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쇠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코를 찌르는 이취(異臭)는 폐부를 거쳐 척추 끝자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감각은 거기서 멈췄다. 허리 아래는 차디찬 얼음덩이와 같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무혁은 진흙 구덩이에 처박힌 휠체어 바퀴를 잡고 상체를 비틀었다.

서걱.

녹슨 가죽 장갑이 찢어지며 거친 마찰음이 났다. 손바닥에 박힌 쇠가시가 살을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검은 기름때와 섞여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고통은 선명했으나, 다리는 여전히 죽은 고목나무처럼 미동도 없었다.

이곳은 사천당가(四川唐門)의 남쪽 귀퉁이에 자리한 폐철(廢鐵) 매립지였다. 가문의 무인들이 쓰다 버린 암기 부스러기, 깨진 무쇠 가마솥,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관의 파편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서자(庶子)이자 하반신이 마비된 불구자인 당무혁에게 허락된 유일한 영지(領地)였다.

"오차는 삼 리(厘) 이하로 좁혀야 한다."

무혁은 이를 악물었다.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그는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졌다. 상체의 힘만으로 자갈밭을 기었다. 흙먼지가 입안으로 씹혔다. 비참함 따위는 뇌의 연산 영역에서 배제했다. 오직 생존만을 위한 물리적 수치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가 기어간 곳에는 커다란 나무 수조가 놓여 있었다. 수조 안에는 탁한 빗물과 함께 고장 난 수동 기어 수십 개가 잠겨 있었다.

무혁은 물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상처 난 손을 자극했다. 그는 감각만으로 톱니바퀴의 날을 세었다.

삼십이 치(齒). 이십 사 치.

서로 맞물려야 할 기어들의 중심축이 어긋나 있었다. 마모된 표면은 동력의 전달 효율을 사십 퍼센트 이상 갉아먹을 것이 분명했다.

현대 정밀 제어 공학의 세계에서 이러한 오차는 불량품, 혹은 쓰레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낙후된 무협의 세계에서, 더구나 사지가 온전치 못한 서자의 처지에서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 폐철들을 조합하여 자신의 다리를 대체할 기형적인 구동 장치를 만들어야만 했다. 가문의 적통인 당무진의 수하들이 언제 목을 죄어올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더 정밀하게. 조금 더."

무혁은 녹슨 드라이버와 정을 쥐고 기어의 이빨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예리한 금속음이 폐가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머릿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고전압 전류에 감전되어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었다.

"아아아악!"

무혁은 수조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감각에 눈을 부릅떴다. 안구의 모세혈관이 일제히 터져 나가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눈앞의 차가운 빗물과 녹슨 고철들이 기이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붉은 시야 위로 정체불명의 선들이 그어졌다. 그것은 선형 그래프였다.

사물의 물리적 질량, 중력 가속도, 마찰 계수, 그리고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진기(眞氣)의 흐름이 수치화되어 망막에 직접 투사되었다.

[연산 정밀도: 99.8%] [대상: 마모된 동합금 기어 세트] [인과율 연산 중…….]

'정밀 제어 연산안(精密制御演算眼)'이 개안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리 현상이 수학적 공식으로 분해되어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조 속 물의 대류 현상이 벡터 화살표로 보였고, 기어가 맞물릴 때 발생하는 응력의 집중도가 붉은색 농도로 표시되었다.

"커헉!"

무혁은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뇌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연산안의 가동은 영혼과 중추신경을 갉아먹는 자학적 행위였다. 시신경이 타들어 가는 통증과 함께 일시적으로 주변의 가시광선이 흐려졌다.

하지만 무혁은 멈추지 않았다. 입가에 피를 묻힌 채 미친 듯이 웃었다.

"공식이 맞물린다."

그는 연산안이 제시하는 오차 수정 경로를 따라 정을 내리쳤다.

깡! 깡!

정밀한 타격이 마모된 기어의 날을 깎아냈다. 불필요한 마찰력을 발생시키던 미세한 요철들이 정확히 일 리(厘)의 오차도 없이 제거되었다.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냐?"

등 뒤에서 맑지만 경계심이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

무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연산안의 잔상 너머로 상대의 실루엣이 보였다. 붉은색과 청색의 기 흐름이 몸을 감싸고 있는 인물. 사천당가 최고의 천재 야금사, 당소소였다.

그녀의 손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구리 합금 전선 뭉치가 들려 있었다. 가문 내부에서 극비리에 제조되는 고도 전도성 금속선이었다.

"서자 무혁. 소문대로 미친 짓을 가공(加工)하고 있군."

당소소는 코를 찡그리며 다가왔다. 폐철 더미의 악취와 쇠기름 냄새에 거부감을 느낀 탓이었다. 그녀는 휠체어에서 굴러떨어져 기어 다니는 무혁의 꼴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판자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것이 무엇이냐?"

판자 위에는 검은 숯으로 그려진 기괴한 도면이 가득했다.

그것은 당가의 그 어떤 기관 설계도와도 달랐다. 삼차원 투영법으로 그려진 정밀한 기계 장치의 단면도였다. 기어의 잇수, 압력각, 유압 실린더의 내경 수치, 그리고 정체불명의 아라비아 기호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현대 공학의 정수인 유압 제어 계통도였다.

