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궁—!
종말의 파괴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진 자리.
원래대로라면 ‘서비스 종료’라는 무자비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모든 세계가 암전되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개똥망겜을 10년 동안 씹고 뜯고 맛본 초고인물. 세계가 정지하기 직전의 그 찰나의 랙(Lag)을 타서, 당신은 시스템의 가장 깊숙한 심장부로 침투했다.
파괴신을 잡고 터져 나온 막대한 인과율의 데이터. 그리고 당신이 가진 모든 버그성 히든 스태츠가 기묘하게 얽혀 들어가기 시작한다.
[경고: 메인 프레임 소스 코드 오버플로우 발생!] [경고: 플레이어 ‘서지한’의 영혼 데이터가 시스템 코어와 압착 융합됩니다.] [권한 이양 중... 1%... 50%... 100%]
스르륵.
눈앞을 가로막던 붉은 파멸의 하늘이 걷힌다. 그곳에 나타난 것은 끝없는 우주의 심연, 그리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개발자용 시스템 패널이었다.
이름하여, 총괄 메인 디렉터의 콘솔.
낙제생 서지한이 마침내 도달한, 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최종 전직이었다.
[★ 월드 관리자(GM) 프로필 ★] | 항목 | 상세 정보 | | :--- | :--- | | **고유 ID** | Administrator_JIHAN | | **직급** | 총괄 메인 디렉터 (GOD) | | **고유 권한** | 월드 맵 실시간 편집, 드랍률 조정, 밸런스 패치, 유저 밴(Ban) | | **세계선 상태** | 서비스 종료 철회 -> '시즌 2' 영구 지속 |
“드디어 내 마음대로 패치 노트를 쓸 수 있겠군.”
당신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동안 개발진의 강박적인 ‘억까’ 패턴과 0.0001%의 극악무어한 가챠 확률에 고통받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당신이 그 판을 짜는 판사요, 룰러(Ruler)이며, 유일신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이 똥망겜의 더러운 발란스를 뜯어고치는 것.
타닥, 타다닥!
우주 공간에 투명한 가상 키보드가 나타나고, 당신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인다.
[시스템 공지: 2.00 라이브 패치 노트를 적용합니다.] - 귀족 가문 특화 캐릭터들의 성능 및 콧대 50% 너프. - 아카데미 학식당 ‘고기 반찬’ 비율 300% 상향 (치킨무 무한 리필 추가). - 필드 몬스터의 아이템 드랍률을 ‘유저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상화. - 최종 보스(파괴신)의 리스폰 주기를 9999년으로 조정 (사실상 은퇴).
“게임은 자고로 유저가 행복해야 갓겜인 법이지.”
개운하다. 이보다 더 상쾌한 사이다가 없다.
그 시각, 지상에 남아 수수께끼의 대격변을 목격한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하늘에... 점검 공지가 떴어?!” “서버 종료가 아니야! 대규모 업데이트라고?!”
그들은 모를 것이다. 자신들이 발 디딘 이 세계가, 한때 낙제생이라 불리던 고인물의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당신은 차원 너머의 왕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세계의 규칙을 쥐 흔드는 전지전능한 개발자이자 관리자로서의 삶. 지루할 틈 따윈 없을 것이다.
당신의 검은색 디렉터 코트가 허공에 휘날린다. 이제, 당신의 입맛대로 리부트된 새로운 시즌의 막이 오르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