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그림자가 드리운 아치형 천장 너머, 보이지 않는 궤적을 그리며 쇄도하는 은빛 마탄은 소리가 없었다.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도, 화약이 연소하는 매캐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철저한 침묵의 살의. 오직 목표물의 심장을 도려내기 위해서만 제련된 은빛 금속이 초음속의 속도로 대기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평범한 인간의 망막이라면 그 은밀한 금속의 섬광을 인지하기도 전에 가슴팍이 꿰뚫려 붉은 피를 토해냈을 터였다. 대강당을 메운 학우들과 원로원의 마법사들은 방금 전 시우가 보여준 절대영도의 신비에 취해, 혹은 공포에 질려 눈앞에 닥친 죽음의 그림자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의 망막에 펼쳐진 세계는 전혀 다른 질서로 흘러가고 있었다.

푸르스름하게 가라앉은 시야 속에서, 공간을 가득 채운 공기 분자들의 열운동이 무수한 격자무늬의 수식으로 치환되어 떠올랐다. 정리된 엔트로피의 시선. 시우의 고유한 감각은 은빛 마탄이 지나는 경로의 유체역학적 좌표를 실시간으로 연산하여 뇌리에 새겨 넣었다.

초속 680미터. 음속의 두 배를 상회하는 운동 에너지가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도록 유선형으로 설계된 탄두를 타고 시우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유량 저항의 변조.’

시우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차가운 조명이 비쳤다. 그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날아오는 탄환을 향해 손을 뻗지도 않았다. 그저 탄환의 예상 궤적 전방 30센티미터 구역의 기체 분자들을 응시했을 뿐이었다.

그의 논리적 사고가 세계의 물리 법칙을 직접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인 마법사들이라면 방어막을 형성하기 위해 방대한 마나를 끌어모아 기하학적 마법진을 전개했겠지만, 시우는 단지 기체 분자 간의 무작위적인 열운동을 특정 방향으로 강제 정렬시켰다.

탄환 바로 앞공간의 자유행로가 극단적으로 좁아졌다. 기체 분자들이 서로의 궤도를 가로막으며 밀집했고, 기체의 점성 계수가 수천, 수만 배로 가속 팽창하기 시작했다. 공기는 더 이상 가벼운 기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강철보다 단단하고, 타르보다 끈적끈적한 초고밀도의 유체 장벽으로 급변했다.

키이이이잉—!

마침내 공간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요한 대강당에 울려 퍼졌다.

음속의 두 배로 공간을 관통하려던 마탄이 시우의 가슴팍 바로 앞에서 보이지 않는 점성 장벽에 가로막혔다. 엄청난 마찰열이 발생해야 마땅한 물리적 충돌이었으나, 시우가 제어하는 엔트로피의 영역 안에서 열에너지는 철저히 상쇄되어 차가운 서리로 흩어졌다.

은빛 마탄은 마치 진흙 속에 처박힌 나뭇가지처럼 서서히 속도를 잃어갔다. 회전력을 잃고 뒤틀리던 탄두가 마침내 완전히 정지해 시우의 깃털 같은 옷자락을 건드리기도 전에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쨍그랑.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은빛 탄환을 보며, 대강당은 정적에 휩싸였다.

“무슨…….”

천장 아치 뒤편에서 저격총을 쥐고 있던 발락의 눈동자가 평정을 잃고 흔들렸다. 은밀하게 기습을 감행한 마탄이 마법 장벽도 없이, 단지 공기 자체의 무게에 눌려 무력하게 추락하는 광경은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적이었다.

“발락!”

베아트리스가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쳤다. 그녀의 단정한 이마에 핏줄이 섰다. 성기사단의 처단자가 학술 재판의 엄숙한 현장에서, 더군다나 사법 중재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암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기사도적 긍지를 심각하게 모독하는 행위였다.

“이단심문관이 공적인 중재를 무시하고 무력을 행사하다니! 이 무슨 무도한 짓인가!”

하지만 발락은 그녀의 외침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회색 눈빛으로 시우를 쏘아보며, 품속에서 붉은 수호령 석판을 꺼내 들었다.

“종말의 전조를 비호하는 자들 또한 이단의 동조자일 뿐이다. 전원 처단하라!”

발락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강당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부서지며 검은 제복을 입은 이단심문관의 정예 병력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손에는 푸른 마력이 깃든 사슬과 이단 제압용 마도 창이 번뜩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대강당은 비명과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겁에 질린 학우들과 장로들이 출구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는 와중, 이단심문관들은 시우를 포위망에 가두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시우의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에온!”

