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먼저 도착했다. 위장 출혈 특유의 쇳내, 그 아래 깔린 케톤의 단내. 침상 위 남자는 서른 언저리였고, 혈압 모니터의 숫자는 팔십에서 더 떨어질 곳을 찾고 있었다.
"쇼크 진행 중, 원인 불명."
윤재경이 차트를 던지듯 트레이에 올렸다. 목소리에 힘줄 하나 서지 않았다. 그게 이 사람의 무서운 점이었다. 사람을 미끼로 던지면서도 실험 설계도를 읽는 얼굴을 했다.
"CT는 조영제 알레르기로 못 쓴다. 내시경 팀은 삼십 분 뒤에나 도착해. 그 삼십 분 안에 이 환자는 죽거나, 살거나 하겠지."
그가 도현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자네가 그렇게 자신하는 손. 검증되지 않은 손. 여기서 증명해봐. 이 환자가 어디서 새는지, 자네 손으로 짚어봐. 틀리면—"
"틀리면 제가 죽인 게 되겠죠."
도현이 말을 잘랐다. 윤재경의 눈이 처음으로 미세하게 움직였다.
"바로 그거야. 개인의 확신이 환자를 죽인다. 나는 그걸 이십 년간 봐왔어. 실력 있다고 믿는 손, 시스템을 무시하는 손. 그 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관에 넣었는지 자네는 몰라."
기사가 터진 새벽이었다. 12층 심사위원회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고, 윤재경은 그 균열의 한가운데서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론이 아니라 결과. 도현의 손이 여기서 한 명이라도 죽이면, 폭로 기사는 '검증 안 된 오만한 인턴의 반란'으로 다시 쓰일 것이다.
도현은 알았다. 지금 자신의 손이 어떤 상태인지.
새벽 내내 서버실에서 몸싸움을 했다. 그 전에 최영수 데이터를 확인하느라, 그 전에 응급실 환자 셋을 만졌다. 잔류 통증이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차올라 있었다. 손가락을 폈다 쥐자 마디에서 낯선 저항이 왔다. 감각 붕괴까지 얼마 안 남았다. 여기서 이 환자를 만지면—
"만지지 마."
강민석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마취 카트를 밀고 병실 문턱에 서 있었다.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윤 과장님. 이 환자 진단, 제가 세팅 좀 하고 하겠습니다."
"자넨 빠져, 강 선생."
"못 빠집니다."
강민석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도현 곁에 붙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안 들릴 만큼 낮게 말했다.
"5화 그날, 네가 3번 베드 만지고 실신했을 때. 나 봤어. 네 몸이 남의 통증을 흡수하는 거. 그날부터 계속 봤다고. 진통제 안 듣는 거, 잔류가 쌓이는 거, 붕괴 오는 거."
도현의 어깨가 굳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처음부터 눈치챘고, 지금 확신해. 넌 이 환자 만지면 이번엔 못 일어나. 손이 완전히 굳을 거야."
"그래도 만져야 돼. 삼십 분 없어."
"혼자 지려고 하지 마."
강민석이 카트에서 주사기를 뽑았다. 도현이 처음 보는 조합이었다.
"통각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진 못해. 하지만 분산은 시킬 수 있어. 마취과가 하는 게 통증 관리잖아. 네가 흡수하는 통증을, 내가 약으로 네 신경에 미리 방벽을 세워두면—전부는 못 막아도 붕괴는 늦출 수 있어. 네 손이 굳기 전에 진단할 시간, 그거 하나는 벌어준다."
"위험 검증 안 됐잖아."
"지금 여기서 검증 안 된 거 쓰는 사람이 너 하나냐."
강민석이 도현의 팔을 잡았다. 팔오금 정맥을 찾는 손길이 정확했다.
"넌 남 몸 읽는 저주받은 손 쓰고, 나는 통증 나눠 지는 마취 건다. 우리 둘 다 미친놈이야. 그러니까 같이 미치자."
주삿바늘이 들어왔다. 도현은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팔을 타고 오르던 잔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얇은 막 뒤로 밀려나는 것 같았다. 붕괴의 문턱이 한 뼘 물러났다.
윤재경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뭘 하는 거지."
"보시는 대로입니다."
도현이 대답하며 환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과장님이 말한 '검증되지 않은 손'. 그게 왜 사람을 죽이는지 아세요? 혼자여서예요. 확신을 검증해줄 사람 없이 혼자 밀어붙이니까 죽여요."
윤재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시스템이 필요한 거야. 개인을 걸러내는—"
"아뇨."