"이 선들은…… 힘의 흐름인가? 이 기호는 대체 무슨 공식을 뜻하는 거지?"

당소소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판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숯으로 그려진 설계도면을 더듬었다.

그녀는 당가에서 평생 야금술과 기관 장치를 연구해 온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 기괴한 낙서들이 허무맹랑한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극도의 정밀함과 수학적 계산이 뒷받침된, 완벽한 실현 가능성을 내포한 '공학적 신색(神色)'이라는 것을.

"압력 전파의 원리다."

무혁이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닫힌 관 내부의 유체에 가해진 압력은 모든 표면에 동일한 크기로 전달된다. 내공을 외부에 방사하여 타격하는 것과 물리적 궤적이 동일하지."

"유체…… 압력? 내공을 기계에 가두어 제어한다는 뜻인가?"

당소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림의 상식으로 진기란 인체의 경맥을 통해서만 운용되는 초자연적인 힘이었다. 그것을 금속의 관과 기름을 통해 통제한다는 발상은 가문의 기강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이해할 필요 없다. 야금사여, 네가 들고 있는 청동 선을 내놔라."

무혁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은 상처와 기름때로 엉망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연산안의 잔광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당소소는 그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서자이자 불구자라며 멸시받던 사내가 보여주는 지적 오만함. 그것은 가문의 그 어떤 천재에게서도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가져가라. 어차피 버려진 시험작이다."

소소는 사사로운 감정을 누르고 구리 전선 뭉치를 던져주었다. 그녀의 심장은 이미 이 기괴한 공학의 이치에 깊이 매료되어 세차게 뛰고 있었다.

무혁은 전선을 받아 쥐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였다.

그는 연산안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 팽창했다.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에너지 흐름 동기화 개시.] [매개체: 선천 코어(先天 Core)] [경고: 기(氣) 동기화 시 경맥 마모율 과다. 마찰 손실 42%]

무혁은 휠체어 프레임 하단에 장착된 은밀한 구동 장치를 열었다.

그 안에는 가문의 보물고에서 훔쳐낸 작은 청색 광석이 박혀 있었다. 스스로 미세한 진기를 뿜어내는 불안정한 에너지원, '선천 코어'였다.

그는 구리 전선을 선천 코어의 극점에 정밀하게 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유압식 실린더의 서보밸브와 연결했다.

수압의 원리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하다. 미세한 피스톤의 움직임이 좁은 관을 통해 전달되면, 반대편의 거대한 실린더는 수십 배의 물리적 힘을 발휘한다. 무혁은 자신의 내공을 이 수압 제어계의 트리거(Trigger)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동기화(Synchronization)."

무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단전에서 한 줌의 진기가 흘러나와 구리 전선을 타고 선천 코어로 흘러 들어갔다.

치이이이익!

순간, 휠체어 하부에서 뜨거운 증기와 함께 청색 불꽃이 튀었다.

"끄으으윽!"

무혁의 전신이 격렬하게 떨렸다.

기가 기계 장치와 직접 동기화되는 순간, 역류한 고주파 진동이 척추의 신경망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경맥이 유리 조각에 찢겨 나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기계와 인간의 육체가 억지로 결합하며 발생하는 더블 도겁(渡劫)의 대가였다.

그러나 통증의 이면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철컥! 위이이잉!

폐철 더미에서 주워 모은 정크 기어들이 완벽한 기하학적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유압식 실린더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청동 파이프를 타고 흐르는 오일의 압력이 휠체어의 철륜(鐵輪)으로 전달되었다.

철컥, 쿵!

마비된 무혁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강철 보조대가 우렁찬 기계음과 함께 대지를 딛고 일어섰다.

무혁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앉아 지내야 했던 그가, 오직 자신의 손으로 만든 기계 의체의 힘으로 대지 위에 당당히 두 발로 선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이를 지켜보던 당소소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것은 무공이 아니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불구자가 오직 쇠붙이와 기름, 그리고 정밀한 수치 계산만으로 인체의 한계를 극복해 낸 순간이었다.

기형적 철륜 구동 의체는 육중한 피스톤의 기계음을 토해내며 대지를 짓눌렀다. 무혁의 붉게 충전된 연산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구동 압력 이십 기압. 고정 완료."

무혁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쇳소리를 내며 고정된 강철의 다리. 비록 경맥이 마모되는 고통은 뼛속까지 파고들었으나, 이제 그는 더 이상 기어 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의 첫 번째 성취이자, 가문을 향한 반격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여운을 즐길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궁!

폐각을 둘러싸고 있던 낡은 흙벽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 구덩이 사이로 푸르스름한 독기(毒氣)를 뿜어내는 암기 독검을 든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문의 실권자 당무진이 보낸 서형(誓刑)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자비란 없었다. 오직 서자를 완벽한 시체로 만들겠다는 살의만이 가득했다.

"서자 무혁! 가문의 비기를 훔쳐 괴이한 요술을 부린 죄, 여기서 처단한다!"

선두에 선 전사가 독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무혁을 향해 짓쳐 들었다.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열여덟 자루의 독암기가 사방에서 무혁의 사지를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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