유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시우의 심장 박동수가 분당 30회 이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방금 전 초음속 마탄의 유체 점성을 제어하기 위해 소모한 생물학적 엔트로피의 대가가 그의 육체를 사정없이 갉아먹은 탓이었다. 손끝부터 시작된 지독한 저체온증이 혈관을 타고 올라와 심장 근육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폐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각혈이 그의 턱 끝을 적셨다.

“비효율적인 마찰 손실을 줄이려다…… 생체 열량이 과도하게 빠져나갔군.”

시우는 자신의 상태를 극도로 덤덤하게 진단했다. 죽음의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공포나 조바심도 묻어나지 않았다. 단지 눈앞의 계산을 방해받은 학자 같은 무심함만이 가득했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지금 심장이 거의 멈추려고 하잖아!”

유리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급하게 가죽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녀가 꺼내 든 것은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푸르스름한 액체였다.

그것은 과거 시우가 정화 공식을 보정해 주었던 연금학적 기초 위에, 유리아가 밤을 새워가며 완성해 낸 미완성 불순물 정제액의 완성본이었다. 기하학적 대칭에만 치중해 42%의 손실을 내던 기존의 제국식 정제법을 버리고, 시우의 열역학 제2법칙에 기반한 보정식을 적용해 불순물을 99.98%까지 완벽하게 걸러낸 궁극의 결합액.

“이걸 마셔! 네 신체의 붕괴 속도를 늦춰줄 거야. 네가 알려준 공식대로 정제한 거니까, 절대로 부작용은 없을 거야!”

유리아가 시우의 입가에 병을 들이밀었다. 시우는 거부하지 않고 차가운 액체를 삼켰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 간 연금 결합액은 극도로 순수한 상태로 정제되어 있어, 어떠한 마력적 거부반응도 일으키지 않고 시우의 심장 세포에 직접 작용했다. 멈추기 일보 직전이었던 심근이 결합액의 정밀한 화학 작용을 통해 비정상적인 괴사를 멈추고 미약하게나마 규칙적인 박동을 되찾기 시작했다. 쿵, 쿵, 하고 차갑게 내려앉던 고동이 간신히 생명의 온기를 붙잡았다.

“유리아, 뒤를 부탁한다.”

베아트리스가 장검을 뽑아 들며 두 사람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은빛 갑옷 위로 가을의 서늘한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정교한 금속 펜던트를 거칠게 잡아채 시우의 목에 걸어주었다. 2화 참관 시절부터 그녀가 지니고 다녔던, 마력 이상 반응 연성 펜던트였다. 최근 시우의 학술적 조언을 받아들여 고정이론을 새로 정립하고 개조한 끝에, 착용자의 과도한 엔트로피 제어로 인한 저체온증 치사 상태를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중화하는 완벽한 완충기로 탈바꿈한 유물이었다.

웅—!

펜던트가 시우의 가슴에 닿자마자, 검푸른 빛을 발하며 시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절대영도의 한기를 무서운 속도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얼어붙어가던 시우의 피부에 아주 미약한 혈색이 돌았다.

“내가 이들의 길을 막겠다. 에온, 유리아. 어서 지하 유적의 ‘공허의 서고’ 최하층으로 가라. 그곳의 제어반 외에는 이 포위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

“베아트리스 님! 하지만 혼자서 이 많은 이단심문관들을…….”

유리아가 걱정스레 외쳤지만, 베아트리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황실의 사법 중재관으로서 교단의 무단 침입을 묵과하지 않겠다. 이것은 기사의 명예다. 어서 가라!”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찬란한 마력의 파동이 전방으로 뻗어 나가며 접근하던 이단심문관들의 대형을 흐트러뜨렸다. 대강당 벽면의 고풍스러운 기둥들이 무너지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시우는 베아트리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펜던트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에너지가 그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감정적인 고마움을 표하는 대신, 가장 효율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생존 확률을 12% 이하로 떨어뜨린다. 퇴로를 확보한다.”

시우는 유리아의 손을 잡고 대강당 단상 뒤편의 비밀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붕괴하는 잔해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유리아는 시우의 단단하고도 차가운 손을 꽉 쥐었다.

