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이 회차는 아직 그래픽 노블 장면이 제작되지 않아 일반 노블로 보여드려요.

수술방 문 앞에서 도현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손가락 세 개가 제멋대로 떨렸다. 대동맥 박리를 읽어낸 대가가 아직 손끝에 눌어붙어 있었다. 이 상태로 윤재경의 어시스트를 서면, 첫날부터 밑천이 드러난다.

"인턴 서도현."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고 평평했다. 화를 내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목소리. 도현은 그 음색을 안다. 회귀 전, 자신을 매장하는 서류에 서명하던 그날의 목소리와 같았다.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손이.

그때 복도 저편에서 카트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굴렀다.

"비켜요! 3번 베드 환자 상태 이상해요!"

간호사가 소리쳤다. 도현의 몸이 먼저 돌았다. 수술방 문이 절반쯤 열린 채 남았고, 윤재경의 시선이 등에 꽂히는 감각이 있었지만, 도현의 다리는 이미 응급센터 쪽으로 뛰고 있었다.

3번 베드. 오전에 도현이 스치듯 봤던 환자였다. 마흔 초반 남자, 우측 하복부 통증으로 내원. 차트에는 이미 '단순 위장염, 경과 관찰'이라 적혀 있었다. 담당은 2년 차 레지던트 정한석. 카르텔이 밀어주는 라인이었다.

"혈압 80에 50, 자꾸 떨어져요. 열 39도."

"복막 자극 징후 없다고 아침에 확인했는데."

정한석이 뒷짐을 진 채 태평하게 말했다.

"위장염이라니까. 수액 더 달아."

도현은 환자의 얼굴을 봤다. 입술이 회색이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위장염 환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건 몸속 어딘가에서 이미 곪은 것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이다.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도현은 장갑을 벗었다.

"뭐 해, 인턴?"

정한석의 물음을 무시하고, 도현은 맨손을 환자의 배 위에 올렸다.

순간, 오른쪽 아랫배에서 불덩이가 솟구쳤다. 칼로 쑤셔대는 듯한 통증이 도현의 하복부를 관통했다. 파열이었다. 이미 터졌다. 충수가 진작 곪아 터져 고름이 복강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통증의 형태가 배 전체로 퍼지는 그물처럼 뻗어나갔다.

천공성 충수염. 범발성 복막염 진행.

위장염이 아니었다. 아침에 이미 곪고 있던 걸 '경과 관찰'로 덮은 것이다. 그리고 이 오진에 서명한 건 정한석 위의 누군가—카르텔 라인의 결재였다.

"천공입니다."

도현이 손을 떼며 말했다. 배 속에 남은 불덩이가 여전히 화끈거렸다.

"충수 터졌어요. 복막염 진행 중. 지금 안 열면 패혈성 쇼크로 갑니다."

정한석의 표정이 굳었다.

"인턴이 뭘 안다고. 아침 CT에서 충수 정상이었어."

"CT 언제 찍었는데요."

"…여섯 시간 전."

"여섯 시간 사이에 터졌습니다. 지금 다시 초음파 보세요. 프리 에어 나와요."

정한석이 도현을 노려봤다. 여기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도현은 이미 한 번 살아봤기에 안다. 인턴이 레지던트의 판단을 뒤집으면, 그 인턴은 '건방진 놈'으로 낙인찍힌다. 침묵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침대 위 남자의 회색 입술이 도현의 계산을 지워버렸다.

"환자 죽습니다. 지금."

도현은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몸을 돌렸다.

"복부 초음파 프로브 주세요. 그리고 외과 당직 콜, 응급 개복 준비. 항생제 광범위로 지금 당장."

"야, 너 지금—"

"정 선생님이 안 하시면 제가 이름 걸고 콜 하겠습니다. 나중에 사망 케이스 나오면 차트에 '경과 관찰' 지시한 사람 이름 남습니다. 저 위장염 처방, 누구 결재 받았어요?"

정한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결재. 그 단어에 그가 멈칫했다. 오진의 사슬이 자기 위로 이어져 있다는 걸 그도 아는 것이다.

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찾는 손은 하나뿐이었다.

"한지우 선생. 어디 있어요."

---

한지우는 스테이션에서 커피를 마시다 도현의 부름에 눈살을 찌푸렸다.

