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당신의 눈동자에는 일순간의 동요도 일지 않습니다.
"죽어, 윤우주!"
광기에 젖어 돌진하는 박 실장의 손에 들린 메스가 당신의 목덜미를 겨냥합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움직임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프레임 단위로 쪼개져 느리게 흘러갑니다. '정밀 수술 라이선스 100% 동화'. 뇌세포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가속화된 연산 능력이 상대의 허술한 궤적을 완벽하게 읽어냅니다.
당신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칼날을 피함과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묵직한 금속제 리트랙터(Retractor, 견인기)로 박 실장의 손목 경혈을 정확하게 내리칩니다. 무시무시한 타격음과 함께 박 실장의 손에서 메스가 떨어져 타일 바닥으로 튕겨 나갑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그의 위로, 마침내 수술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보안요원들과 형사들이 덮쳐듭니다. 수술실을 더럽히던 악취가 마침내 끌려 나갑니다.
당신은 바닥에 떨어진 흉기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오더를 내립니다.
"바닥 소독해. 마취과, 이소플루란 유지하고 환아 바이탈 체크."
수술대 위에는 선천성 관상동맥 기형으로 심정지 직전에 놓인 어린 환자가 누워 있습니다. 심전도 모니터의 파형은 이미 unstable ventricular tachycardia(불안정형 심실빈맥)를 그리며 가파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심장이 완전히 멈추기 전, 뛰는 심장 위에 관동맥 우회술(OPCAB)을 시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당신은 메스를 고쳐 잡습니다. 손끝을 타고 흐르는 전율은 이전에 느끼던 이물감이 아닙니다. 완벽히 당신의 육체와 영혼에 녹아든 정밀 시스템의 감각입니다.
"8-0 프롤렌(Prolene), 카스트로비에호(Castroviejo) 니들 홀더."
손을 뻗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구가 쥐어집니다. 당신의 손길은 바람조차 비껴가듯 정교합니다. 미세 메스로 직경 1mm에 불과한 환아의 좌전하행지(LAD)를 절개합니다. 심장 고정 장치(Stabilizer)가 무색하게 미세하게 요동치는 심장 벽 위로, 당신의 바늘이 춤을 추듯 파고듭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8-0 봉합사가 좌내간동맥(LITA)과 소아의 관상동맥 벽을 막힘없이 관통합니다. 한 땀, 두 땀, 세 땀. 100% 동화된 동공이 현미경 너머의 세상을 초고해상도로 포착하고, 손가락 마디마디의 미세 근육들이 마이크론 단위의 오차마저 스스로 보정합니다. 심장의 박동 궤적을 미리 예측하여, 뛰는 심장과 완벽히 동기화된 손놀림. 그것은 의학의 한계를 넘어선 신의 영역입니다.
마지막 매듭을 짓고 혈류 차단 클램프를 해제하는 순간, 우회로를 통해 붉은 선혈이 막힘없이 흘러 들어갑니다.
"바이탈 안정화됩니다! EKG, 정상 동율동(Sinus rhythm) 복귀!"
마취의의 상기된 외침과 함께 수술실 안에 안도의 한숨이 퍼져나갑니다. 당신은 마스크 너머로 조용히 숨을 내쉬며 메스를 내려놓습니다. 또 하나의 고귀한 생명이 죽음의 음지에서 구원받는 순간입니다.
***
그로부터 수개월 후.
정의의 수레바퀴는 잔혹할 정도로 정확하게 굴러갔습니다.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고 병원을 사유화하려 했던 이사장 일가와 살인미수 및 횡령을 일삼은 박 실장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이 쌓아 올린 탐욕의 제국은 먼지처럼 스러졌고, 그 더러운 잔재가 치워진 자리에 마침내 진정한 의료의 가치가 바로 섭니다.
당신은 새로이 정화된 병원의 영예로운 외과 과장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완벽한 천재 의사로서 수술실 앞에 서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당신의 수술복을 찬란하게 비춥니다. 살해당했던 과거의 원혼도, 불의에 타협해야 했던 굴종의 세월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환자의 생명만을 위해 메스를 들 수 있는 완벽한 자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수술실 문을 여는 당신의 손끝에, 다시 한번 익숙하고 정겨운 시스템의 맥박이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구원을 노래하는 메스를 쥐고, 경이로운 신화의 다음 장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