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뼛속 깊이 스며듭니다. 이곳의 시간은 빛이 아니라 어둠의 농도로 흐릅니다. 하루에 단 한 번, 머리 위의 작은 철창 틈새로 비스듬히 비쳐드는 광선만이 당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인지하게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그 빛마저도 차갑고 푸르스름한 회색빛이어서 온기를 주지 못합니다.
재판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끝났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매달렸던 진실의 끈, 강 형사의 숨통을 조이려 했던 마지막 안간힘은 거대한 침묵 속으로 매몰되었습니다. 법정이라는 차가운 극장 속에서, 시스템은 진실보다 거부감 없는 '완벽한 결말'을 필요로 했습니다. 강 형사의 잘 짜인 각본 위에서 당신의 잘려 나간 기억들은 완벽한 범행의 증거로 둔갑했습니다. 당신의 침묵은 반성 없는 오만함으로, 당신의 지워진 기억은 죄책감으로 인한 외상성 해리로 해석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당신에게 매겨진 값어치는 평생을 이 조그만 콘크리트 상자 안에서 썩어가야 하는 무기징역의 수인 번호였습니다.
"이것으로 도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연쇄살인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교도관들이 지키는 복도 너머, 낡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강 형사의 목소리는 영웅의 그것입니다. 화면 속 그의 얼굴은 스튜디오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 새로 달린 훈장이 카메라 불빛을 반사해 당신의 어두운 눈동자를 찌릅니다. 그는 모든 영광을 거머쥐었고, 당신은 도시에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바쳐진 가장 완벽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갈라진 손바닥을 내려다봅니다. 짓무른 손톱 밑과 지워지지 않는 모호한 기억의 얼룩들.
'내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믿음이 유일한 온기였습니다. 그러나 사방이 막힌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은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 됩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하얀 머릿속은, 점차 강 형사가 덧칠해 놓은 붉은 진실로 오염되어 갑니다. 정말 내가 죽인 것은 아닐까. 내 안의 숨겨진 살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떴던 것은 아닐까.
객관적인 사실로 포장된 거짓과 주관적인 혼란이 뒤엉켜 마침내 괴물을 완성해 냅니다. 기억이 사라진 빈자리에 들어앉은 것은, 타인이 정교하게 조각한 나 자신의 가짜 얼굴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가리키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내가 진짜 나인지 이제는 분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흐릿해지는 감각 속에서, 당신은 천천히 시멘트 벽에 머리를 기댑니다. 벽면의 서늘한 촉감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와 머릿속의 마지막 불씨를 꺼트립니다. 구원을 바라던 눈동자는 서서히 초점을 잃고, 영원히 걷히지 않을 짙은 안개 속으로 완전히 잠겨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