"나 응급 콜 아닌데."

"지금부터 응급 콜이에요."

도현은 지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충수 천공, 복막염. 개복 어시스트 필요해요. 정 선생은 판단 못 내리고, 외과 당직은 지금 7층 수술 들어가서 못 나와요. 선생이 손 빠르잖아요."

"내가 손 빠른 거 어떻게—"

지우가 멈칫했다. 인턴 첫날인 놈이 자기 손 놀림을 안다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도현은 이미 지우를 끌고 처치실 쪽으로 걷고 있었다.

"선생, 여기서 이 환자 죽으면 담당은 정 선생이지만, 어시스트 콜 씹은 사람도 같이 조사받아요. 나랑 같이 살리면 선생은 판단 잘한 게 되고, 도망가면 방관한 게 돼요. 선택하세요."

지우의 발이 멈췄다.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봤다. 지우의 얼굴에 스치는 것을. 그건 화가 아니었다. 화라면 차라리 나았다. 지우의 눈에 어린 건, 상대가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손'으로 취급했을 때의 그 표정이었다. 도현은 지우를 설득한 게 아니라 몰아붙였고, 지우도 그걸 알았다.

"…넌 나한테 살리자고 말한 게 아니라, 협박한 거야."

지우가 조용히 말했다.

"뭐?"

"됐어. 환자부터."

지우가 도현을 지나쳐 처치실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에서 도현은 낯익은 서늘함을 느꼈다. 회귀 전, 지우가 심사위원회 앞에서 자신에게 등을 돌리던 그 날의 서늘함. 도현은 그때 왜 지우가 그랬는지 끝까지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다만 방금 자기 손끝이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감각만 배 속의 통증처럼 남았다.

지금은 환자다. 도현은 그 감각을 밀어냈다.

---

개복은 지옥이었다.

배를 열자 고름이 쏟아졌다. 예상보다 더 번져 있었다. 충수는 뿌리부터 터져 형체를 잃었고, 복강 전체가 오염되어 있었다.

"진작 열었어야 했는데."

지우가 이를 악물며 세척을 시작했다. 손이 정확하고 빨랐다. 도현이 기억하는 그 손이었다.

"석션. 여기, 더."

도현은 지우가 부르는 대로 움직였다. 인턴이 할 수 있는 건 보조뿐이었지만, 도현의 눈은 지우보다 앞서 다음을 봤다. 오른쪽 결장 뒤편, 세척 뒤에도 남을 농양 포켓. 회귀 전 수천 번 열어본 배였다.

"선생, 우결장 후면에 포켓 하나 더 있어요. 안 훑으면 재수술 와요."

지우의 손이 멈췄다. 도현을 한 번 봤다. 그리고 그 자리를 확인했다. 정말로 고름 주머니가 숨어 있었다.

"…너 인턴 맞아?"

"세척 마저 하시죠."

두 시간 뒤, 배를 닫았다. 남자는 살았다. 혈압이 돌아왔고, 산소포화도가 정상으로 올라왔다. 도현의 하복부에 남은 통증도 그제야 조금씩 식었다. 손 떨림이 다시 도졌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수술방을 나오며 도현은 잠시 벽에 손을 짚었다. 오늘 두 번째 진단이었다. 몸속에서 두 개의 통증이 겹쳐 웅웅거렸다. 대동맥의 찢기는 감각과 복강을 태우는 감각이. 이걸 하루에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을까. 계산해야 한다. 아껴야 한다.

그때 정한석이 다가왔다. 얼굴색이 돌아와 있었다.

"환자 잘 넘겼다. 수고했어."

말은 부드러웠다.

"케이스 정리는 내가 할게. 담당의니까. 인턴은 회복실 바이탈이나 체크하고."

도현은 그를 봤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았다. 이 케이스는 이제 정한석의 것이 된다. '위장염 오진을 조기에 발견해 개복 결정을 내린 담당의 정한석.' 차트는 그렇게 쓰일 것이다. 도현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오전에 '경과 관찰'이라 쓴 그 결재 라인도, 사라진 여섯 시간도, 전부 매끄럽게 봉합될 것이다.

살렸는데. 죽어가던 사람을 내가 열었는데.

도현은 웃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겪었으니까.

