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궁!
백색의 광조(光條)가 하늘을 찢었다.
제갈휘가 전개한 태을진화포(太乙震華砲)의 극점이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소용돌이쳤다. 그 중심에서 벼락의 무리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목표는 천공야금성의 중심부, 즉 가동 중인 수력 증기 터빈의 축이었다.
낙석의 낙하 궤적과 백색 뇌전의 통로가 겹쳤다.
"소소야!"
당철옥의 외침이 폭음에 묻혔다.
무혁의 우안(右眼)은 이미 칠흑의 연옥이었다. 남은 좌안마저 붉은 핏물로 흐려졌다. 망막에 투영된 수치들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낙하 질량: 42.7톤] [도달 시간: 0.82초] [소소의 회피 불가능 영역 명시] [생존 확률: 0.02%]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백색 번개가 야금성의 외벽을 강타하는 순간, 발생하는 충격파만으로도 소소의 연약한 육신은 분쇄될 터였다.
무혁은 턱뼈가 으스러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의 척추에 연결된 철륜 구동 의체가 비정상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철컥! 쿠웅!
의체 후방의 고압 실린더가 급격히 수축했다.
콰아아앙!
낙하하는 암석의 중심을 향해 무혁이 몸을 던졌다. 인간의 다리가 아닌, 강철의 기어와 수압 베어링이 만들어 낸 기형적인 도약이었다.
"비켜라!"
무혁의 포효와 동시에, 그의 강철 의체가 낙석의 하단을 들이받았다.
쿠구구궁!
엄청난 충격이 척수를 고스란히 관통했다. 의체의 메인 서브모터 회로에서 청색 불꽃이 튀었다. 구리 코일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경고: 유입 전류 임계값 초과] [메인 구동계 열화율: 94%] [구동 모터 회로 영구 유실 단선 진행 중]
전도체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면 저항에 의해 열이 발생한다. 이른바 주울 열(Joule heat)의 인과다. 임계점을 넘은 전류는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순식간에 액상으로 녹여 버린다.
치이이익!
의체의 무릎 관절에서 고압 배관이 터져 나왔다. 끓어오르는 수증기가 무혁의 허벅지를 덮쳤다. 살이 익어 가는 고통이 밀려왔으나, 무혁의 이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낙석의 궤도를 3.2도 외측으로 비트는 데 성공했다.
쾅!
거대한 암석이 소소의 발치에서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처박혔다. 대지가 요동쳤다. 사방으로 튄 돌가루가 뺨을 깎아 냈다.
"무혁 오라버니!"
소소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무혁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백색 뇌전 다발이 요새의 구리 도선(導線)을 타고 흘러들었다. 전류의 양은 무혁이 설계한 도전로(導電路)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크아아아악!"
무혁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뿜어졌다.
경맥을 타고 흐르는 것은 기(氣)가 아니었다. 그것은 날것 그대로의 전자기적 폭력치였다. 척추를 관통하는 신경망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머릿속에서 폭음이 울렸다.
[경맥 마모율: 99.1%] [좌안(左眼) 망막 시신경 파괴율: 87%]
좌안의 시야마저 바래 가고 있었다. 수치들이 흐릿해졌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서 있는 절벽의 윤곽이 지워졌다. 포신을 조준할 표적이 사라지는 상태였다.
시각의 상실은 공학자에게 곧 죽음을 의미한다. 측정할 수 없다면, 제어할 수 없다.
'더 넓게. 더 정밀하게.'
무혁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그는 뇌의 연산 영역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뇌세포의 사멸을 대가로 지불하는 강제 오버클러킹(Overclocking)이었다.
[정밀 제어 연산안 배율 가압 상승] [120%…… 135%…… 150%]
웅-!
이명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무혁의 눈앞이 완벽한 어둠으로 뒤덮였다. 좌안의 마지막 빛마저 소멸했다. 영구적인 실명이었다.
빛이 사라진 세계.
그러나 무혁의 의식은 오히려 확장되었다. 가시광선이 차단된 자리에, 새로운 차원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형(波形)의 세계였다.
철륜 구동 의체의 강철 바퀴에 걸리는 미세한 중량 자이로의 진동음. 요새 벽면을 흐르는 열량 센서 배관의 주파수 청음. 공기 중을 찢고 들어오는 뇌전의 전자기적 공명파.
소리와 진동, 그리고 전자기장의 흐름이 무혁의 뇌 신경망에 직접 디지털 신호로 입력되었다.
[가상 공간 입체화 완료] [오차 범위: ±0.03mm]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밀한 역학 지도가 무혁의 어둠 속에 펼쳐졌다.
"무혁아! 이대로는 기기가 폭발한다!"
당철옥의 다급한 목소리가 진동 파형으로 감지되었다. 그의 심장 박동수는 분당 140회. 극도의 불안 상태였다.
"철옥 형님."
무혁이 피가 고인 입술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제어반 우측의 주 동력 단자대를 잡으십시오."
"미쳤느냐! 거긴 번개가 흐르는 길이다!"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가문의 진기(眞氣)를 그곳에 주입해야 합니다. 터빈의 과부하를 막아야 합니다."
당철옥은 망설였다. 무혁의 기계학은 언제나 가문의 무덕을 위협하는 괴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무혁의 맹목(盲目)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 어떤 무인보다 숭고했다.
"좋다. 내 목숨을 가문의 업에 걸겠다."
당철옥이 움직였다. 그의 구두가 철판을 딛는 진동이 무혁의 감각망에 잡혔다.
"지금입니다. 송전을 시작하십시오."
철옥이 주 동력 단자대를 움켜쥐었다.
