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어둠이 짙게 깔린 영안궁 지하 야철소의 가변 회랑. 이강의 시야를 가득 채운 은색의 광막은 숨이 막힐 정도로 정교한 기하학적 파동을 그리며 넘실거렸다.

‘정밀 설계의 안(眼)’이 뿜어내는 은빛 입자들은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 하나하나를 격자로 쪼개어 분석하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도가니의 열기 속에서, 마침내 오차율 0%의 수치가 선명한 낙인처럼 허공에 박혔다. 대포의 강선 내벽을 투사하는 삼차원 도면이 기하학적인 선들을 완벽하게 맞물리며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우르릉, 쾅!

발밑을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은 인간의 근력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지하 야철소 한편을 관통하는 개울의 거센 물살이 삼중 청동 기어와 단단한 참나무 축을 짓누르며 회전하고 있었다. 가죽 풀무 수십 개를 장정들이 매달려 누르던 수작업은 간데없고, 수차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기압이 송풍관을 타고 용광로의 심장부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온도가 멈추지 않고 오릅니다! 저하, 가마가 버티고 있사옵니다!”

검은 그을음을 온몸에 뒤집어쓴 철화장 박기현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시선은 가마 외벽에 발라진 기묘한 청회색 도료에 닿아 있었다.

그것은 이강이 일찍이 가마터 수색 도중 발견하여 은밀히 추출해 두었던 유황 내 특정 화성 결정이었다. 황동과 점토의 결합을 촉진하고 초고온에서도 균열을 막아내는 특수한 결정 구조를 투시하여 보관해 두었던 그 비장의 물질이, 지금 가마 내벽의 열 손실을 98%까지 차단하는 열 보존 촉진제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옹기 가마였다면 진작에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겠지만, 화성 결정이 배합된 특수 도료는 쇳물의 복사열을 고스란히 도가니 내부로 반사해 밀어 넣고 있었다.

“황동(黃銅)과 백련강의 배합율을 수치대로 유지하라.”

이강의 음성은 기계처럼 냉정했다.

“지금 이 시각, 명나라 칙사 사 태감과 양서화는 대궐의 연회에서 국왕 전하가 내린 어주에 취해 있을 것이다. 감시의 눈길이 가장 느슨해진 바로 이 반 시진이, 우리가 조선 최초의 주강포를 대지에 내놓을 유일한 기회다.”

이강은 차가운 눈빛으로 용융 상태의 쇳물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법적인 방패막이는 완벽히 짜여 있었다. 사림의 영수 김덕형이 세제의 요사스러운 기술 개발을 탄핵하기 위해 예조의 독점권과 야철 규제에 관한 고대 예서 사료들을 샅샅이 수집했을 때, 이강은 역으로 그가 모아둔 경국대전의 맹점과 선대 왕들의 예장 예외 원칙을 가차 없이 들이밀어 사헌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사대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쟁여두었던 법적 무기를 도리어 빼앗아 가문의 숨통을 끊어놓았던 그 전율적인 법정의 승리가 있었기에, 오늘 밤의 비밀 주조는 그 어떤 율법적 제약도 받지 않는 왕실의 정당한 전결 권한 아래 놓여 있었다.

“쇳물을 주형에 주입하라!”

박기현이 쇠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거대한 도가니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도가니가 서서히 기울어지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액체 괴물이 진흙으로 구워낸 대포 주형의 아가리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이익!

지하 야철소 전체가 증기와 백열의 빛으로 가득 찼다. 뜨거운 열풍이 이강의 곤룡포 소맷자락을 거칠게 흔들었다. 그러나 이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직 주형 내부의 미시 구조만을 ‘안’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형의 중간 부분, 포신이 꺾여 들어가는 유선형 완충 지대에서 불길한 기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주형 내벽의 급격한 온도 차이와 국소적인 냉각 불균형으로 인해 내부의 탄소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버리는 현상이었다.

