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형광등이 하나씩 꺼졌다.

아니, 꺼지는 게 아니라 멀어졌다. 서도현은 자신의 눈꺼풀이 감기는 속도로 세상이 뒤로 물러나는 걸 지켜봤다. 수술방의 무영등도, 심사위원회 회의실의 냉담한 얼굴들도, "책임은 서도현 선생이 지는 겁니다"라던 윤재경의 목소리도.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지우였다. 복도 끝, 문틈으로 자신을 바라보다 눈을 피하던 후배의 옆얼굴.

그 얼굴을 지우고 싶어 눈을 감았다.

"서 선생님! 서도현 선생님! 첫날부터 이러시면 안 되죠."

누가 어깨를 흔들었다.

도현은 눈을 떴다. 천장이 낮았다. 흰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당직실 천장. 코끝에 소독약과 인스턴트 커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그의 가슴은 온전했다.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던 통증도, 폐를 채우던 물기도 없었다.

"기상 안 하십니까? 오리엔테이션 삼십 분 전입니다."

앳된 얼굴의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란 스크럽. 명찰에 '인턴 정우석'. 도현은 그 이름을 몰랐다. 아니, 알았다. 십사 년 전, 자신과 같은 날 입사했다가 삼 개월 만에 그만둔 인턴.

십사 년 전.

도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의 흉터가 없었다. 스물아홉 살의 손.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은, 아무 누명도 뒤집어쓰지 않은 손.

"선생님, 어디 안 좋으세요? 얼굴이……"

"아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현은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벽에 붙은 근무표. 날짜. 2011년 3월 2일. 인턴 첫 출근일.

죽었다. 분명히 죽었다. 카르텔이 조작한 임상 데이터에 의료사고 집도의로 낙인찍혀, 면허를 잃고, 소송에 짓눌리고, 마지막엔 자신이 살렸어야 할 병으로 병원 침대에서. 그 모든 게 지나간 뒤였다. 십사 년의 삶 전체가.

"몇 시죠."

"일곱 시 반이요."

도현은 근무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늘 오후, 응급센터에 흉통 환자가 온다. 오십대 남성. 심근경색으로 판단해 순환기내과가 재빨리 손을 쓰지만, 실제로는 대동맥 박리다. 오진. 그 환자는 죽고, 기록은 조용히 수정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도현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인턴이었다.

그 이름까지 기억났다. 김성태. 마흔여덟.

기억이 온전했다.

"먼저 나가 있어."

정우석이 어깨를 으쓱하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 도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십사 년을 통째로 되감은 자의 손이 떨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거울 앞에 섰다. 스물아홉의 얼굴이 자신을 마주 봤다. 눈 밑에 그늘도, 입가에 팬 주름도 없는.

"윤재경."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봤다.

지금 이 순간 흉부외과 과장 윤재경은 12층 회의실에서 오늘의 수술 배정 명단을 짜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이 얼마나 완벽한지 의심하지 않은 채. 검증되지 않은 손이 환자를 죽인다고, 그러니 튀는 재능은 걸러내야 한다고 믿으면서.

"박태오."

데이터 조작의 실무자. 겁 많고 이기적인, 그러나 결정적인 손.

"한지우."

거울 속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십사 년 전 아직 만나지도 않은 이름들. 그중 하나는 앞으로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었다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린다.

도현은 스크럽을 갈아입고 복도로 나섰다.

---

성심의료원의 아침은 소음의 지층이었다. 카트 바퀴 소리, 호출벨, 보호자들의 다급한 발소리. 도현은 그 소음 사이를 걸었다. 처음 걷는 길이 아니었다. 지겹도록 밟은 동선. 3층에서 7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는 언제나 흉부외과 사람들이 먼저 탔고, 인턴은 다음 걸 기다렸다.

로비 중앙 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오늘의 수술 배정 명단이 붙었다.

"7번 방 김 교수님 케이스 또 김 선생이네."

"윤 과장님 라인이잖아. 당연하지."

"실적은 저쪽으로 몰아주고 사고 나면 밑에서 뒤집어쓰고. 뻔한 거야."

도현은 명단을 올려다봤다. 이름들이 정렬돼 있었다. 위쪽은 심사위원회에 순응한 자들, 아래는 언제든 버려질 방패들. 이 병원의 진짜 지도. 십사 년 전에는 읽지 못했던 위계가, 지금은 손금처럼 보였다.

