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틈새로 스며든 밤공기가 따갑도록 시렸다.
가습기가 멈춘 사무실 내부에는 탄내 섞인 먼지 냄새와 잉크 향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서우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정시했다. 붉은색 경고등처럼 깜빡이는 숫자들.
[최종 미결제 잔액: 143,200,000,000원]
1,432억 원. 태산 파이낸셜이 도원 그룹의 악의적인 공매도와 자금줄 차단 작전으로 인해 삼켜야 했던 독약의 액수였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연명하고 있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충성을 맹세하던 이사들은 주식을 헐값에 매각한 채 자취를 감췄다.
서우의 오른손 검지 끝이 책상 유리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탁. 탁. 타타탁.
보이지 않는 가상의 주판알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튕겼다. 들어올 자금과 나갈 자금, 파산 신청 시 채권자들이 뜯어갈 가구 하나하나의 잔존 가치까지 소수점 아래로 쪼개졌다. 아무리 덧셈과 뺄셈을 반복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완벽한 파멸.
도원 그룹은 태산 파이낸셜을 헐값에 집어삼킨 뒤, 자신들의 불법 자금을 세탁할 껍데기로 쓸 계획이었다. 사냥개의 이빨이 목덜미에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걸은 내 취향이 아니야."
서우는 갈라진 목소리를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갈하게 다려진 네이비 수트 재킷을 걸치고, 흩어진 머리칼을 단단히 묶어 올렸다. 거울 속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지만, 눈동자만큼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도원 가문의 발밑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심장부에 가장 치명적인 폭탄을 들고 걸어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 폭탄의 이름은 권태준. 도원 그룹의 가장 오만하고 잔혹한 후계자이자, 학창 시절부터 뼈를 깎는 열등감과 적대감을 주고받았던 평생의 숙적이었다.
***
삼성동의 최고급 프라이빗 클럽, '에스페라'.
두꺼운 마호가니 문이 열리자 묵직한 가죽 냄새와 고가의 싱글 몰트 위스키 향이 뒤섞인 공기가 서우의 뺨을 스쳤다. 실내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 있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대관된 공간이었다.
방 한가운데, 짙은 브라운 가죽 소파에 길게 다리를 꼬고 앉은 남자가 보였다.
권태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굵은 선의 이목구비와 나른하게 가라앉은 눈매가 이질적인 위압감을 풍겼다. 그는 잔을 가볍게 흔들며 얼음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를 즐기고 있었다.
서우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울리자, 태준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첫 번째 시선은 서우의 가볍게 흙이 묻은 구두 끝에 머물렀다. 두 번째 시선은 그녀의 꼿꼿하게 세워진 척추를 따라 올라와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훑었다. 마지막 세 번째 시선이 되어서야, 그는 서우의 차가운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망해 가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바쁠 텐데. 여긴 무슨 일이지, 한서우?"
낮게 긁히는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부드럽게 지배했다. 동정이나 조롱조차 담기지 않은, 철저한 포식자의 여유였다.
서우는 그의 맞은편 의자에 거리를 두고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는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즈니스 제안을 하러 왔어. 네가 거절할 수 없는 아주 유용한 거래지."
"거래?"
태준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태산의 주식은 이제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고, 네 아버지는 의식 불명이지. 네가 가진 자산 중 내 거래 테이블에 올라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게 단 하나라도 존재하나?"
"있어."
서우는 허리를 곧게 펴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 자신. 그리고 태산 파이낸셜이 보유한 우호 지분 30%의 의결권."
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네 서출 형 권도진이 요즘 이사회 주주들을 포섭하고 있더군. 대주주 지분율 차이가 겨우 3% 내외인 걸로 아는데, 태산의 의결권이 권도진의 손에 들어가면 네 후계 구도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아?"
"그래서?"
"나와 결혼해. 쇼윈도로 딱 3년만."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은 듯 팽팽해졌다. 태준의 눈동자에 서린 장난기가 싹 가시고, 날카로운 경계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지금 네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당돌한 제안이네. 결혼이라니, 한서우. 네가 내 안주인 자리라도 탐내겠다는 건가?"
"착각하지 마, 권태준."
서우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건 구걸이 아니라 합병 제안이야. 도원 그룹의 방패막이가 필요한 나분과, 권도진을 확실하게 밟아 누를 확실한 의결권이 필요한 너의 비즈니스적 결합. 서로의 사생활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대외적으로는 완벽한 잉꼬부부를 연기하는 조건이야. 3년 뒤 깔끔하게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 돼."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괸 채 서우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서우의 굳게 다문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그녀의 내면에 도사린 두려움의 크기를 측정하려는 것처럼.
