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새벽 2시 14분. 거산대학병원 본관 12층, 인적 없는 신경외과 부교수 연구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도심 공동화 현상이 차가운 유리창에 비친다. 당신은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철저하게 암호화되어 있던 'G-102 임상시험 약동학(Pharmacokinetics) 데이터 파일'. 이 메마른 숫자들의 나열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내는 당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단 3분 만에 당신의 뇌는 정밀한 컴퓨터처럼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뮬레이션을 끝마친다.

- 02시 15분. 투약 1시간 후 최고혈중농도(Cmax) 도달. 통상적인 인체 안전 기준치의 3.2배 초과. - 02시 17분. 반감기(Half-life) 분석. 약물이 체내에서 대사되지 않고 뇌-혈관 장벽(BBB)을 통과한 뒤 뇌간(Brainstem)에 잔류하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 확인.

이것은 치료제의 데이터가 아니다. 뇌종양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을 담보로 투여된, 서서히 뇌를 부풀려 숨통을 조이는 '합법적인 독약'의 기록이다. 약물의 투과율을 무리하게 높이려다 환자의 호흡 중추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급성 뇌부종(Brain edema)을 유발한 것이다. 이 임상에 참여했다가 급사한 환자 세 명의 사인은 '지병으로 인한 심정지'로 조작되었지만, 이 수치들은 명백히 소리치고 있다. 그들이 약물 독성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갔음을.

"결국 선을 넘었군, 백현우."

당신은 신음하듯 중얼거린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이자 최종 승인권자의 이름은 백현우. 당신과 동기이자 신경외과 최고의 라이벌이며, 병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차기 과장 후보다.

그를 향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당신은 완벽주의자였던 과거의 그를 기억한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뇌혈관을 잇기 위해 수술실에서 열 시간을 버티던 집요한 의사. 그를 괴물로 만든 것은 불치병을 정복하겠다는 왜곡된 집념과, 병원 수뇌부가 가한 천문학적인 연구비 압박이었을 터다. 그러나 설령 그에게 나름의 고뇌와 핑계가 있었다 한들, 살아 숨 쉬던 환자들을 단순한 실험용 '넘버'로 취급한 죄마저 흐려질 수는 없다.

손에 쥔 데이터는 강력하지만, 법정에서 병원이라는 거대 악을 무너뜨리기엔 아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백현우 개인의 꼬리 자르기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더 확실하고 원초적인 시스템 로그 파일이나 윗선의 결재 문건이 필요하다.

모니터의 푸른 빛이 당신의 차가운 눈동자에 비친다. 생각에 잠긴 당신의 손가락이 마우스 휠을 천천히 굴린다. 이제, 이 위험한 칼날을 어떻게 휘두를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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