"인턴은 뭐 구경하냐."

누가 어깨를 툭 쳤다. 응급의학과 3년차. 도현은 이 사람 이름도 알았다. 나중에 카르텔 앞에서 침묵할 사람. 하지만 지금은 그저 피곤한 선배였다.

"응급센터부터 돌아. 3층."

"예."

도현은 순순히 몸을 돌렸다. 서두를 필요 없었다. 이번엔 시간이 그의 편이었다.

3층 응급의료센터는 카르텔의 감시가 가장 느슨한 곳이었다. 서열 밖 환자들이 밀려드는, 아무도 실적을 따지지 않는 무대. 도현이 처음으로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할 곳. 밀려드는 침대와 커튼, 산소 마스크의 쉭쉭거림. 익숙한 냄새 속에서 도현은 숨을 골랐다.

오후가 되면 김성태가 온다. 흉통을 호소하며.

그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턴 첫날, 아무 권한도 없는 자가 순환기내과의 진단을 뒤집는다? 십사 년 전의 도현이라면 곧장 뛰어들었을 것이다. 내가 옳으니까. 그러다 고립됐고, 먹잇감이 됐다.

이번엔 달라야 한다.

"인턴 선생님, 여기 좀!"

간호사가 그를 불렀다. 3번 베드. 노인 하나가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었다. 도현은 반사적으로 다가갔다.

"어르신, 어디가 아프세요?"

"배가……. 아침부터……."

말이 끊겼다. 도현은 노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으려 했다. 맨손이 노인의 팔뚝 피부에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명치 아래가 불에 데인 듯 뜨거워졌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그의 것이 아닌 통증이 물처럼 위로 차올랐다. 배꼽 왼쪽, 깊숙한 곳. 무언가 부풀어 오른 압박. 박동에 맞춰 욱신거리는, 살아 있는 폭탄 같은 감각. 도현의 손이 노인의 팔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복부 대동맥류. 파열 직전.

정보가 통증의 형태로 그의 몸에 새겨졌다. MRI를 찍은 것도, 초음파를 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을 댔을 뿐인데 병변의 위치와 깊이, 진행 정도가 자기 몸의 감각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선생님?"

간호사가 그를 불렀다. 도현은 노인의 팔을 놓았다.

"복부 대동맥류입니다. 파열 임박. 혈압 지금 몇이에요?"

"어…… 아직 안 쟀는데, 어르신이 방금 오셔서……."

"당장 재고 외과 콜하세요. CT 조영 준비하고 혈액형 크로스매칭. 지금."

간호사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인턴 첫날, 이름표에 잉크도 안 마른 자가.

"인턴 선생님이 어떻게……"

"부탁드립니다."

도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간호사는 잠시 망설이다 혈압계를 잡았다. 수치가 뜨자 얼굴이 굳었다. 팔십에 사십. 쇼크. 그녀가 벌떡 일어나 외과 콜을 걸었다.

도현은 뒤로 물러섰다. 노인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이제 그를 붙잡을 손들이 달려올 것이다. 살 것이다.

그런데.

도현은 자신의 명치를 내려다봤다. 손은 이미 노인에게서 뗐다. 진단은 끝났다. 그런데 명치 아래의 뜨거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

응급센터의 소란은 순식간에 커졌다. 외과 당직이 뛰어왔고, 노인은 이동식 침대에 실려 CT실로 향했다. 조영 결과가 도현의 진단과 정확히 일치했다는 소식이, 커튼 너머로 흘러들었다.

"인턴이 촉진만으로 대동맥류를 잡았다고?"

"신경외과 지망이라던데 감이 좋네."

말들이 오갔지만 도현의 귀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처치실 구석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명치의 통증은 여전했다. 아니, 처음보다 옅어지긴 했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마치 그 노인의 병이 자기 몸 안 어딘가에 짐을 부려놓고 간 것처럼.

'이게……'

도현은 자신의 왼손을 펼쳐 봤다. 손바닥에 아직 노인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대면 병을 읽는다. 십사 년 전의 삶에서는 없던 능력. 회귀와 함께 딸려 온 무언가.

그는 다시 손을 쥐었다 폈다. 손끝이 떨렸다. 아까와는 다른 떨림. 진단 하나에 이 정도라면, 여러 명을 연달아 만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통증이 겹겹이 쌓이면.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축복이 아니야.'

