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의 오른쪽 상단, 실시간으로 갱신되던 마이크로세컨드 단위의 시스템 지연 시간(Latency) 표시기가 붉은색으로 점멸한다. 수치 뒤에 붙은 단위가 'ms'에서 'sec'으로 전환된다. 전뇌 내부의 연산 속도가 물리계의 시간 흐름보다 느려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방화벽 서브루틴 '가디언-09'가 강제 실행되었다. 비정상적인 동기화 시도로 발생한 노이즈 패킷을 위협으로 분류한 시스템은 즉각 당신의 가상 아바타를 포함한 세그먼트 전체를 격리망으로 이동시켰다.
"경고: 디렉토리 오염 감지. 시스템 완전 복구를 위한 포맷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인공적인 기계음이 청신경을 직접 타격한다. 관자놀이 부근에 이식된 바이오 넷 칩의 온도가 급상승한다. 전정기관이 마비되면서 바닥이 사라진 듯한 추락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타는 듯한 금속 냄새가 비강을 찌르는 것은 이식형 칩이 과부하로 열화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소뇌 피질의 환각이다.
가장 먼저 소실되기 시작한 것은 기억 장치의 상위 인덱스다. 10분 전 아틀라스가 제시한 연산 공식의 변수들, 그리고 이 가상 전장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온 보안 게이트의 고유 해시값이 흐릿한 노이즈 속으로 영구 유실된다. 메인 메모리 잔량이 82%에서 54%로, 다시 39%로 급격히 추락한다. 포맷 프로세스가 언어 중추와 자아 코어 영역까지 도달하는 데 남은 시간은 12초에 불과하다.
뇌척수액의 온도가 임계점인 섭씨 41도에 도달하자, 시각 데이터의 왜곡이 극에 달한다. 가상 환경의 텍스처들이 마치 젖은 먹지처럼 흘러내린다. 격리 구역 너머, 찬란하게 빛나는 시스템 데이터 허브의 푸른 광체만이 소용돌이치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곳은 방화벽의 완전한 보호 아래 제어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이 루프의 진원지다.
머릿속 시냅스 전송률이 8%를 가리키며 적색 경고등을 켠다. 더 이상의 사고 연산이 불가능해지는 절멸의 순간이 코앞이다. 완전히 포맷되어 백치 상태의 기계 노드가 되기 전, 남은 미세 전류를 쥐어짜 내 실행할 수 있는 프로세스는 오직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