보글, 보글보글!

“어, 어찌 이리되는가!”

박기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숨구멍입니다! 쇳물이 식기 전에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포신 한가운데에 구멍을 만들고 있사옵니다! 이대로 굳으면 포신은 화약의 폭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첫 발에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장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쇳물 주입을 멈추면 포신은 기형적으로 굳어 폐기될 것이고, 계속 부으면 가스가 내부에 갇혀 거대한 폭탄이 될 판이었다.

“소신의 기예가 부족하여…… 이 귀한 백련강을 모두 버리게 되었사옵니다! 저하, 제발 대피하소서! 가마가 터질 수도 있사옵니다!”

박기현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수십 번의 실패를 거치며 다져진 강인한 장인이었으나, 냉각 불균형이라는 물리적 한계 앞에서는 그 역시 무력한 조선의 옛 기술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강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망막 위로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복잡한 유체역학 방정식이 실시간으로 나열되기 시작했다.

[경고: 주형 하부 냉각 오차 발생] [가스 잔류율: 14%] [기포 발생 지점 투시 완료]

‘원인은 점토 주형의 하부 수분율과 주입 압력의 불균형이다.’

이강은 머릿속으로 정밀 설계의 안을 고속 제어했다. 쇳물 내부에서 요동치는 가스의 유동 방향을 벡터 화살표로 시각화하여 읽어냈다. 이강은 주저 없이 품에서 단단한 황동 합금 봉을 꺼내 주형의 특정 상부 지점을 가리켰다.

“박기현, 정신 차려라.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이강의 서늘한 목소리가 야철소의 소음을 뚫고 장인들의 귓전에 내리꽂혔다.

“정확히 이 자리에 지름 세 푼의 배기공을 뚫어라. 그리고 주형 하부에 차가운 물을 끼얹는 것을 즉시 중단하고, 불타는 숯을 주형 하단에 배치해 온도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어라!”

“예? 포신 하부에 불을 대라 하심은…… 식히는 속도를 늦추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리하면 쇠가 무뎌질 터인데…….”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균일해지는 것이다. 내 지시대로 주입 압력을 유지하면서 배기공으로 가스를 배출시켜라. 당장!”

세제 이강의 서슬 퍼런 명령에 박기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장인들이 삽시간에 달아오른 숯을 주형 하단에 밀어 넣었고, 박기현은 송곳을 들어 이강이 지목한 정확한 위치의 진흙 주형을 뚫어냈다.

픽! 피이이이익!

배기공이 열리자마자 갇혀 있던 시커먼 가스가 엄청난 압력으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이강은 안(眼)을 통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쇳물의 점도와 탄소 배합율을 읽어내며 지시를 이어갔다.

“구리와 황동의 분말을 지금 이 구멍으로 한 홉씩 번갈아 투입하라. 쇳물의 급격한 수축을 배합율 완충으로 상쇄시킨다.”

장인들의 손놀림이 번개처럼 빨라졌다. 이강의 지시는 단 일 분의 오차도, 단 일 푼의 치수 양보도 없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물리적 통제 하에, 쇳물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던 가스 기포들이 배기공을 통해 완전히 빠져나갔다.

쇳물이 주형의 유선형 곡선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완벽한 밀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형 내부의 붉은 열기가 서서히 푸른빛으로 가라앉으며, 철의 분자들이 격자 구조를 단단히 물리며 결합해 나가는 모습이 이강의 눈에 은색의 입자로 투영되었다.

[안정화 단계 진입] [주형 내 기포 잔류율: 0.02% (허용 오차 범위 미만)] [주강포 성형 완료]

치이이이이익!

마침내 주형을 깨뜨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선의 그 어떤 장인도 상상해 보지 못한 완벽한 유선형의 강철 대포였다.