능력이 손에 쥐어졌다는 안도가 채 자리 잡기 전에, 그 대가의 윤곽이 먼저 몸에 새겨졌다. 진단은 끝났는데 통증은 남는다. 손을 뗐는데 몸에 붙어 있다. 이건 정보를 읽는 도구가 아니라, 남의 병을 자기 몸에 옮겨 담는 저주에 가까웠다.

메스를 쥘 손이 떨리면.

외과의에게 그것은 끝이었다.

"인턴 선생, 방금 그 케이스 자네가 잡았다며?"

목소리에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40대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응급센터 스태프의 흰 가운. 도현은 그 얼굴을 알았다. 나중에 심사위원회 회의실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드는 얼굴 중 하나. 지금은 그저 실적에 촉을 세운 중간 관리자.

"운이 좋았습니다."

"운? 인턴 첫날에 촉진으로 파열 임박 대동맥류를 잡는 게 운이야?"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 밑에서 배웠어? 어느 과 지망이야?"

십사 년 전의 도현이라면 여기서 자랑스럽게 자기 실력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표적이 됐을 것이다. 튀는 재능은 시스템에 편입되거나 매장된다. 이 병원의 규칙.

"교과서에 나온 대로 했을 뿐입니다."

도현은 눈을 내리깔았다. 남자의 표정에서 경계가 조금 풀렸다.

"겸손하네. 잘해봐. 이런 데선 튀면 피곤해."

남자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도현은 그 등을 바라봤다. '튀면 피곤하다'는 말을, 그는 십사 년 전에도 들었다. 그때는 무시했다. 그래서 죽었다.

이번엔 다르게 살 것이다.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언제 쓸지 고르고, 판을 읽으며 움직인다. 눈앞의 환자를 살리되, 혼자 무너지지 않게. 카르텔의 정점까지 걸어 올라가 윤재경 앞에 설 때까지, 이 손을 아껴 쓴다.

도현은 처치실을 나섰다. 복도 저편에서 젊은 레지던트 하나가 차트를 든 채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냉소적으로 다문 입, 피곤에 절었지만 눈만은 날카로운.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한지우.

아직 서로를 모르는 사이. 앞으로 자신의 가장 가까운 동료가 되고, 가장 아픈 배신을 안길 얼굴. 도현이 마지막 순간, 문틈으로 자신을 외면하던 그 옆얼굴의 주인.

지우는 도현을 스치듯 지나갔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당연했다. 이번 생에서 두 사람은 아직 남이었다.

도현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이번엔 네가 왜 등을 돌렸는지, 알아낼 거야.'

십사 년 전엔 원망만 했다.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그 얼굴을 지우려 애쓰다 죽었다. 하지만 되감긴 기억 어딘가에서, 도현은 어렴풋한 불편함을 느꼈다. 어쩌면 그 배신의 절반은, 자신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지금은 그걸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시간이 넘칠 만큼 남아 있었다.

도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3층 응급센터의 무대는 이제 그의 것이었다. 오후엔 김성태가 온다. 대동맥 박리로 죽을 뻔한 남자. 이번엔 살릴 것이다. 어떻게 살릴지, 판을 어떻게 짤지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

그런데.

계단을 향해 걷던 도현이 우뚝 멈췄다. 명치가 다시 욱신거렸다. 아까 그 노인의 대동맥류. 손을 뗀 지 삼십 분이 지났는데, 통증이 옅어지기는커녕 미묘하게 형태를 바꿔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도현은 벽을 짚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왜 안 사라지지.'

손을 폈다 쥐어봤다. 감각은 정상이었다. 아직은. 하지만 명치 안쪽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새겨지고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잉크처럼. 노인의 병이, 그 통증이, 도현의 몸에 남은 자국이.

진단 한 번에 이 정도라면.

오후에 김성태를 만지면. 그다음 환자를, 또 그다음을 만지면.

이 손은 얼마나 버틸까.

도현은 식은땀이 흐르는 손등을 내려다봤다. 흉터 하나 없는, 아직 아무것도 죽이지 않은 스물아홉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회귀는 그에게 미래의 기억과 병을 읽는 눈을 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가 무엇인지, 이 몸이 앞으로 무엇을 지불하게 될지—

명치의 불덩이가 한 번 더 크게 욱신거렸다.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축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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