연철판이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된 방호 구조였다. 현대 군사 공학에서 말하는 복합 장갑(Composite Armor)의 원시적인 형태였다.
"구리와 연철의 이중 구조라."
왕선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기계적이었다. 그는 가슴의 통증을 억누르며, 뇌리 속 설계 연산 장치를 가동했다.
[대상 구조: 적동(赤銅) 4mm + 연철(軟鐵) 8mm 두께의 이중 중첩 구조.] [일반 유탄의 외피 타격 시 에너지 분산율: 76.4%] [해결책: 표면 경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고탄소 강철 관통탄. 입각 각도 23도 이하에서 도탄(Ricochet)을 방지할 수 있는 유선형 둔두(AP Cap) 설계 도입.]
"동은 전성이 좋으나 경도가 낮다. 탄두의 형상을 유선형으로 날카롭게 깎아내고, 접촉점의 경도를 비커스 경도(HV) 60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면 그까짓 이중 장갑은 버터처럼 뚫린다."
"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는 게냐...!"
채충순이 쇠사슬을 흔들며 외쳤으나, 왕선은 이미 뒤를 돌아 감옥의 어두운 통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동굴 같은 형조 지하에 무겁게 울렸다.
"서경 야철소로 격문을 보낸다."
뒤를 따르던 한이린이 붓과 서판을 꺼내 들었다. 왕선의 입에서 막힘없이 수치들이 쏟아졌다.
"도가니 내부의 탄소 함량을 1.2%로 고정하고, 석회석 슬래그를 완전히 제거한 백색주철을 형틀에 부어라. 탄두의 형상은 둥근 구형이 아닌, 앞부분이 뾰족하고 후미가 완만한 유선형 가속 관통탄(Armor Piercing)으로 주조한다. 장인들에게 전하라.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다. 오차가 발생한 형틀의 주조공은 즉시 태형에 처할 것이다."
한이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이내 단호하게 필사를 마쳤다. 그녀는 왕선의 창백한 안색과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나리, 심장의 신열이 또 도지신 것입니까? 서경으로 가는 길에 의원을..."
"필요 없다. 시간이 없다. 거란의 본대가 압록강을 건넜다. 구주로 간다."
왕선의 눈에는 오직 전장의 효율과 승리의 수치만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수명이 깎여 나가는 경고음 따위는 연산의 오차 범위 내에 존재하는 가벼운 변수에 불과했다.
* * *
1011년 2월, 구주(龜州) 대설원.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사방이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계곡 입구에 고려군이 급조한 흙과 얼음의 방벽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강감찬은 두꺼운 가죽 투구 위로 흘러내리는 눈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성벽 위에서 저 멀리 지평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조원 등 장수들이 서 있었다.
"공(公), 적의 전위 부대가 청천강을 우회하여 이곳 분지 길목으로 짓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수가 족히 3만을 넘사옵니다."
조원의 보고에 강감찬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이 방벽 너머, 눈밭에 단단히 고정된 서경포들의 포신으로 향했다. 포신들은 차가운 눈 서리를 맞아 검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왕선 그자가 말한 신형 강철탄이라는 것이 정말 저 귀갑 같은 적들을 뚫을 수 있겠느냐? 내 일찍이 거란의 철기들을 보았으나, 이번 놈들은 말의 가슴팍까지 구리 판을 둘렀다 들었다. 우리 군의 강노(强弩)조차 퉁겨 나가는 실정이다."
그때, 포병 진지 중앙에서 웅크리고 있던 왕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는 이미 얇은 모시옷 위에 가죽 갑옷만이 걸쳐져 있어, 매서운 북풍에 뼈가 시릴 법도 하건만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강 공, 전쟁은 기하학과 물리학의 공식을 증명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왕선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적의 동갑은 충격 에너지를 좌우로 분산시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폭발 파편이나 넓은 면적의 타격은 무용지물이지요. 하지만 극도로 가공된 고탄소 강철 탄두가 초속 300미터의 속도로 단 하나의 점에 모든 운동에너지를 집중시킨다면, 구리의 연성은 오히려 관통을 돕는 윤활유가 될 뿐입니다."
강감찬은 왕선의 냉혹한 눈빛을 보며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이 종실의 청년은 수만 명의 목숨이 오가는 전장을 마치 바둑판 위의 수순을 계산하듯 다루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느냐?"
"탄두의 질량은 정확히 12근(약 7.2kg). 장약은 질산칼륨의 순도를 98%까지 끌어올린 황색 화약입니다. 관통 확률은 94.7%로 계산되었습니다."
그 순간, 대지를 뒤흔드는 웅장한 굉음이 설원을 가득 메웠다.
*둥둥둥둥—!*
눈보라를 뚫고 거란의 군고(軍鼓)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평선 너머에서 붉은빛의 해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요나라 성종 야율융서가 자랑하는 최정예 동갑 중철기(銅甲 重鐵騎) 부대였다.
그들의 군마와 기병들은 붉은 구리로 도금된 찰갑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눈 반사에 백색으로 빛나는 설원 위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붉은 기운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들의 군대 같았다.
선두에 선 거란의 백전노장 야율사열이 장도를 치켜들며 사납게 포효했다.
"고려 놈들의 화포는 화염만 요란할 뿐, 우리 대요(大遼)의 동갑을 뚫지 못한다! 천자께서 하사하신 이 갑옷이 우리의 불사신임을 증명하리라! 단숨에 저 얼음 성벽을 짓밟고 고려 왕의 목을 취하자!"