기존의 조잡한 청동제 홍이포나 무쇠 화포와는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었다. 표면에는 단 하나의 기포나 미세한 균열 흔적조차 없었고, 백련강 특유의 푸르스름한 철광이 흐르는 포신은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수력 송풍과 가마의 고온을 버텨낸 쇳물이 세제의 정밀한 수치 통제를 거쳐 마침내 천하를 뒤흔들 물리적 실체로 화한 것이다.

박기현이 떨리는 손으로 포신을 쓸어내렸다.

“이것이…… 정녕 우리가 만든 포란 말입니까? 쇠의 결이 마치 잘 벼려진 명검의 칼날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포가 아니다.”

이강이 차가운 눈빛으로 포구를 바라보았다.

“조선의 국경을 침범하려는 모든 외세의 숨통을 끊어놓을 자주 국방의 첫 번째 초석이다. 이제 가동 테스트를 준비하라.”

조선의 어둠을 뚫고 태어난 구리 짐승이 차가운 철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

이튿날 여명.

임진강 나루터 들판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대지를 집어삼킬 듯 내려앉아 있었다. 강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서늘한 기운이 백관들의 관복 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검은 철갑을 두른 한성부 군사 수천 명이 들판을 빽빽하게 메운 채 창검을 세우고 서 있었다. 그 살벌한 군진의 한가운데, 화려한 가마에서 내린 친명파의 영수 양서화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강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뒤에는 대명 천자의 칙사단을 이끄는 사 태감이 오만한 표정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서 있었다.

“세제 저하, 이른 아침부터 임진강의 찬 바람을 맞게 해 드려 송구하옵니다.”

양서화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뱀과 같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천자국의 위엄을 비추고, 조선의 방비 태세를 검열하기 위해 칙사 대감께서 친히 이 자리에 행차하셨사옵니다. 조선이 상국을 위해 준비한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 이 자리에서 사열을 통보하는 바입니다.”

양서화가 손을 번쩍 들자, 한성부 군사들이 길을 열며 거대한 화포 사격 표적판들을 강 건너편 절벽에 세우기 시작했다.

“만약 세제 저하께서 자랑하시던 그 병기들이 천자국의 위엄에 미치지 못하거나, 상국을 기만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다면…….”

양서화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비틀렸다.

“그때는 대명률의 엄한 법도에 따라, 조선 왕실 전체가 황제 폐하의 진노를 감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 저하의 그 요사스러운 구리 짐승을 보여주시지요.”

수천 명의 군사와 명나라 칙사단의 시선이 일제히 이강의 야윈 어깨를 향해 쏟아졌다. 거대한 덫이 이강의 목덜미를 조여오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양서화의 도발이 임진강의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흐릿하게 퍼져 나갔다.

백관들의 안색은 이미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펄럭이는 건너편의 황색 칙사 어기는 마치 조선의 목을 겨눈 거대한 단두대의 칼날처럼 보였다. 500보 거리의 절벽. 그 험준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강가에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표적만을 맞춘다는 것은 조선의 기존 화포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만약 포탄이 바람을 타고 비껴가 황제의 깃발을 찢기라도 하는 날에는, 사대파들이 기다렸다는 듯 대명률을 들먹이며 세제의 폐위를 주창할 것이 자명했다.

이강은 차가운 강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단단하게 굳은 손잡이를 가리켰다.

“거두어라.”

이강의 나직한 명령에 장인들이 일제히 가죽 끈을 잡아당겼다. 마침내 대포를 덮고 있던 두꺼운 삼베 천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

양서화의 미소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사 태감 역시 들고 있던 비단 부채를 멈춘 채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이전에 존재하던 그 어떤 화포와도 달랐다.

