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당신…… 정체가 뭐야? 에온의 껍데기를 쓴 악마인가?"

베아트리스가 손에 쥔 붉은 펜던트가 비명 지르듯 붉은 마력을 뿜어냈다. 대기실의 격자형 아치문 너머로 철갑을 두른 무장 경비대의 육중한 발소리가 돌바닥을 울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을 에워싸는 위압적인 발소리는 마치 사냥감을 몰아넣는 포수들의 발걸음 같았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이내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멀어졌다.

시우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투명한 수식의 나열들이 지독한 연기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논리 회로가 깜빡이며 거대한 공동(空洞)을 만들어냈다.

‘……한계다.’

가슴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지독한 냉기가 차올랐다. 심장을 움직이던 생체 전기 신호가 급격히 제로를 향해 추락했다. 쿵. 마지막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심장근육은 더 이상 이완되지 않았다. 물리적 법칙을 비틀어 대기의 열역학 엔트로피를 고정했던 대가였다. 육체라는 정밀한 기계에서 생명력이라는 연료를 가차 없이 뜯어내 가는 자연의 채무 독촉이었다.

빛이 바래가는 시야 너머로 베아트리스의 겁에 질린 안색이 멀어졌다. 시우의 무릎이 힘없이 꺾이며 차가운 석조 바닥을 향해 고꾸라졌다.

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뺨에 닿기 직전, 시우의 뇌는 초당 수만 번의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감정의 동요가 배제된, 극단적이고도 무기질적인 생존 논리만이 차디찬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심정지 발생. 뇌로 향하는 산소 공급 중단까지 남은 시간은 약 180초. 세포 괴사가 시작되기 전에 내부 전기 자극을 유도해야 한다. 마나의 전기적 속성 변환율을 역연산한다. 대상은 심장근육의 동방결절. 전압 120볼트, 전류량 2암페어. 지속 시간 0.05초.’

그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의식의 심연에서 잔여 마나의 흐름을 낚아챘다.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물리 공식의 실타래가 그의 가슴 중심부를 관통하며 강제로 정렬했다.

파지직!

겉으로는 아무런 소리도, 불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시우의 가슴 안쪽에서 미세하게 튄 생체 전기가 고요히 심장 벽을 때렸을 뿐이다.

강제적인 제세동. 얼어붙었던 심근판이 강력한 전기적 타격에 비명을 지르며 다시 거칠게 벌어졌다.

"허윽……! 후우, 후……."

시우는 대리석 바닥을 짚으며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허파 가득히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 오며 목구멍을 칼로 긋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동결되었다가 급격히 팽창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감정의 동요 없이 고요했다. 그저 고장 난 부품을 임시로 수리한 기계처럼, 차분하게 자신의 호흡 주기를 조절할 뿐이었다.

"어, 어떻게……?"

베아트리스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죽은 자의 빛을 띠고 있던 에온의 육체에 다시 생기가 도는 모습을 목격한 탓이었다. 심장이 멈추는 극치(極致)의 현상마저 스스로 조율하는 존재. 그녀의 상식 속에 존재하는 마법사라는 범주로는 도저히 이 소년을 설명할 수 없었다.

쾅!

대기실의 무거운 목조 문이 마침내 부서지듯 열리며, 은빛 갑옷을 입은 아카데미의 경비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검 끝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린 시우를 향했다.

"베아트리스 님! 침입자입니까? 아니면 이단의 습격입니까!"

경비대장의 장중한 외침이 대기실을 메웠다. 베아트리스는 떨리는 손으로 붉은 펜던트를 쥔 채, 바닥에서 무표정하게 옷자락의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서는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맑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떠한 살의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상황을 철저히 배제한 채 머릿속의 수식만을 들여다보는 방관자의 시선이었다.

베아트리스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이 소년을 지금 당장 이단으로 규정해 지하 감옥에 가두어야 마땅했다. 그것이 규칙이었고, 아카데미의 질서였다. 하지만 기하학적 미학의 극치라 여겼던 자신의 화염 마법을, 단 한 줄의 주문도 없이 완벽한 물리적 영도로 고정해 버린 그의 마법학적 무결함이 그녀의 학구열을 집요하게 자극했다. 이 괴이한 마법의 원리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평생 마법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기묘한 공포와 경외감이 그녀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다."

베아트리스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내 펜던트의 일시적인 마력 공명 오작동이었다. 경비를 물려라."

"예? 하지만 방금 전의 마력 파동은 분명……."

"내 지시가 들리지 않는가? 물러가라."

