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서도현은 심사위원회 회의실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12층. 창문 하나 없는 밀실. 열두 개의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고, 테이블 위에는 그가 죽인 적 없는 환자 셋의 이름이 적힌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환자 3인 사망. 집도의 서도현. 사망률 통계상 명백한 이상치."
윤재경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내지 않았다. 화낼 필요조차 없다는 듯이.
"저 데이터는 조작됐습니다." 도현은 목이 갈라진 채로 말했다. "제 실제 사망률은 그 절반도 안 됩니다. 세 명 중 둘은 애초에 다른 병원에서 손 놓은 말기 환자였고—"
"증거는요."
박태오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웃었다. 그 웃음을 도현은 평생 잊지 못했다. 원본 진료기록은 이미 사라졌다. 도현이 쥔 건 자기 기억뿐이었고, 기억은 시스템 안에서 아무 힘이 없었다.
"서명하세요, 서 선생." 서류 한 장이 밀려왔다. 자진 사직서. "명예롭게 나갈 기회입니다. 이것도 배려예요."
손이 떨렸다. 펜을 쥘 힘도 없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쿵, 쿵—그러다 한 박자를 건너뛰었다. 시야가 좁아지고, 열두 개의 얼굴이 검은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렇게…… 혼자……'
숨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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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현! 아직도 자?!"
누군가 커튼을 확 젖혔다.
도현은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주름이 없었다. 손등의 검버섯이 없었다. 손가락 마디의 관절통도 없었다.
좁은 방. 이층 침대. 벽에 붙은 근무표. 그 위에 찍힌 날짜.
15년 전.
인턴 첫날.
"뭐 하냐, 오리엔테이션 늦겠다고. 성심의료원 인턴이 첫날부터 지각하면 1년 내내 밟혀."
문가에 선 남자는 도현이 아는 얼굴이었다. 동기 김세훈. 3년 뒤 지방으로 떠나 소식이 끊긴 남자. 살아 있었다. 그 얼굴 그대로.
도현은 자기 손바닥을 뒤집어 보았다. 명치를 눌렀다. 아무 통증도 없었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느꼈던 심장의 부정맥, 그 조여드는 감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병원 온 게 처음도 아닌데."
처음이 아니었다. 15년을 살고 다시 왔으니까.
"세훈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늘…… 며칠이지."
"3월 2일. 인턴 오티. 얼른 씻어."
도현은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스물여섯의 얼굴이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눈 밑에 그늘이 없고, 볼이 팽팽했다. 그는 거울을 향해 웃어 보려 했다.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기억이 온전했다. 윤재경의 목소리, 박태오의 안경, 조작된 사망 통계 세 줄. 그를 매장한 모든 것이 이 머릿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두 번째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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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의료원 로비는 예전 그대로였다. 대리석 바닥, 천장까지 뻗은 유리 엘리베이터, 벽에 걸린 역대 이사장 초상화들.
도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층별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12층 — 심사위원회 회의실. 그를 죽인 밀실. 지금은 아직 문이 닫혀 있을 것이다. 카르텔은 완성되지 않았다. 윤재경이 흉부외과 과장을 꿰차는 건 아직 몇 년 뒤였고, 박태오는 이제 겨우 치프 레지던트일 것이다.
7층 — 흉부외과. 윤재경의 성역이 될 자리. 지금은 그저 한 명의 유능한 부교수가 있는 층에 불과했다.
3층 — 응급의료센터.
도현의 눈이 그 세 글자에 멎었다. 카르텔의 감시가 가장 느슨한 곳. 서열 밖의 환자들이 밀려드는 곳. 실력을 증명할 무대가 있다면 저기였다.
'이번엔 다르게 간다.'
혼자 옳다고 소리치다 무너지지 않는다. 증거를 쌓고, 사람을 모으고, 판을 뒤집을 때까지 이빨을 숨긴다.
"거기 인턴!"
날카로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흰 가운을 걸친 여자 레지던트가 클립보드로 도현을 툭 쳤다.
"오티는 저쪽인데 왜 여기 서서 관광하고 있어. 이름."
