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53도, 천문학적인 빙산의 위용과 오호츠크해의 저기압이 맞물린 해역에서 조선의 대함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설계하고 야심 차게 띄웠던 배수량 280톤급의 함선 '정원호(鼎遠號)'는 삼단 가로돛의 지주목이 45m/s에 달하는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하는 파열음을 내뿜습니다. 당대 최고 수준의 침엽수 가공 기술과 석회-황토 혼합 도료를 통한 조개 방지 설계도, 극지의 동결 현상으로 인한 선체의 급격한 인장강도 저하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좌현에서 거대한 유빙이 선체를 강타하자, 18인치 두께의 변재(邊材)가 단숨에 함몰되며 분당 4,000갤런에 달하는 차가운 해수가 선저로 밀려듭니다. 당신이 이룩한 미시적 기술 혁신의 결정체였던 수동식 양수 펌프는 시시각각 차오르는 염수와 결빙된 얼음 조각들에 축이 어긋나며 구동 능력을 상실합니다.
"키가 듣지 않습니다! 용골이... 용골이 쪼개졌습니다!"
항해사의 절망적인 침묵 속에서, 당신은 품속에 단단히 봉인해 두었던 가죽 주머니를 움켜잡습니다. 그 안에는 유라시아 대륙 동단을 지나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상세한 해로와 위도별 편각, 그리고 금광과 고무 산지의 위치가 정밀하게 작도된 단 하나의 '동방해도(東方海圖)'가 들어 있습니다. 세종의 암묵적 지지와 집현전 학사들의 수치 계산을 바탕으로 완성된, 조선의 백 년 대계를 바꿀 유일한 열쇠입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암초군이 몰아치는 성난 파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저 지형을 탐지하기 위해 선두에 세웠던 탐사선 '귀선(歸船)'은 이미 침몰하여 잔해만이 표류하고 있으며, 본선 역시 통제력을 잃고 조류의 흐름을 따라 좌초의 길로 내달립니다.
***
**[조선왕조실록 세종 32년(1450) 6월 정축 기사]**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영종군(永宗君)이 무리를 모아 먼바다로 나간 지 여러 해가 지났으나 소식이 없고, 도적과 낭인들이 그 이름을 빌려 바닷가 백성들을 혹하게 하니 이를 엄금하소서’ 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진(振)은 본디 허황된 일을 좋아하여 바다 너머에 또 다른 천지가 있다고 하더니, 필시 풍랑에 빠져 죽었을 것이다. 다시는 조정에서 그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 하였다.”*
**[1894년 주조선 프랑스 공사관의 해군 무관 콜랭의 비망록]** *“조선 전역에는 동쪽 끝 차가운 바다 너머에 숨겨진 황금의 나라가 있으며, 한 서자 왕자가 황금 지도를 품고 그곳으로 향하다 가라앉았다는 기묘한 구전 민요가 존재한다. 물론 이는 가혹한 부역에 시달리던 하층민들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도피성 유랑 전설에 불과하다.”*
***
차가운 해수가 당신의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옵니다. 사방을 집어삼키는 어두운 심해의 수압 속에서, 마침내 당신의 시야를 가득 채우던 신세계의 장엄한 윤곽이 흐릿하게 흩어집니다.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다듬었던 구리 항해의와 육분의는 차가운 개펄 깊숙이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젖어 든 가죽 주머니 속의 지도는 깊은 바다의 수압을 이기지 못한 채 펄 속으로 영원히 매몰됩니다. 동방의 대양을 지배하고 세계의 판도를 뒤흔들려 했던 조선의 대항해 시대는, 그렇게 차가운 심해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영원히 풀리지 않는 해양 전설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