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음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갑습니다. 격렬한 어전회의의 잔향이 궐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당신이 왕에게 은밀히 바쳤던 '천하도(天下圖)'의 복사본이 결국 사간원의 첩보망에 걸려 대신들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즉시 연명 상소를 올리며 거세게 명륜당과 대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헌부 장령 등이 아뢰기를, '국조의 제도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대의를 따르고 있거늘, 서자 주(珠)가 요해(妖害)로운 외국의 도설을 받들어 황조(明)의 판도를 부정하고 백성을 미혹하니, 이는 곧 종묘사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사설이며 이단의 학설입니다. 청컨대 주를 즉시 의금부로 압송하여 사학(邪學)의 싹을 자르소서.'」* — 『승정원일기』 을축년 윤칠월조
성리학적 우주관을 흔든 이 지도는 사대부들에게 단순한 지리학적 가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나라를 향한 사대(事大)의 예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외교적 미궁에 빠뜨릴 반역의 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승정원 사관들이 연일 당신의 거처인 협경당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조선의 거시적 재정 판도는 이미 한계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북방 육진 개척과 군민 이주 사업으로 인해 평안도와 함길도의 군역 부담은 매년 국가 수입의 4할을 상회하고 있으며, 조총의 전신이 될 화기의 주재료인 초석 납품량은 명나라의 통제로 인해 전년 대비 30% 급감했습니다. 은을 정련하는 단천의 야금술은 아직 광석 100근당 은 2냥조차 건지지 못할 만큼 낙후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난한 조정의 현실 속에서, 사대부들은 당신이 주장하는 대양 항해선 건조 비용—척당 최소 5천 냥에 달하는 전함급 함대 구축—을 용납할 수 없는 재정적 재앙으로 규정했습니다.
"대군의 작호조차 받지 못한 서봉(庶封)께서, 어찌 이토록 대담하게 국론을 흔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찾아온 사헌부 지평의 목소리에는 뼈가 서려 있습니다. 그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탁자 위의 찻잔만을 가만히 응시하며 나직하게 말합니다.
"지도가 가리키는 저 바다 너머에 황금이 흐른다 한들, 조정의 법도가 무너지면 왕실조차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실의 방계가 지녀야 할 마땅한 미덕은 오직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침묵뿐입니다."
직설적인 겁박 대신 대의명분을 앞세운, 전형적인 조정 사대부들의 가시 돋친 언사입니다.
세종대왕 역시 대신들의 연대 상소 앞에서는 독단적으로 힘을 싣기 어렵습니다. 학문적 정당성을 잃은 왕권은 신권의 도전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대부들의 칼날이 당신의 목전에 이른 지금, 정국의 포위망을 뚫고 실질적인 동력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깊어가는 궁궐의 밤 속에서 결단의 순간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