"넌 항상 계산이 빠르지."
태준이 상체를 서우 쪽으로 슬며시 기울였다. 짙은 샌들우드 향이 그녀의 호흡 속으로 훅 밀려들었다.
"하지만 리스크 계산을 빼먹었어. 내가 왜 굳이 너 같은 골칫덩어리를 내 침실에 들여야 하지?"
"내가 골칫덩어리인지, 네 인생 최고의 투자 자산인지는 직접 겪어보면 알게 될 거야."
서우는 지지 않고 그를 쏘아보았다. 숙적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오만함, 벼랑 끝에 서서도 상대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려는 독기. 그것이 한서우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ㅡ.
머릿속을 날카롭게 찢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강타했다.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려다 억지로 참아냈다. 시야가 거칠게 흔들리더니, 눈앞의 풍경이 기이한 색채로 물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흑백으로 바래 가고, 오직 권태준의 육체만이 기이할 정도로 선명한 황금빛 입자로 뒤덮였다.
'이게 무슨…….'
서우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태준의 머리 위로, 그리고 그의 가슴팍 위로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황금빛 장부가 실시간으로 글자를 새겨 넣고 있었다.
[인간 손익 계산안 (Human Balance Sheet) 활성화] [대상: 권태준 (도원 그룹 후계자)] - 시장 가치: 측정 불가 (최소 3,000,000,000,000원 이상) - 숨겨진 약점 및 비밀 자산: ① 도원 실업 차명 비자금 계좌 정보 (장부 가치: 50,000,000,000원) *추적 가능 ② 후계 구도 방어 비용 (소모 예측 가치: 120,000,000,000원) - 나를 향한 호감도: [경계 및 흥미] - 측정 불가 (고위험 고수익 자산 분류)
서우의 숨이 턱 막혔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지만, 황금빛 장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태준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몸값과 비자금 액수가 소수점 단위까지 정밀하게 요동치며 그녀의 뇌리에 직접 박혀 들었다.
도원 실업의 차명 비자금 500억 원. 권태준조차 완벽히 숨겨두었을 치명적인 약점이 고스란히 서우의 시야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숫자가, 장부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깨달음의 기쁨은 아주 찰나였다.
"윽……!"
갑작스레 척추뼈를 타고 올라온 극심한 한기가 서우의 전신을 지배했다.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다. 뼛속에 드라이아이스를 들이부은 것처럼, 혈관 하나하나가 서서히 얼어붙어 딱딱하게 굳어가는 감각이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들어가며 감각이 마비되었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심장이 얼음물 속에 잠긴 듯 박동이 느려졌고, 호흡할 때마다 차가운 백색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한서우?"
태준의 목소리가 이명 너머로 멀게 느껴졌다.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우는 테이블을 짚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미 감각을 잃은 손가락은 허공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검은 어둠이 침식해 들어왔다. 등 뒤로 무거운 중력이 작용하듯, 몸이 사정없이 뒤로 기울어졌다.
얼어붙어 부서질 것 같은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
"쯧, 하여간 대책 없는 건 여전하지."
낮고 거친 수치스러운 탄식과 함께, 강한 힘이 서우의 허리를 억세게 낚아챘다.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기 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서우의 뺨이 태준의 넓은 가슴팍에 파묻혔다.
그 순간, 지옥 같던 한기가 닿은 곳에서부터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온기가 얼어붙었던 그녀의 혈류를 단숨에 녹여 내렸다.
서우는 본능적으로 그의 셔츠깃을 꽉 움켜쥐었다. 살고 싶다는 맹목적인 갈망이 손끝에 실렸다.
태준은 품 안에서 잘게 떨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서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단단한 눈빛 속에 기묘한 지배욕과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이게 네가 말한 '겪어보면 알게 될 가치'인가?"
귓가를 울리는 그의 뜨거운 숨결이 차가운 이명을 지워내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뺨을 댄 채, 서우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허리를 단단히 동여맨 그의 팔뚝은 단단했고,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심장 박동은 미치도록 뜨거웠다. 얼어붙었던 혈관이 녹아내리며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전신을 자극했다. 감각이 돌아오는 고통 속에서 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음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태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가장 먼저 그의 눈길이 닿은 곳은 서우의 가늘게 떨리는 귓가였다. 이어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 자신의 셔츠를 찢어질 듯 움켜쥐고 있는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태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서우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 기묘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거 놔."
서우가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체온이 돌아오자마자 본능적으로 그와의 거리를 벌리려 몸을 뒤틀었으나, 태준의 팔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얇은 허리를 더 깊숙이 끌어당길 뿐이었다.