"서도현입니다."
"서도현. 외워뒀어. 오늘 회진 따라와. 3년차 정민아 밑에서 배우게 될 거니까." 그녀는 이미 돌아서고 있었다. "인턴은 눈이랑 입 닫고 손발만 있으면 돼. 알겠어?"
도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15년 뒤, 정민아는 실력 좋은 개원의가 되어 있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자기 서열 아래 인턴이 자기보다 앞선 눈을 가졌다는 걸 상상도 못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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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은 8층 내과 병동에서 시작됐다.
정민아를 필두로 인턴 넷이 병실을 돌았다. 도현은 맨 뒤에서 걸었다. 익숙한 침대 배치, 익숙한 소독약 냄새. 몸이 저절로 기억을 되짚었다.
804호 세 번째 침대.
50대 남자.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차트를 든 정민아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김성호 환자, 58세. 최근 두 달 체중 감소, 상복부 불편감. 소화불량으로 외래 왔다가 입원. 초음파상 특이소견 없고, 위내시경 예약 잡아둔 상태. 일단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보고 프로톤펌프 억제제 처방—"
도현의 발이 멈췄다.
김성호. 이 이름을 그는 알았다. 15년 전 이 환자는 '단순 소화불량' 진단으로 내시경이 일주일 미뤄졌고, 그사이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진행성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뒤늦은 검사 때, 이미 간으로 전이가 퍼진 뒤였다.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시경, 오늘 잡아야 합니다."
정민아가 돌아봤다. 다른 인턴들의 눈이 도현에게 꽂혔다.
"뭐라고?"
"체중 감소 두 달에 상복부 통증, 이 나이대 남성이면 진행성 위암 배제부터 해야 합니다. 초음파는 조기 위암을 못 잡아요. 예약 미루지 말고 오늘 내시경, 가능하면 조직검사까지—"
"야." 정민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첫날이지."
"네."
"내가 초음파 봤고, 소화기내과 교수님이 오더 내셨어. 근데 오티 온 지 세 시간 된 인턴이 위암이래?"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너 위내시경 몇 번 넣어봤어. 조직검사 판독 몇 장 읽어봤어."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몸의 이력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
"인턴 주제에 교수님 오더에 토 달지 마. 여기 규칙 모르나 본데, 넌 지금 보이는 걸 말할 자격이 없어. 검사 결과가 말하게 두라고."
그녀가 옳았다. 그게 이 세계의 규칙이었다. 도현은 15년 전 이 규칙을 몰라 무너졌고, 이번엔 그 규칙을 안다.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답을 알면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도현은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가 떨렸다.
정민아가 만족스럽게 돌아섰다. 인턴들이 그녀를 따랐다.
도현은 그 자리에 남았다. 눈앞의 침대에 김성호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침대에서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다. 검사 결과가 말하게 두는 사이에.
'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늦어.'
그는 알았다. 이미 한 번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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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 옆으로 다가섰다.
"환자분." 그가 작게 불렀다. "잠깐 배 좀 볼게요."
의식은 계산하고 있었다. 조용히, 티 나지 않게, 증거를 위해. 그러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불을 걷고, 환자의 상복부에 맨손을 얹었다.
그 순간이었다.
명치에서 불이 붙었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뜨거운 쇠꼬챙이가 위장 한복판을 뚫고 들어오는 감각이 그의 몸으로 밀려들었다. 위 소만곡, 위체부의 후벽. 그곳에 단단한 덩어리가 박혀 있는 게 손끝을 타고 그의 뇌로 그려졌다. 병변의 경계, 깊이, 궤양성 함몰의 가장자리까지. CT를 몸 안에 켠 것처럼 선명했다.
'궤양침윤형. 이미 근층을 뚫었어. 주위 림프절—'
거기서 통증이 옆구리로 번졌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김성호의 통증이 아니었다. 도현 자신의 몸이 지금, 이 순간, 위암 4기의 통증을 앓고 있었다.