그녀의 서슬 푸른 안광에 경비대장도 더는 토를 달지 못하고 경례를 붙인 뒤 퇴장했다. 문이 닫히고 다시 찾아온 고요 속에서, 시우는 소매 끝을 단정하게 정리하며 베아트리스를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시험 시간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로 안내해 주십시오. 집에 돌아가기 위해 풀어야 할 방정식의 연산이 아직 많이 밀려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하여, 방금 전 자신의 심장을 강제로 뛰게 만든 자의 태도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베아트리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를 응시했다. 이 기괴한 무심함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거대한 파멸을 숨긴 심연처럼 느껴졌다.

* * *

아카데미의 실기 시험이 치러지는 ‘라그랑주 대강당’은 백색 대리석 기둥들이 숲처럼 늘어선 고풍스러운 공간이었다. 높은 아치형 창문을 통해 가을의 쓸쓸한 바람이 밀려들어와, 바닥에 흩어진 붉은 낙엽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강당 중앙의 연단 위에는 실기 시험관이자 아카데미의 명예 교수인 엘리아스가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마법 장벽이 둘러진 두꺼운 강철 과녁판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낙제생 에온. 대기실에서 어설픈 속임수로 소란을 피웠다는 보고를 받았다."

엘리아스가 코웃음을 치며 시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전통적인 마학을 숭배하는 자 특유의 오만함과, 가문도 마력도 없는 낙제생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

"마법이란 신성한 대칭의 미학이자, 신들이 하사한 언어의 정렬이다. 정해진 기하학적 마법진을 그리고, 일곱 마디의 정통 영창을 통해 마나를 조율하는 것이 유일한 진리이지. 네놈이 부린 잔재주는 고작 연금술사들의 가당치 않은 화학적 꼼수에 불과해."

그는 품 안에서 깃털 펜을 꺼내 들며 차갑게 선언했다.

"이번 실기 시험의 과제는 간단하다. 표준 마법인 '화염의 화살(Ignis Sagitta)'을 연성해 저 강철 과녁을 관통하는 것. 단, 아카데미의 규율에 따라 삼중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마법진을 바닥에 구현하고, 정교하게 영창을 수행해야 한다. 이 규칙에서 단 한 치라도 벗어난다면, 즉시 불합격 처리하고 아카데미에서 영구 추방하겠다."

엘리아스의 압박은 노골적인 덫이었다. 영창과 마법진의 전개 속도, 그리고 마나의 순도를 꼬투리 잡아 에온을 합법적으로 축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대강당의 참관석에 앉아 있던 베아트리스는 긴장 어린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 안에서는 대기실에서부터 이상 반응을 보이던 붉은 연성 펜던트가 기이하게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시우는 엘리아스의 장황한 훈계를 들으며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뇌는 이미 강당 안의 모든 물리적 변수를 수식으로 치환해 계산하고 있었다.

‘공기 밀도 1.2kg/m³, 실내 온도 15도, 상대 습도 45%. 그리고 강철 과녁의 인장 강도와 표면에 둘러진 마법 장벽의 에너지 주파수…….’

그의 눈에 비친 전통 마법의 구조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저들이 말하는 삼중 기하학 마법진은 마나의 회전 운동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열을 발생시켜 에너지를 허공으로 흩뿌릴 뿐이다. 게다가 일곱 마디의 영창은 언어적 파동을 통해 마나의 오차를 보정하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마찰 계수 자체를 물리적으로 제로로 만들 수 있다면, 그런 거추장스러운 수식 보정은 전혀 필요 없다.’

시우의 무심한 침묵을 패배의 징조로 받아들였는지, 엘리아스는 더욱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느냐? 영창의 첫 구절조차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군. 역시 천박한 낙제생다운……."

"당신들이 숭배하는 기하학적 마법진은 비효율적입니다."

시우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넓은 대강당에 울려 퍼졌다.

수뇌부들이 앉아 있는 참관석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엘리아스의 안색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뭐라? 감히 위대한 고대 문명의 공식을 모욕하는 것이냐!"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시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미세한 망설임조차 없었다.

"원의 반경과 마나의 회전 운동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적 손실률이 무려 42%에 달합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영창은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불필요한 마나를 더 밀어 넣는 낭비에 불과하죠. 마찰 계수를 0으로 수렴시키고, 분자의 운동 에너지를 일직선으로 정렬하면 영창도, 마법진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순수한 물리적 질량과 속도만으로 과녁을 관통할 수 있으니까요."

"이 오만한 이단자 놈이……!"

엘리아스가 지팡이를 거칠게 치켜세웠다.

"증명해 보이지 못한다면, 그 주둥이를 찢어 아카데미의 거름으로 쓰겠다! 어서 마법을 시전해라!"

시우는 대답 대신 지팡이를 가볍게 뻗었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은 수십 미터 전방에 위치한 마법 강철 과녁이었다.