"우오오오!"
5천 기의 동갑 중철기가 기세를 올리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말발굽이 설원을 찍어 누를 때마다 거대한 눈가루가 허공으로 치솟았고, 대지는 지진이 일어난 듯 요동쳤다.
"온다...!"
고려군 장졸들이 겁에 질려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그 어떤 화살과 창칼도 통하지 않았던 무적의 기병대였다. 붉은 구리 장갑이 태양빛을 받아 기괴하게 번쩍였다.
왕선은 한이린이 들고 있는 목제 삼각대를 통해 적들과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의 뇌 속 연산계가 미친 듯이 숫자를 쏟아냈다.
[적 진입 속도: 초속 8.3미터.] [풍향: 북서풍 4미터.] [낙하 궤적 및 입각 각도 계산 완료.] [최적의 사격 고도: 12도.]
"전 포문, 조준 각도 12도 고정."
왕선의 낮고 단호한 명령이 포병들에게 전달되었다. 포수들이 쇠지렛대로 포미를 들어 올리며 각도를 조정했다. 쐐기가 단단히 박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사격 거리에 진입하기까지 앞으로 100보... 80보..."
한이린이 모래시계의 낙하를 보며 긴박하게 외쳤다. 적 기병대의 거친 숨소리와 말들의 콧김이 방벽 위까지 닿을 듯 가까워졌다. 야율사열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지금이다. 발사."
왕선이 부채를 내리쳤다.
*콰과과과광—!*
대기를 찢어발기는 포성이 구주 골짜기를 폭발하듯 메웠다. 서경포의 포구에서 일제히 거대한 화염과 함께 흑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포구를 떠난 고탄소 강철 관통탄들이 엄청난 회전력을 그리며 눈보라를 뚫고 날아갔다. 그것은 공중에서 폭발하는 파편탄이 아니었다. 오직 적의 가슴을 뚫기 위해 단단하게 벼려진 묵직한 강철의 송곳이었다.
*퍼어억! 콰직!*
선두에서 돌격하던 거란의 동갑 중철기 무리와 강철탄이 충돌하는 순간, 기괴한 금속 파열음이 설원을 울렸다.
야율융서가 장담하던 특수 동갑 이중 장갑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탄두의 날카로운 끝이 닿는 순간, 겉면의 구리판은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찢겨 나갔고, 뒤를 받치던 연철판은 강철의 압도적인 경도 앞에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이 났다.
탄두는 장갑을 관통한 뒤에도 운동에너지를 잃지 않고 마필의 가슴을 관통하고, 그 뒤를 따르던 기병의 흉갑까지 연쇄적으로 뚫고 들어갔다.
"이, 이게 무슨...!"
야율사열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자신의 옆에서 달리던 부하가 말과 함께 통째로 꿰뚫려 눈밭을 뒹굴었다. 단 한 발의 포탄이 동갑 중철기 세 명을 연달아 관통하며 붉은 피의 길을 만들었다. 장갑이 찢어지며 발생한 날카로운 구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주변 기병들의 얼굴과 목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지속 사격하라. 포각 유지."
왕선의 음성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포격이 이어졌다. 설원은 순식간에 거란군이 자랑하던 최정예 기병들의 무덤으로 변했다. 붉은 구리 장갑은 강철 탄두의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 그저 거추장스러운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무적이라 믿었던 장갑이 무참히 뚫리자, 거란군의 대열은 급격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회피하라! 우회하라!"
야율사열이 비명을 지르며 고삐를 잡아당겼으나, 이미 좁은 분지 계곡으로 들어선 기병들은 서로 엉켜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 위로 강철 관통탄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통쾌하구나! 적의 선두가 완전히 무너졌다!"
조원을 비롯한 고려의 장수들이 방벽 위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거란의 무적 기병을 이토록 처참하게 유린한 적은 고려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강감찬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공에 흩날리는 붉은 피안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왕선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의 눈앞에 붉은색 경고 창이 점멸하고 있었다.
[탄약고 잔여 강철 관통탄: 0발.] [서경 야철소의 후속 보급 지연율: 100%]
"나리, 관통탄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더 이상 쏠 탄약이 없습니다!"
포병 대장의 절박한 외침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고순도 고탄소 강철을 정밀 주조하는 공정은 하루아침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준비해 온 비축분이 바닥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설원의 동쪽 능선 너머에서 거대한 먹구름 같은 먼지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부우우우—!*
대요제국의 황제 야율융서가 직접 이끄는 친위 예대(親衛 豫隊) 5만 기병이, 포격 진지의 우측 우회로를 뚫고 방벽의 측면을 향해 노도와 같이 돌격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장검이 설원의 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탄약이 고갈된 고려의 포병 기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제 삼 권 - 현종 신해년 이월 기록 요약** *거란의 맹장 야율사열이 특수한 동갑(銅甲)을 입힌 정예 기병을 이끌고 구주 분지로 짓쳐 들어오니 온 군사가 두려워하였다. 종실 왕선이 서경에서 주조한 신형 강철 둔두탄(鈍頭彈)을 쏘아 적의 두꺼운 갑옷을 모두 꿰뚫어 버리니, 적의 시체가 골짜기를 메우고 야율사열이 포탄에 맞아 분사하였다. 그러나 아군의 강철탄이 급히 고갈된 틈을 타, 거란의 친위 예대 오만 기가 우회하여 포병의 배후를 기습하니 군세가 지극히 위태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