"먼저 매달린 건 너야, 한서우."
태준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필요할 땐 짐승처럼 안겨놓고, 살만해지니 바로 비즈니스 파트너 행세인가? 내 온기가 꽤 쓸만했던 모양이지."
"오해하지 마. 갑작스러운 저체온증이었을 뿐이니까."
"저체온증이라."
태준이 서우의 턱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악력으로 쥐어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그의 열기가 서우의 뺨을 타고 뇌리까지 번졌다.
"체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는 저체온증도 있나? 네 피부는 방금 전까지 시체처럼 차가웠어. 나한테 안기고 싶어서 부린 수작치고는 제법 목숨을 걸었더군."
"수작인지 아닌지 계산해 볼 머리는 있잖아, 권태준."
서우는 턱을 쥔 그의 손가락을 쳐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접촉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온기를 탐하듯,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네가 날 골칫덩어리로 보든, 미친 여자로 보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장부상의 손익이지. 넌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내가 왜?"
태준이 비웃음을 흘렸다.
"태산의 의결권 30%? 그거 없어도 난 권도진을 짓밟을 수 있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굳이 너라는 리스크를 안고 갈 이유는 안 돼."
"시간만 걸리는 게 아닐 텐데."
서우는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황금빛 장부의 숫자를 떠올렸다. '도원 실업 차명 비자금 계좌 정보. 장부 가치 500억 원.'
그것은 권태준이 후계 구도를 다지기 위해 극비리에 움직이고 있는 아킬레스건이었다. 그의 가문 내 적대자들은 물론, 그의 아버지인 권 회장조차 알지 못하는 은밀한 자산.
서우는 상체를 조금 더 기울였다. 그녀의 입술이 태준의 귀밑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차가운 얼음 향과 짙은 샌들우드 향이 공기 중에서 사납게 뒤섞였다.
"도원 실업."
태준의 몸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뭐?"
"그 밑으로 흘러 들어간 500억 원의 차명 비자금 계좌. 그거, 네가 관리하는 거잖아."
서우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그러나 명확한 어조로 단어들을 뱉어냈다.
"권도진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게 바로 그 계좌야. 만약 내가 그 계좌의 실체와 자금 흐름도를 권도진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네가 아무리 도원의 유력한 후계자라 해도, 아버님 성격에 차명 비자금의 존재를 알게 되시면 널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
태준의 호흡이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장 깊은 치부를 정면으로 간파당한 자의 본능적인 살기와 경계였다. 그가 서우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감이 서우의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지?"
태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방 안의 공기가 숨이 막힐 정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이제는 서우를 위협하는 포식자의 기운으로 변해 있었다.
"말했잖아. 내가 골칫덩어리인지, 네 인생 최고의 투자 자산인지는 직접 겪어봐야 안다고."
서우는 아픔을 참아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비자금 장부를 태워버릴 불씨가 될지, 아니면 권도진을 완벽하게 매장할 무기가 될지는 네 선택에 달렸어. 어때, 권태준? 이래도 내 제안이 리스크뿐인 거래야?"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태준은 서우의 얼굴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 치의 거짓도, 흔들림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계산과 자신감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침내 서우의 턱을 쥔 손을 풀고, 그녀의 아랫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리게 쓸어내렸다. 거칠고 사나운 몸짓이었으나, 그 안에는 기묘한 집착의 싹이 트고 있었다.
"한서우."
태준이 낮게 읊조렸다.
"넌 방금 내 목줄을 쥐었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서우의 허리를 가리키던 팔을 풀어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소파 깊숙이 밀어붙이며 상체를 밀착시켰다. 두 사람의 심장 소리가 터질 듯이 맞부딪혔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목줄을 쥔 사냥개는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 목덜미를 물어뜯는 법이니까."
그의 검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이 결혼, 받아들이지. 대신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 할 거야."
서우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그의 위협적인 선언 뒤로, 머릿속의 황금빛 장부가 다시 한번 요동치며 새로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경고: 대상의 소유욕 수치 급증] [계약 조건 변경 감지: '상호 불간섭' 조항의 실현 가능성 0.1% 미만으로 하락]
예상치 못한 장부의 예측에 서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서로 거리를 두는 쇼윈도 부부라는 그녀의 완벽한 계산서가, 권태준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사정없이 찢겨 나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내 구역에 들어온 걸 환영해, 내 사랑하는 아내."
그가 속삭이며 서우의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갖다 대었다. 닿은 피부를 타고 들어오는 뜨거운 온기가 서우의 척추를 다시 한번 강하게 뒤흔들었다. 그것은 구원인 동시에, 그녀를 평생 옭아맬 가장 잔혹한 덫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