치이이이익!
철옥의 손바닥에서 가죽이 타들어 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극심한 고통에 철옥의 안면 근육이 경련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적통 무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단전을 지탱했다.
그의 기세가 단자대를 통해 무혁의 연산망으로 흘러들었다.
[아군 진기 유입 확인] [수력 증기 터빈 냉각 효율 부족] [임계 온도 도달까지 3초]
"이것을 써라!"
철옥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터빈의 중심 제동 장치로 던졌다.
그것은 사천당가 선대 가주가 남긴 진원 보존용 백색 도화 부적(白色 桃花 符籍)이었다. 대대로 가주의 신물을 수호하기 위해 극순(極純)의 빙한 진기를 봉인해 둔 비보였다.
스어어어어!
부적이 터빈의 마찰축에 닿는 순간, 봉인되어 있던 백색의 한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마찰열로 붉게 달아올랐던 주철 축이 순식간에 서리를 머금으며 식어 내렸다.
[시스템 제동력 확보] [터빈 회전수 안정화 완료]
"성공이다……."
소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제갈휘의 태을진화포가 전자기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요새 전면의 천둥포(天雷砲)는 이미 충전율 100%를 초과했다. 배출하지 못한 에너지가 요새 전체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무혁은 어둠 속에서 제갈휘가 서 있는 절벽 위를 '겨누었다'.
그의 연산안이 제갈휘의 품속을 포착했다. 가시광선은 보이지 않으나, 제갈휘가 지닌 특수한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에너지 파형이 잡혔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풍수 수맥 제어 진기 배출용 호신패였다.
[에너지 굴절 파형 포착] [주파수: 412Hz] [상쇄 위상 연산 완료]
"제갈세가의 진법은 기하학적 대칭을 기반으로 한다."
무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대칭은 아름답지만, 균형이 깨지는 순간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다."
무혁은 천둥포의 사출 궤도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로렌츠 힘에 의해 가속되는 포탄의 궤적을 제갈휘의 호신패 파형과 정확히 '역위상(逆位相)'으로 겹쳐 놓았다. 두 파동이 만나면 서로를 상쇄시키거나, 혹은 한쪽으로 힘이 완전히 쏠리게 된다.
이른바 파동의 간섭 효과(Interference effect)다. 무혁은 제갈휘의 호신패가 지닌 굴절력을 역이용해, 쏟아지는 뇌전의 방향을 물리적으로 꺾어 버릴 계획이었다.
"발사."
무혁의 목소리가 요새의 진동을 타고 소소에게 전달되었다.
소소가 이 악물고 발사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쿠카카카카쾅!
천둥포의 두 구리 궤도 사이에서 청색의 광폭한 플라스마 광선이 뻗어 나갔다. 그것은 포탄이 아니었다. 축적된 뇌전의 에너지가 초고속으로 사출된, 거대한 빛의 창이었다.
광선은 요새를 향해 떨어지던 제갈휘의 백색 번개와 공중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어어어엉!
하늘이 두 쪽으로 대치하는 듯한 섬광이 사천의 협곡을 밝혔다.
하지만 광선은 부딪혀 사라지지 않았다. 무혁이 계산한 역위상 공명에 의해, 제갈휘의 뇌전 다발이 천둥포의 청색 광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절벽 위의 제갈휘가 눈을 부릅떴다.
천벌의 힘이, 요새의 포신을 타고 역류하여 자신들을 향해 휘어지고 있었다. 호신패가 빛을 발하며 에너지를 굴절시키려 했으나, 무혁의 연산은 이미 그 굴절 경로마저 예측해 궤도를 수정해 둔 상태였다.
"이것은 인과율의 역전이다."
무혁의 보이지 않는 두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청색과 백색이 뒤섞인 거대한 뇌전의 해일이 제갈세가의 본 함대 진영을 향해 직선으로 꺾여 들어갔다.
"방어막을! 진법을 전개하라!"
제갈휘가 비명을 질렀으나 이미 늦었다.
도전율을 극대화한 플라스마의 해일이 제갈세가의 진지를 통째로 삼켰다.
번쩍!
목재로 만들어진 군선들과 석조 방벽들이 단 1밀리초(ms) 만에 증발했다. 수백 명의 무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흩어졌다. 철제 무기들이 녹아내려 붉은 쇳물로 흘렀다.
쿠구구구구궁-!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연기를 뿜으며 남았다. 제갈세가가 자랑하던 천공 함대와 방진의 9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침묵이 협곡을 지배했다.
요새 내부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 갔다.
당철옥은 단자대에서 손을 떼고 주저앉았다. 그의 양손은 붉게 짓물러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천벌을 꺾었단 말인가."
소소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무혁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라버니…… 눈이…… 정말 안 보이시는 거예요?"
무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연산안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감각망에, 단 하나의 강력한 진동 파형이 잡혔다.
사라진 제갈세가의 본진 중심부.
불타는 잔해 속에서, 흙과 피로 범벅이 된 그림자 하나가 일어섰다.
제갈휘였다.
그의 오만한 융포는 갈가리 찢어졌고, 피부는 화상으로 문드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광기 어린 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당무혁……!"
제갈휘가 품속에서 수십 개의 백색 도검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비전 방진용 초고밀도 진기 도검(陣氣 刀劍)들이었다.
그가 대지를 박차고 솟구쳤다.
그의 형체는 이미 인간의 움직임을 초월해 있었다. 마지막 진원마저 불태우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기세였다.
슈우우우웅!
제갈휘가 요새의 중앙탑을 향해, 일직선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도검 끝에서 뿜어지는 검기가 무혁의 정수리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