"으윽—"
그가 침대 난간을 붙들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저기…… 선생님?" 눈을 뜬 김성호가 도현을 올려다봤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을 떼었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명치가 계속 타들어 갔다. 손을 뗐는데도, 전이된 통증이 몸에 눌어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무엇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회귀만이 아니었다. 손을 대는 순간 병이 보였다. 아니, 보인 게 아니라 앓았다. 명치의 불, 옆구리의 압박, 이 모든 게 그의 몸 안에 지금 실재하고 있었다.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걸로라면 어떤 검사보다 빠르게 진단할 수 있었다. 김성호를 살릴 수 있었다. 15년 전 놓친 환자를.
하지만—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쿵. 쿵. 쿵쿵. 그러다 한 박자를 건너뛰었다.
도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감각을 그는 기억했다. 죽기 직전 12층 회의실에서 심장이 멈추던 그 순간과 똑같았다. 손끝에서 번진 통증이 심장 박동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부정맥. 자기 것인지 김성호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통증이 명치에서 가슴으로 올라와 심장을 움켜쥐었다.
'이게…… 대가인가.'
그가 벽에 등을 기댔다. 숨을 골랐다. 김성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 환자를 살릴 답이 지금 그의 손끝에 있었다. 그러나 그 답을 증명할 방법도, 이 능력을 감당할 몸도 아직 없었다.
그때, 복도 스피커가 째지듯 울렸다.
"응급의료센터 코드블루. 3층 응급센터, 심정지 환자 도착. 인근 근무 의료진 즉시 지원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3층 코드블루—"
도현의 고개가 확 들렸다.
3층. 응급센터. 감시의 사각지대. 그가 무대로 삼겠다고 결심한 바로 그곳.
심장이 여전히 박자를 놓치며 뛰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명치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몸으로 뛸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발이 이미 복도를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는다—그 다짐이, 아직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는 두 손을 끌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두 개씩 밟아 내려가는 동안 명치의 불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도현은 난간을 붙들고 부정맥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손끝의 떨림은 오히려 심해졌다. 5층, 4층. 계단참을 돌 때마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다가 돌아왔다.
'김성호를 만진 게 겨우 몇 초였어. 그게 이 정도라면—'
생각을 마칠 틈이 없었다. 3층 응급센터의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익숙한 소음이 그를 덮쳤다. 모니터의 경보음, 다급한 발소리, 이동식 침대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 15년 전에도, 15년 후에도 변하지 않은 전장의 소리였다.
"CPR 계속! 에피 한 방 더 들어갔어?"
침대 하나를 인력 여럿이 둘러싸고 있었다. 도현은 사람들 어깨 너머로 환자를 보았다. 30대 후반의 여자. 창백한 얼굴, 가슴압박에 맞춰 흔들리는 몸. 심전도 모니터에는 무맥성 전기활동이 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려간 지 얼마나 됐어요?" 압박을 하던 레지던트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소리쳤다.
"현장에서 10분, 이송 8분. 목격자 CPR 있었고—"
"원인은? 뭐 때문에 쓰러진 거야?"
"몰라요. 회사 화장실에서 발견됐대요. 기저질환 기록 없고, 심전도 비특이적이고—"
도현은 그 대화를 들으며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인턴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발이 멈추지 않았다.
'무맥성 전기활동. 원인 불명. 젊은 여자. 갑작스러운 붕괴—'
머릿속에서 감별 진단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회귀 전 15년의 임상이 목록을 만들었다. 폐색전, 심장 눌림증, 대량 출혈, 긴장성 기흉, 중독. 그러나 목록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 어느 것인지 짚어내지 못하면 이 여자는 이 침대 위에서 죽는다.
"비켜, 인턴!" 누군가 도현의 어깨를 밀쳤다.
도현은 밀려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의 목 정맥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압박할 때마다 흉곽이 이상하게 저항했다. 15년의 경험이 경종을 울렸다.
"손 좀……" 도현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혔다. 그는 더 크게 외쳤다. "잠깐만요, 경정맥 봐요! 목 정맥이 부풀었어요!"
