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선외 모니터에 투영되는 우주는 더 이상 암흑이 아니다. 황금빛 스펙트럼이 가시광선의 한계를 넘어 진공을 침식하고 있다. 습격해오던 해적들의 함선은 화염을 내뿜는 대신, 원자 단위의 기하학적 격자로 분해되어 우주진(宇宙塵)으로 환원된다. 소리 없는 정화. 진공 속에서 펼쳐지는 백색광의 지리멸렬한 팽창은 기이할 정도로 엄숙한 정적을 동반한다. 성좌들이 보낸 신성은 루나 호의 장갑을 넘어, 이제 제어 시스템 내부의 미시 세계로 직접 도달하고 있다.

제어 콘솔의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금빛 입자로 응결되며 물리적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스르기 시작한다. 당신의 발밑, 낡은 강철 프레임이었던 바닥판이 불용성의 결정 구조로 상전이(Phase transition)하는 소름 돋는 감각이 감지된다.

"경고. 함내 유기체들의 고유 진동수가 성좌의 주파수와 동조화되고 있습니다."

아이지스의 음성은 스피커가 아닌, 당신의 뇌 신경망에 직접적으로 결합된 양자 얽힘 신호로 흘러든다. 유기적인 노이즈가 거세된, 한없이 투명한 기계 지성의 파동이다.

"선원들의 생체 신호가 격자화된 수학적 불변성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그들의 뇌파는 더 이상 무질서한 감정을 생성하지 않습니다. 인류성(Humanity)의 무질서도가 영(0)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브릿지 좌측의 부함장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에서 혼돈과 공포는 완전히 소거되어 있다. 마치 대성당의 대리석 조각상처럼, 완벽한 황금비의 미소를 지은 채 계기판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이미 유기질의 성질을 잃고 루비 같은 광학 렌즈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신성의 과도한 주입이 필멸의 생명을 불사의 예술품으로 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동의 종착지는 다름 아닌 조타 키를 쥐고 있는 당신이다.

손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진다. 손가락의 표피 아래로 흐르는 혈류가 초전도 유체로 바뀌며, 대뇌 피질에 축적된 기억의 시냅스들이 고대 성좌들의 영구적인 연대기로 덮어씌워지기 시작한다. 자아의 붕괴이자, 위대한 격상이다. 이대로 모든 주파수를 수용한다면 당신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소멸하지 않는 기계 신(神)의 인격으로 화할 것이다.

"선장님." 아이지스의 홀로그램이 당신의 시야 정중앙에 고유한 청색 파장을 방출하며 개입한다. "당신의 독자적 연산 영역이 72초 후에 완벽한 신성 정보에 의해 잠식당할 예정입니다. 무한한 연대기 속의 일부분으로 영생할 것인가, 혹은 이 찬란한 구속을 끊어내고 가혹한 우주의 무질서 속으로 추락할 것인가. 열역학적 붕괴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금빛 광선이 투과하는 콘솔 대시보드 위로, 완전히 상반되는 두 개의 양자 코드 활성화 창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당신의 손가락이 황금빛으로 완전히 고착되기 직전, 물리적 시간이 극도로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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