‘정리된 엔트로피의 시선, 기동.’

망막 너머로 푸른 수식의 별자리가 펼쳐졌다. 시우는 지팡이 끝에서부터 과녁에 이르는 직선 경로상의 공기 분자들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탄도 경로 내의 산소 및 질소 분자의 열운동을 완전 정지시킨다. 분자 간 거리를 고정하여 마찰 계수를 0%로 수렴. 공기 저항 값을 완전한 제로(0)로 고정하는 극미세 진공 터널을 형성한다.’

바로 그 순간,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참관석에 앉아 있던 베아트리스의 품 안에서, 붉은색 펜던트가 돌연 푸른빛을 발하며 차갑게 식어갔다. 펜던트 내부의 마력이 오동작을 일으키며 시우가 설계한 보이지 않는 탄도의 궤적과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나란히 정렬한 것이다. 펜던트의 마력선이 시우의 진공 터널을 감싸 안으며, 마치 탄도를 유도하는 투명한 나침반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펜던트가 시우의 마법에 스스로 공명하여 물리적 변성을 일으키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건…… 마법의 공명이 아니야. 자연계의 법칙이 강제로 그의 공식에 이끌려 재배치되고 있어……!’

시우의 차가운 눈동자가 번뜩였다.

‘연산 완료. 운동 에너지 주입.’

파키킹!

대기를 찢는 굉음은 없었다. 화려한 마법진의 불빛도, 장엄한 영창의 메아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시우의 지팡이 끝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파동이 한 줄기 뻗어 나갔을 뿐이다. 마찰이 완전히 배제된 진공 터널을 통과하는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되었다. 속도가 무한에 가깝게 치솟으면서도, 단 1%의 열에너지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無)의 탄도가 마법 장벽이 둘러진 강철 과녁을 관통했다.

아니, 관통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파스스스…….

강철 과녁의 중심부가 닿은 순간, 그 부위를 구성하던 분자들의 결합 에너지가 통째로 박탈당했다. 마찰도, 파열음도 없이, 수 미터 두께의 마법 강철 과녁이 순식간에 고운 먼지로 변해 바닥으로 바스스 흘러내렸다.

과녁에 둘러져 있던 강력한 마법 장벽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삭망(朔望)되었다.

바람이 불자, 한때 철벽이라 불리던 강철의 잔해들이 허무한 회색 가루가 되어 대강당의 바닥에 흩날렸다.

정적.

대강당 안의 모든 소리가 증발한 듯한 완벽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엘리아스는 지팡이를 쥔 채 입을 벌리고 굳어 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소리도…… 불꽃도 없이…… 강철이 먼지가 되었다고?"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보기 흉하게 꺾였다.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 온 마법학의 상식이, 고작 낙제생의 기이한 물리 공식 한 줄에 의해 철저히 도륙당한 순간이었다.

참관석에 앉아 있던 아카데미의 원로들과 학장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카데미 창립 이래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의 예언이 스쳤다.

‘소리 없이 다가와 세상을 영원한 정적으로 침묵시킬 보이지 않는 파멸. 온기를 빼앗고 만물을 먼지로 되돌릴 동토의 마왕.’

그들이 보기에 시우의 마법은 단순한 고효율의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만물의 운동을 정지시키는, 예언 속 마왕의 권능 그 자체였다. 게다가 시우의 그 냉혹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 타인의 경악을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초연한 태도는 세상을 하찮게 내려다보는 절대 군주의 위압감으로 오독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이단의 마법이 아니다……."

참관석 상단에 앉아 있던 학장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늙은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세상을 멸망시킬…… 보이지 않는 파멸의 전조로다……!"

학장의 공포 어린 기립 선언이 대강당의 침묵을 깨뜨렸다. 원로원들이 술렁이며 시우를 향해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시우는 그들의 호들갑 어린 반응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방금 전 펜던트와 공명하며 관측된 차원 잔류 엔트로피의 정밀 연산 수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베아트리스의 펜던트가 나타낸 물리 반응…… 차원 좌표의 오차를 보정할 수 있는 힌트다. 조금만 더 계산을 정밀화하면 원래 세계로 향하는 포탈의 천체 상수를 완성할 수 있어.’

그 순간, 다시 한번 가혹한 채무가 그의 육체를 덮쳤다.

심장이 다시 기괴하게 박동을 늦추며, 시우의 시야 가장자리가 차디찬 서리와 함께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체온증의 어둠이 그의 의식을 집요하게 끌어내렸다.

"에온……!"

멀리서 베아트리스가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시우는 머릿속의 귀환 공식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며 깊은 암전 속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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