"그러세요."

돌아서는 도현의 등 뒤로 정한석이 덧붙였다.

"어, 그리고. 아까 그 협박조 말투. 다음엔 조심해. 첫날부터 튀면 안 좋아."

이곳의 규칙이었다. 실력이 아니라 서열. 진실이 아니라 방어. 도현이 두 번째 삶에서 이기려면 부숴야 할 벽. 그 벽이 지금 정한석의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

회복실 앞 복도에서 여자가 도현을 붙잡았다. 환자의 아내였다. 눈이 붉었다.

"선생님이… 우리 남편 열자고 하셨다면서요."

"저는 인턴이라, 결정은—"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인턴 선생님이 없었으면 그냥 위장염으로 두고 계셨을 거라고."

여자가 도현의 두 손을 잡았다. 떨리는 그 오른손을. 여자의 손은 거칠고 따뜻했다.

"애가 둘이에요. 큰애가 아직 초등학생이고… 남편 없으면 우리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까 진짜…"

여자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흔들렸다.

도현은 자기 손이 잡힌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능력으로 읽어낸 그 어떤 통증보다, 이 손의 온기가 몸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회귀 전 마지막 몇 년간, 도현은 환자를 살리는 걸 카르텔과 싸우는 무기로만 여겼다. 명예로, 실적으로, 지렛대로. 사람으로 본 적이 언제였더라.

"…살아서 다행입니다."

간신히 그 말이 나왔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도현 자신이 놀랐다.

"애들한테 아빠, 데려다주세요."

여자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회복실로 들어갔다. 도현은 붙잡혔던 손을 내려다봤다. 떨림이 조금 잦아들어 있었다.

계산하려 했는데. 능력을 아껴 쓰고, 판을 짜고, 이기려 했는데. 방금 그 손 앞에서 도현의 계산은 잠시 무너졌다. 이래서 위험한 거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보면, 손이 먼저 나가버리니까. 그 습관이 회귀 전 자신을 고립시켰으니까.

도현은 눈을 감았다 떴다.

---

스테이션으로 돌아오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간호사 둘이 도현을 흘끔거렸고, 인턴 동기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야, 너 무슨 일 있었어?"

"뭐가."

"위에서 네 이름 돌아. 흉부외과 쪽에서."

도현의 손끝이 굳었다.

"오전에 대동맥 박리 진단한 인턴이 누구냐고, 오후에 충수 천공 잡아낸 것도 같은 애냐고. 심사위원회에서 물었대."

심사위원회.

12층. 인사와 징계와 언론 대응이 결정되는 밀실. 회귀 전 도현을 매장한 그 방이 벌써 도현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첫날에. 계산보다 빨랐다. 튀면 안 된다는 정한석의 경고가 옳았다. 도현은 오늘 너무 많이 튀었다.

"어떤 인턴은 첫날부터 이름 팔아서 좋겠다."

동기가 부러운 듯, 두려운 듯 웃었다. 도현은 웃지 못했다. 이 병원에서 심사위원회가 이름을 안다는 건 축복이 아니었다. 표적이 됐다는 뜻이었다.

그때 스테이션 전화가 울렸다. 간호사가 받았다.

"네, 응급센터… 네? …아, 네. 인턴 서도현 선생, 여기 있습니다."

간호사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도현을 봤다.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서 선생님. 12층에서요."

도현은 수화기를 받았다. 차가운 플라스틱이 귀에 닿았다.

"서도현입니다."

"인턴 서도현 선생 맞으시죠."

건조한 여자 목소리. 심사위원회 비서였다.

"오늘 중으로 12층 회의실로 올라와 주세요. 윤재경 과장님이 직접 뵙자고 하십니다."

수화기 너머로 딸깍, 통화가 끊겼다. 도현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오전에 수술방 문 앞에서 등을 돌린 자신을, 윤재경은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두 건. 두 건의 진단이 전부 그의 귀에 들어갔다.

옆에서 지우가 조용히 물었다.

"누구야."

"…윤재경 과장."

지우의 손에서 커피 컵이 멈췄다.

"직접 보재."

지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회귀 전의 도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12층에 올라간 인턴 중에, 멀쩡히 내려온 사람은 없었다.

도현은 떨리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뗐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