도현은 환자의 배 위에 손을 얹기 직전, 강민석을 한 번 보고, 문 쪽에 방금 도착한 지우와 이서린을 봤다.
"사람이요."
그리고 손을 댔다.
세계가 뒤집혔다.
명치가 아니라 등이었다. 왼쪽 옆구리 뒤편, 콩팥 위쪽. 타는 게 아니라 찢어지는 통증. 혈관이 아니라 장기 자체가 갈라져 안으로 피를 쏟고 있었다. 위장 출혈이 아니었다. 비장 파열. 그것도 지연성. 며칠 전 어딘가 부딪힌 게, 오늘 새벽 터진 거다.
도현의 시야가 반으로 접혔다. 강민석의 방벽이 없었다면 지금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이 악물었다. 손끝이 떨렸다. 붕괴 직전, 물러났던 문턱이 다시 밀려왔다.
"—비장."
목소리가 갈라졌다.
"위장 출혈 아닙니다. 지연성 비장 파열. 좌상복부, 후방. 지금 복강 내로 출혈 중이고 혈압 떨어지는 이유가 이겁니다. 내시경 필요 없어요. 지금 당장 개복 아니면 색전술."
"근거는."
"제 손이요."
"그게 근거가 되나."
"됩니다. 초음파 대세요. 지금. FAST 프로토콜로 좌상복부 스캔하면 3초면 나와요. 제 손이 틀렸는지, 제가 지금 이걸 두고 거짓말할 몸 상태인지, 화면에서 확인하세요."
강민석이 이미 초음파 프로브를 잡고 있었다. 젤을 짜고 좌상복부에 갖다 댔다. 화면에 검은 물결이 번졌다. 복강 내 자유액—출혈. 비장 주변의 파열 음영.
병실이 조용해졌다.
이서린이 낮게 내뱉었다.
"…맞잖아."
윤재경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오래. 이십 년간 그가 신뢰해온 것, 데이터, 영상, 검증. 그 화면이 지금 검증되지 않은 손을 검증하고 있었다.
"인터벤션 콜하세요. 색전술 준비. 실혈량 많으면 바로 개복 전환. 수혈 오더 지금 넣어야 합니다."
도현이 밀어붙였다. 이건 배운 몸이었다. 두 번의 삶에서 몸에 밴 것.
윤재경이 인터폰을 들었다. 인터벤션 팀을 호출하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평했지만, 방금 전과는 다른 무게가 실려 있었다. 환자가 실려 나갔다. 문이 닫히고, 병실에는 다섯 사람이 남았다.
도현은 벽을 짚고 서 있었다.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가락이 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굳지 않았다. 강민석이 벌어준 시간, 딱 그만큼. 딱 필요한 만큼만 능력을 썼고, 나머지는 초음파에게, 초음파 프로브를 잡은 강민석의 손에게 넘겼다.
혼자 다 짊어지려 하지 않았다.
"자네."
윤재경이 입을 열었다. 인터폰을 내려놓은 손이 그대로 멎어 있었다.
"방금 그 손, 진짜 뭐지."
"과장님이 저에게 물으셨죠. 검증되지 않은 손이 사람을 죽인다고."
도현이 벽에서 등을 뗐다. 걷는 게 힘들었지만 걸었다.
"맞는 말입니다. 저 이번 삶 전에, 그 말을 온몸으로 배웠어요. 제 확신이 옳았는데도 사람을 못 살린 적 있어요. 왜냐면 저 혼자였거든요. 옆에서 붙잡아줄 사람도, 제 판단을 검증해줄 사람도, 제가 무너질 때 대신 짐 질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시스템이—"
"과장님 시스템은 사람을 안 믿어서 만든 거예요."
도현이 그의 앞에 섰다.
"개인이 오만할까 봐, 그래서 절차로 개인을 묶어놓으신 거죠. 근데 그건 검증이 아니에요. 불신이에요. 진짜 검증은요, 과장님."
강민석을 가리켰다. 지우를, 이서린을 차례로 가리켰다.
"제 손이 틀릴까 봐 초음파를 댄 이 사람. 제가 무너질까 봐 통증을 나눠 진 이 사람. 제 확신을 '증명하라'고 몇 번이나 요구한 저 기자. 제가 독선으로 갈 때 등 돌려서라도 저를 멈춰 세운 저 친구. 이 사람들이 검증이에요. 시스템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요. 그래야 개인의 확신이 사람을 살려요. 죽이는 게 아니라."