구리로 대충 부어 만든 홍이포의 둔중한 황색도 아니었고, 불순물이 섞여 표면이 울퉁불퉁한 무쇠 화포의 거친 질감도 아니었다. 야철소의 밤을 지새우며 수력 송풍기의 무지막지한 압력과 화성 결정 도료의 초고온을 견뎌낸 백련강 주강포. 그 매끄럽고 유선형으로 잘 빠진 푸르스름한 철골의 동체는 아침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포신 내부에 정밀하게 새겨진 나선형의 강선은 이강의 ‘정밀 설계의 안’이 오차율 0%로 다듬어낸 기하학의 정수였다.

“이것이…… 조선의 화포란 말인가?”

사 태감이 침을 삼키며 흥얼거렸다. 그의 목줄기가 긴장으로 잘게 떨렸다. 대명 천자의 군기처에서도 이토록 매끄럽고 완벽한 대포는 본 적이 없었다. 단조와 주조의 한계를 복합적으로 돌파한 이 괴물 같은 무기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국의 오만함을 짓누르고 있었다.

양서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 기묘한 무기가 실제로 발포되어 건너편 절벽을 박살 낸다면, 조선의 군사적 자립은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된다. 그는 사 태감에게 은밀한 눈빛을 보냈다.

사 태감이 즉각 오만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멈추어라! 조선의 세제여!”

사 태감은 비단 소매를 펄럭이며 이강의 앞을 막아섰다.

“대명률 병률 군기조에 이르기를, 제후국의 모든 신형 무기는 상국의 허가를 득해야 하며, 그 제작 규격과 화약 배합의 비방을 담은 서책을 황제 폐하께 먼저 상소하여 윤허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포의 도면과 화약 정제법을 담은 서책을 지금 즉시 내게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상국에 대한 기만으로 간주하고 사열을 중단시킨 채 너를 경시(京師)로 압송할 것이다!”

사 태감의 목소리에는 탐욕과 위협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조선의 놀라운 제철 기술을 통째로 강탈하겠다는 노골적인 야욕이었다. 만약 도면을 넘겨준다면 조선의 기술 주권은 그 자리에서 상실될 것이고, 거부한다면 대명률을 위반한 대역죄인이 될 터였다.

주변의 신료들이 사색이 되어 이강의 눈치를 살폈다. 양서화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물리적인 무기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상국이 짜놓은 법이라는 거대한 그물망 앞에서는 무력하게 찢길 뿐이라는 비웃음이었다.

그러나 이강은 조용히 사 태감을 응시했다. 그의 동공 속에서 푸른빛의 글자들이 어지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대법전인 경국대전과 명나라의 형법인 대명률의 수만 개 조항이 이강의 머릿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조되어 나갔다.

이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칙사 대감께서는 대명률을 크게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무엇이라?”

사 태감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대명률 병률 제삼조, ‘변방 방비에 관한 특별조항’을 기억하십니까?”

이강이 한 걸음 다가서자, 사 태감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했다. 세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백 때문이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천자국의 북방 및 동방 경계에 인접한 제후국이 야인(野人)과 여진의 침탈을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방어용 병기는 상국의 사전 허가를 면제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적과 대치하는 최전선의 군사 기밀과 화포의 상세 제원을 황제의 친필 어인이 찍힌 공식 칙서 없이 사사로이 유출하는 자는, 군기 누설죄로 다스려 극형에 처한다’고 엄히 규정하고 있지요.”

이강의 목소리가 들판의 찬바람보다 더 시리게 울려 퍼졌다.

“칙사 대감. 대감께서는 지금 황제 폐하의 친필 어인이 찍힌 ‘기술 징발 칙서’를 지니고 계십니까?”

“그, 그것은…….”

사 태감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가 지닌 것은 그저 조선의 군사 동향을 감시하라는 일반적인 칙서일 뿐, 특정 기술을 강탈할 수 있는 어인 칙서가 아니었다.

“만약 공식 칙서 없이 제가 이 화포의 도면과 화약 비방을 대감께 넘겨준다면, 저는 대명률을 위반한 군기 누설죄로 처벌받을 것이고, 대감 역시 황제의 권한을 사사로이 참칭하여 군기 비밀을 사취하려 한 죄로 대명률 형률에 따라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정녕 그리되기를 원하십니까?”