***

아카데미 지하 깊숙한 곳,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공허의 서고’ 최하층은 고요하다 못해 쓸쓸한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방의 벽면에는 고대 마법 문명의 지혜가 담긴 수천 개의 석판과 정교한 벽화들이 서리 맞은 나뭇가지처럼 늘어서 있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의 진동이 이곳까지는 미치지 않는 듯, 서고의 공기는 고풍스러운 양피지 냄새와 오래된 사물의 먼지 냄새만을 머금고 가라앉아 있었다.

시우는 유리아의 부축을 받으며 거대한 원형 제어반 앞으로 다가갔다.

제어반 중앙에는 푸른빛을 잃고 정지해 있는 차원 이동 포탈의 잔해가 거대한 아치 형태로 솟아 있었다. 과거 이 세계를 호령하던 고대 마법사들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건설했던 궁극의 유적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차가운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이곳이…… 진짜 차원의 문이군요.”

유리아가 경외감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벽면에 새겨진 고대 기하학 공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시우는 제어반 표면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닿자, 정지해 있던 마법 공식들이 파르르 떨리며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정리된 엔트로피의 시선이 활성화되며, 제어반 내부에 설계된 마나의 흐름과 수학적 구조가 그의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리고 시우는 단 3초 만에, 이 위대한 고대 문명이 어째서 종말을 맞이했는지 그 근원적인 원인을 판독해 냈다.

“어리석군.”

시우의 무미건조한 한마디가 고요한 서고에 울려 퍼졌다.

“네? 에온, 무슨 뜻이야?”

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시우는 제어반 옆 벽화에 새겨진 왜곡된 차원 왜곡 보정 축선 수치를 가리켰다. 5화에서 그가 처음 발견하고 의문을 품었던, 고대 마법 문명의 가장 치명적인 수학적 오차였다.

“그들은 천체의 세차 운동과 공간의 곡률을 계산할 때, 파이(π)의 값을 원주율의 극한으로 수렴시키지 않고 임의의 정수 값으로 타협했다. 이 십진법 위도 좌표의 미세한 오차가 누적되면서, 차원 이동 시 발생하는 잔류 엔트로피의 정밀 역연산에 실패한 것이다.”

“그럼…… 고대 문명이 영구 동결되어 멸망한 이유가…….”

“그렇다. 마왕의 저주나 신의 심판 따위가 아니다. 단순한 산술적 오차로 인해 포탈 가동 시 발생한 열역학적 부하를 제어하지 못했고, 그 결과 차원의 경계가 얼어붙으며 문명 전체가 절대영도의 동토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우의 설명은 지극히 명쾌했고, 동시에 잔인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수천 년 동안 경외하고 숭배해 온 고대 문명의 신비는, 사실 사소한 수학 계산 미숙으로 일어난 거대한 공학적 참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에온, 네가 이 오차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거야?”

유리아의 목소리가 기대와 흥분으로 떨렸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시우가 제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베아트리스의 펜던트가 그의 신체 온도를 유지해 주는 동안, 유리아가 준 정제액이 심장의 고동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의 원래 고향,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천체 좌표를 입력할 기회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현대 물리학의 정밀한 수식들이 고대 마법 공식의 미세 오차들을 하나씩 소거해 나갔다. 왜곡된 보정 축선 수치들이 올바른 물리 법칙의 궤도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차원 가속 오차 범위: 0.0000% 수렴 중.]

완전무결한 지구의 십진법 위도 좌표가 제어반의 기하학적 마법진 위로 인입되기 시작했다. 차가운 돌덩어리였던 아치형 포탈이 서서히 푸른빛을 내뿜으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일렁이고, 포탈 너머로 시우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현대 지구의 밤하늘, 인공위성의 궤적과 아스팔트의 냄새가 미약하게나마 풍겨오는 듯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 바로 그 찰나였다.

쿠구구구구궁—!

갑자기 발밑의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제어반 내부, 수백 년 동안 왜곡된 채 굳어 있던 모순적인 오류 에너지들이 시우의 정밀한 수정 공식과 충돌하며, 제어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역류를 일으킨 것이었다.

“에온! 제어반의 마나 흐름이…… 역방향으로 폭주하고 있어!”

유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대 서고의 천장에서 거대한 석판들이 무너지며 낙하하기 시작했고, 포탈의 푸른빛은 붉고 불길한 균열의 색으로 뒤틀려갔다.

시우의 심장이 다시 한번 차갑게 식어내렸다. 입력된 좌표의 마지막 한 자리가 맞춰지려는 순간, 장치 내부의 오류 에너지가 아카데미 전체를 붕괴시킬 대지진을 촉발하며 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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