윤재경은 오래 도현을 봤다. 그의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손은 정말로 사람을 죽인다. 도현은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손을 죽이지 않는 방법이, 절차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최영수 환자."
윤재경이 낮게 말했다.
"내가 삭제하려던 그 데이터. 그 환자도, 혼자 죽었지. 아무도 옆에서 안 붙잡았고."
"과장님이 붙잡을 수 있었어요. 근데 시스템을 지키려고 손을 놓으셨죠."
윤재경이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 그리고 떴을 때, 이십 년간 세운 무언가가 그 안에서 조용히 주저앉는 게 보였다.
"기사 정정 안 할 거야. 정정할 수도 없고."
그가 돌아섰다.
"조사위 소집해. 내 결재 흔적 있는 원본. 다 나와 있잖아. 이서린 기자, 원본 확보했지."
"…네."
"그럼 됐어. 나는 내려간다. 심사위원회는—"
그가 문 앞에서 멈췄다.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자네 손, 계속 그렇게 쓰면 오래 못 가. 알고 있나."
"압니다."
"…혼자 안 쓰면 좀 낫겠군."
문이 닫혔다.
이서린이 먼저 숨을 뱉었다.
"이걸로 카르텔은 끝이에요. 박태오 자백, 원본 데이터, 윤재경 결재, 그리고 방금 이 진단. 12층 다 뒤집혀요."
지우가 다가와 도현의 오른손을 잡았다. 5화 그때처럼. 하지만 이번엔 살피는 눈이 아니었다.
"안 굳었네."
"강 선생 덕이야."
"내 덕이라고 좀 자주 말해라."
강민석이 카트에 기대며 웃었다. 웃는데도 손이 떨리고 있었다. 통증을 나눠 진 대가가 그에게도 얼마간 남은 얼굴이었다.
"근데 서도현. 다음부터 이거 함부로 하지 마라. 이번엔 세팅이 됐으니 됐지, 급하면 못 막아. 네가 언제 손 대야 하는지, 나랑 미리 짜야 돼."
"그럴게."
도현이 대답했다. 이번엔 진심이었다. 혼자 밀어붙여 무너졌던 첫 번째 삶의 그가, 두 번째 삶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대답했다.
"같이 짜자."
그날 오후 12층 심사위원회 회의실 문에 조사위원회 명패가 붙었다. 수술 배정 명단을 쥐고 있던 손들이 흩어졌다. 박태오는 이미 사라졌고, 곧 다시 불려 나올 것이다. 성심의료원의 위계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 꼭대기를 지배하던 밀실의 논리는 무너졌다.
이서린이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우리 넷이서, 원칙 하나 정해요."
"무슨."
"진단이든 수술이든, 누구도 혼자 결정 안 한다. 확신이 있으면 옆 사람한테 검증받고. 무너지면 붙잡고. 책임은 나눠서 진다. 시스템 만들자는 게 아니라—사람으로 하자는 거."
"윤 과장이 들으면 웃겠는데."
지우가 말했다.
"윤 과장이 못 한 걸 우리가 하는 거지."
도현이 대답했다.
다음 날 새벽이었다.
3층 응급의료센터. 두 번째 삶의 첫날 도현이 처음 손을 댔던 그곳에, 그가 다시 섰다. 자동문이 열리고 새벽 공기가 밀려들었다. 구급대의 무전이 울렸다.
"다발성 외상, 오 분 뒤 도착. 의식 저하, 혈압 잡히다 말다—"
도현이 오른손을 폈다 쥐었다. 아직 저릿했다. 잔류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 손은 여전히 부서질 수 있는 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굳지 않았다.
옆에 강민석이 마취 카트를 밀고 섰다. 지우가 장갑을 끼며 반대편에 붙었다. 이서린은 저만치 취재 수첩을 든 채 서 있었다.
"세팅 됐어."
강민석이 말했다.
"내가 붙어 있다. 오늘은 손 대도 돼. 대신 몇 초 쓸지 미리 말해."
"3번 베드로 들어오면, 딱 한 번. 어디가 문제인지만."
"콜."
구급차 사이렌이 가까워졌다. 도현은 자동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향해서. 첫 번째 삶에서 놓쳤던, 두 번째 삶에서 저주받은 손으로 겨우 붙잡아온, 그 한 명을 향해서.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자동문이 완전히 열렸다. 들것이 내려왔다. 환자의 얼굴이 보였다. 도현의 손이 멈칫했다.
그가 아는 얼굴이었다. 첫 번째 삶에서, 도현이 못 살린 그 환자였다.
"—이번엔."
도현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