“이, 이놈이……!”

사 태감은 숨을 헐떡이며 양서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양서화 역시 이강이 들이민 정확한 법조문의 칼날 앞에 선뜻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을 지그시 깨물었다. 성리학적 명분과 사대주의의 틀 안에서 자신들이 휘두르던 법전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죄는 가장 날카로운 올가미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강은 그들의 침묵을 비웃듯 몸을 돌려 화포 뒤로 섰다. 그의 눈앞에서 ‘정밀 설계의 안’이 강 건너 절벽의 표적판과 황제의 어기 사이의 정밀한 거리를 재조정했다.

[목표 거리: 520야드] [풍향: 북서풍 4.2m/s] [탄도 보정 오차: 0.01%] [주강포 강선 회전수 계산 완료]

철화장 박기현이 침을 삼키며 타오르는 화선을 대포의 화구 근처로 가져갔다.

“저하, 쏘겠사옵니다.”

이강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발포하라.”

콰아아아아앙!

임진강 전체가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뒤흔들렸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고, 강가의 물안개가 단숨에 찢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력 기어로 단단히 맞물린 백련강 주강포의 포구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화염은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을 그리며 강을 가로질렀다. 초고온에서 완벽하게 정제된 염초와 황동 분말이 만들어 낸 폭발력은 기존 화포의 서너 배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기동 에너지를 탄환에 실어 보냈다.

쉬이이이이익!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판을 가득 채웠다.

양서화와 사 태감은 귀를 틀어막은 채 굳어버렸다. 그들의 시선은 강 건너 절벽으로 향했다.

과연 그 완벽한 탄도는 황제의 어기를 비껴갈 것인가, 아니면 어기를 찢어발겨 조선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인가.

찰나의 순간, 강 건너 절벽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해일처럼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앙!

절벽의 단단한 암반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거대한 바위 파편들이 강물 속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자욱한 먼지가 바람에 걷히며 마침내 그 결과가 백관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아……!”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 건너편, 황제의 노란색 어기는 단 한 올의 실밥도 상하지 않은 채 아침 바람에 평온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기에서 정확히 반 보(步)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목제 표적판은 형체도 없이 완전히 기화되어 사라져 있었다. 500보가 넘는 거리에서 불어오는 변칙적인 강바람을 뚫고, 오직 표적만을 정확하게 소멸시킨 신기(神技)에 가까운 정밀함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격이 아니었다.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황제의 어기를 찢어발길 수도, 혹은 상국의 사신단의 머리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조선의 차가운 경고였다.

사 태감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강의 눈빛에 서린 잔인하고도 명징한 수치적 확신을 보았다. 이강에게 무기는 우연에 기대는 요행이 아니라, 완벽하게 통제된 물리적 필연이었다.

양서화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자신의 정교한 계책이 이강의 압도적인 무력과 빈틈없는 법리적 방벽 앞에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강이 천천히 사 태감과 양서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칙사 대감, 그리고 양 판서.”

이강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철저한 계산과 승리자의 여유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조선의 화력이 상국의 안녕을 지키기에 충분해 보입니까?”

사 태감은 감히 대답하지 못한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움켜쥐었다. 양서화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 이강의 시선을 피했다. 임진강의 찬바람 속에서, 대명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고 조선을 집어삼키려던 그들의 야욕은 조선 최초의 주강포가 뿜어낸 포성에 완전히 압도당해 있었다.

바로 그때, 한양 조정에서 급히 파견된 전령이 말을 몰아 들판으로 달려 들어왔다. 전령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이강의 앞에 엎드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하! 대궐에서 긴급한 전갈이옵니다! 주상 전하께서……!”

전령의 떨리는 목소리가 임진강의 침묵을 깨뜨렸다. 이강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거대한 폭풍이, 궁궐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금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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