아무도 듣지 않았다. 인턴의 목소리는 코드블루의 아수라장에서 소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도현은,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계산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이빨을 숨기겠다는 다짐도, 능력의 대가에 대한 공포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두 손은 그 죽음의 이유를 만질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여자의 드러난 팔목에 맨손을 얹었다.
세계가 무너졌다.
가슴이 짓눌렸다. 심장을 거대한 손이 통째로 움켜쥐고 조이는 감각. 심장이 뛸 공간이 없었다. 박동할 때마다 바깥에서 압박이 밀려들어 채워질 틈을 주지 않았다. 도현의 폐가 텅 비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심낭. 심낭에 뭔가 차 있어. 피다. 심장을 누르고 있어—'
심장 눌림증. 심낭에 고인 혈액이 심장을 압박해 박동을 막고 있었다. CPR로 가슴을 아무리 눌러도 소용없는 이유가 이거였다. 압박이 아니라 심낭을 뚫어 피를 빼야 했다. 지금 당장.
"으윽—" 도현이 무릎을 꿇었다. 여자의 통증이 그의 몸을 통째로 삼켰다. 자기 심장이 눌리는지 여자의 심장이 눌리는지 구별되지 않았다. 시야가 검은 점으로 좁아졌다. 죽기 직전 12층에서 본 그 검은 점.
"인턴 쓰러진다! 뭐야 얘—"
누군가 도현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그 손을 뿌리치며 침대 쪽을 향해 짜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떨렸지만, 이번만은 밀어내지 못하게.
"심장…… 눌림증. 심낭…… 압전. 가슴 압박 소용없어요. 심낭…… 천자, 초음파로…… 검상돌기 밑에서……"
"뭐라는 거야 인턴이!"
"경정맥 부었고 심음 안 들리고 혈압 안 잡히죠! 벡의 삼징이에요! 지금 초음파 대보면 심낭에 액체 보입니다! 압박 멈추고 심낭천자—"
응급센터 전체가 반 박자 멈췄다.
도현을 붙든 손이 느슨해졌다. 압박을 하던 레지던트가 처음으로 도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 눈에 짜증과 당혹, 그리고 아주 얇은 의심의 균열이 스쳤다.
"……초음파. 초음파 가져와."
누군가 이동식 초음파기를 밀고 왔다. 젤이 발리고 프로브가 여자의 검상돌기 아래에 닿았다. 화면에 흐릿한 회색 영상이 떴다. 심장이 뛰려 발버둥 치는 그 주위로, 검은 무언가가 심장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심낭 삼출액. 심장을 감싼 검은 띠.
레지던트의 입이 벌어졌다. 그가 도현을 다시 돌아봤다. 이번엔 짜증이 아니었다.
"너…… 이거 어떻게……"
도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무릎이 완전히 꺾이고 있었다. 명치의 불, 심장의 압박, 부정맥. 세 개의 통증이 그의 몸 안에서 뒤엉켜 자기 것인지 남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손끝의 떨림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번졌다. 심장이 박자를 놓치다 못해 두 박자, 세 박자를 연달아 건너뛰었다.
'하나…… 아니, 둘. 오늘 두 사람을 만졌어. 위암 하나, 심장 눌림증 하나—'
능력이 만든 통증에는 진통제가 듣지 않았다. 회복은 오직 시간뿐. 그러나 그가 그 규칙을 채 떠올리기도 전에, 세계가 옆으로 기울었다.
바닥이 그를 향해 솟아올랐다.
쓰러지는 그의 시야 끝에서, 응급센터 반대편 자동문이 열리고 있었다. 목에 프레스카드를 건 여자가 안으로 들어서며 무언가를 소리쳐 묻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마취과 명찰을 단 남자가 산소통을 밀며 코드블루 침대를 향해 뛰어오다가—쓰러지는 도현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도현의 새하얗게 질린 손과 경련하는 손끝에 못 박혔다.
"저 인턴 손……"
도현은 그 말의 끝을 듣지 못했다. 바닥이 뺨에 닿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하나의 질문이었다.
방금 나는,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잡았는가. 아니면 그 대가로 나 자신을 먼저 죽인 것인가.
의식이 검은 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