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이이—!
날카로운 경고음이 응급실(ER)의 소란을 무겁게 짓누른다.
"추락 환자 들어옵니다! 3미터 높이에서 추락! 복부 둔상(Abdominal blunt trauma) 의심!"
119 구급대원들의 거친 호흡과 함께 베드가 응급실 안쪽으로 밀려든다. 환자는 40대 남성. 의식은 Semi-comatose(반혼수) 상태. 안색은 이미 점토처럼 회백색으로 변해 있다.
"HR 145, BP 72/40, SpO2 86%! 산소 마스크 풀로 키세요!"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에 당신의 손끝이 잘게 떨린다. 실력 부족으로 내쫓기기 직전의 3년 차 레지던트. 주위의 멸시 어린 시선이 뒤통수에 따갑게 박힌다. 이 시간에 응급실을 지키는 외과 의사는 오직 당신뿐이다. 치프는 응급 수술방에 들어갔고, 교수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강현우 선생! 뭐 해요? 어서 FAST(응급 초음파) 대봐요!"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초음파 프로브를 잡고 환자의 명치 아래를 짚는다. 화면에 비친 어두운 자유 액체 저류 공간. 웅덩이처럼 고이고 있는 검은 액체.
Hemoperitoneum(복강내출혈).
피가 복강 내로 쏟아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이대로 두면 10분 이내에 Hypovolemic shock(저혈량성 쇼크)로 인한 Cardiac arrest(심정지)가 올 터였다. 당장 개복하여 지혈해야 하지만, 어디를 째고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한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복벽을 열었다간, 사방으로 분출하는 혈액 너머로 길을 잃고 테이블 데스(Table death)를 맞이할 것이 뻔했다.
'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한 걸음 물러서려던 그 순간, 당신의 시야가 강렬한 파란색 빛으로 번쩍인다.
[시스템 동기화 완료: 메디컬 패스파인더(Medical Pathfinder)를 가동합니다.] [환자: 김진수 (M/42)] [진단: Traumatic Splenic Rupture (외상성 비장 파열) Grade IV. Active bleeding checkpoint: Splenic artery posterior branch (비동맥 후지).] [바이탈 사인: BP 64/38, HR 148, Temp 35.6℃]
망막 위에 선명하게 박히는 파란색 반투명 홀로그램. 환자의 피로 얼룩진 환부 위로 정밀한 3차원 입체 그래픽이 겹치기 시작한다. 갈비뼈 안쪽, 파열되어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는 비장의 혈관 구조가 투명하게 비친다. 그리고 그 혈관들을 잇는 최적의 절개선이 파란색 실선으로 뿜어져 나온다.
[Guide Line: Left subcostal incision (좌측 늑골하 절개) 경로 표시.] [적정 절개 깊이: 3.2cm. 회피 영역: Left Gastric Artery (좌위동맥) 변이 분지.]
해부학적 구조를 관통하는 가장 정밀하고 빠른 수술 경로. 그것은 기계적이고 차가운 절대적 진실의 형태로 당신의 시야를 지배한다.
"선생님! BP 60 깨집니다! 승압제 걸까요? 어떡합니까!"
간호사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온다.
눈앞의 파란 가이드는 지시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이 선을 따라 메스를 대고 들어가 혈관을 클램프(Clamp)로 차단하라고. 하지만 이것은 당신이 배워온 교과서적인 접근법과는 사뭇 다른, 극단적으로 과감한 우회 경로다. 현존하는 의학적 상식 밖의 시스템 가이드. 과연 이 파란 선을 온전히 믿어도 되는 것인가.
당신은 가이드라인과 붉게 박동하는 환자의 복부를 번갈아 내려다보며, 차갑게 식어가는 메스를 움켜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