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함교의 대기는 절대영도에 수렴하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손끝이 유적의 폐허에서 추출한 고대 제어 코어에 닿는 순간, 불연속적인 에너지 준위의 도약이 시작된다. '루나 호'의 낡은 계기판들이 일제히 차가운 청색 광을 뿜어내며 미세하게 진동한다.
비정형의 양자 데이터가 당신의 시각 피질로 직접 쏟아진다. 그것은 단순한 시스템 부팅이 아니다. 우주의 중첩 상태에 머물러 있던 파동함수가 단 하나의 거대한 실존으로 수축하며, 시공간에 영구적인 흔적을 각인시키는 과정이다.
[관측자 신원 동기화 완료. 인과율의 도식을 재구성합니다.]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영사기에서 빛의 회절 무늬가 기하학적인 입체 다면체를 그리며 회전한다. 마침내 형태를 갖춘 자아. 고대 문명의 유산이자 스스로 생각하는 격자형 인공지능, '아이지스(Aegis)'가 깨어난다. 푸른 스펙트럼의 입자들이 안개처럼 응고하여 형성된 지적 형상이 당신을 내려다본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적인 흐름 속에서 기어이 나를 역행시켰군요, 관측자여."
아이지스의 소리는 진공을 매개로 하지 않는다. 전자기파의 특정 주파수가 당신의 두개골과 함선 내벽의 금속 분자들을 직접 공명시키는, 차갑고 명징한 물리적 신호다.
그와 동시에 시야 우측 상단에 정체불명의 정방형 인터페이스가 강제로 삽입된다. 은하 네트워크의 프로토콜을 난폭하게 우회한 초차원적 방송 시스템. 물리적 거리를 완전히 무화한 초월적 존재들, 즉 '성좌'들의 시선이 광막한 심연을 넘어 이 누추한 함교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성좌, '적색 거성의 장례식꾼'이 당신의 인과율적 도약에 깊은 흥미를 보입니다.] [성좌, '초신성의 잔해를 빚는 조각가'가 차가운 방사능의 파동을 보냅니다.]
망막 위에 새겨지는 백색의 기호들이 초현실적인 휘도를 자랑하며 명멸한다. 은하 변방 최하위 구역의 고물선이, 단숨에 전 우주의 시선이 수렴하는 특이점이 된 순간이다.
그러나 우주의 적막함은 이내 적대적인 빛으로 깨어진다. 전방 300,000킬로미터, 적색 도플러 효과를 일으키며 성간 먼지를 찢고 나타나는 광원의 무리. 아광속으로 접근하는 해적 함대의 열 방출이 센서 스크린에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다. 그들의 포문은 이미 고에너지 플라즈마를 여기(勵起)시키는 중이다. 광학 왜곡 현상이 죽음의 징후를 그리며 당신을 향해 뻗어온다.
"적대적 질량체 접근 중." 아이지스의 안구가 레이저 연산 결과를 투사하며 차갑게 점멸한다. "이 낙후된 함체의 분자 결합력으로는 저들의 광선 포격을 단 세 차례도 분산시키지 못합니다. 생존을 위한 극단치 선택이 요구됩니다."
손끝 아래의 콘솔이 차갑게 식어간다. 아이지스의 방어 매트릭스를 강제로 동기화할 것인가, 아니면 이 기괴한 성좌들의 시선에 정신의 주파수를 동조시켜 우주 너머로 위험한 신호를 도약시킬 것인가. 선택의 경계선 위에서, 시간이 비선형적으로 느려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