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 만진 다음엔, 네가 죽어가는 사람처럼 보였어."
지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도현은 바닥에 굴러가 있는 캔을 내려다봤다. 알루미늄 표면에 형광등이 길게 늘어져 반사됐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제 것 같지 않았다. 어젯밤 응급센터에서 세 명을 연달아 만졌다. 뇌출혈, 급성췌장염, 그리고 하복부 총상. 그 세 개의 통증이 지금 도현의 몸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뭉근하게 타고 있었다.
"신경 쓸 거 없어."
도현은 캔을 무시하고 침대에서 다리를 내렸다. 발이 바닥에 닿자 정강이까지 저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일어섰다. 오전 회진 전에 4번 베드 환자를 봐야 했다. 어젯밤 들어온 담낭염 의증. 초음파상으로는 애매했지만 도현은 손을 대보면 알 수 있었다.
"어디 가."
"환자 봐야 돼."
"앉아."
지우가 문을 막았다. 도현보다 반 뼘 작은 키인데도, 그 순간만큼은 벽처럼 서 있었다.
"너 지금 두 시간 잤어. 어제 응급실에서 몇 명을 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으로 환자 만지면 오진 나. 아니면 네가 쓰러지든가."
"비켜, 한지우."
"안 비켜."
도현이 지우의 어깨를 밀치려 손을 뻗었다. 지우가 그 손목을 낚아챘다. 아까와 똑같은 손목이었다. 도현이 이를 악물었다. 손목을 잡힌 것만으로도 팔 전체가 얼얼하게 울렸다.
"놔."
"네가 왜 이러는지 나 진짜 모르겠어."
지우의 눈이 흔들렸다. 반감도, 서늘함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오래 참아온 무언가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3번 베드 때도 그랬어. 넌 정한석 선생 진단을 뒤집으면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어. 그냥 '너 개복 준비해'라고 통보했지. 내가 그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아, 이 새끼 나 방패로 쓰는구나.' 만약 잘못되면 협박당해서 수술방 들어간 인턴이 총대 메는 거잖아."
"환자는 살았어."
"살았지. 근데 넌 나한테 한 번도 안 물었어."
지우가 손목을 놓았다. 도현은 그 자리에 서서 지우를 봤다. 지우의 목젖이 한 번 크게 오르내렸다.
"넌 늘 네가 옳아. 네가 옳으니까 나머지는 다 따라오면 되는 거고.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인지, 그런 건 너한테 데이터 축에도 안 들어가. 그냥… 변수야. 통제해야 할."
도현은 반박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회귀 전의 장면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5년 차 무렵이었다. 응급 이송된 대동맥 파열 환자를 두고 도현은 마취과와 세 시간을 싸웠다. 혈압이 안 잡히니 마취 유도를 못 하겠다는 마취과에게, 도현은 "그럼 죽게 두자는 거냐"고 쏘아붙이고 절차를 무시한 채 개흉을 강행했다. 환자는 살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 마취과 선생은 두 번 다시 도현의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현은 그걸 승리라고 기억했다. 지금까지.
"…내가 언제 그랬어."
목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나왔다.
"봐. 지금도 모르잖아."
지우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 웃음에는 냉소보다 피로가 더 짙었다.
"됐어. 어차피 너한테 말해봤자 소음이지. 환자 보러 가든가 말든가. 근데 하나만 알아둬. 오늘 네가 그 손으로 사고 치면, 나 안 막아줄 거야. 두 번은 못 하겠어."
지우가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도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바닥의 캔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허리를 굽혀 주웠다. 손이 떨려서 세 번 만에 겨우 집었다. 알루미늄이 손안에서 미끄러졌다.
두 번은 못 하겠어.
그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았다.
***
문제는 오후에 터졌다.
강민석이 회복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을 때, 도현은 커피도 마시지 못한 채였다.
"서 선생, 지금 12층에서 소집됐어. 박태오가 자네를 걸었어."
"뭘로."
"어제 새벽 하복부 총상 환자. 자네가 진단하고 응급 개복 들어갔던 거. 그 환자 지금 중환자실에서 상태 안 좋거든. 박태오가 그걸 자네 오진으로 몰고 있어. '검증되지 않은 인턴이 상급자 판단 없이 무리하게 개입해서 예후를 악화시켰다'고."
도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환자를 만졌을 때의 감각이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총알이 하행결장을 뚫고 후복막까지 파고든 궤적. 도현은 그걸 손으로 읽었고, CT 판독을 기다리다간 늦는다고 판단해 곧장 밀어붙였다.
"그 환자, 내가 안 건드렸으면 후복막 출혈로 두 시간 안에 죽었어요."
"그걸 증명할 수가 없잖아. 박태오는 지금 '왜 CT도 안 찍고 개복했냐'로 밀어. 결과가 나빠지면 절차 무시한 놈이 다 뒤집어쓰는 거야, 이 바닥은."
강민석이 도현의 어깨를 잡았다. 그 손이 도현의 어깨에 닿는 순간, 도현은 강민석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통증을 읽는 능력과는 상관없었다. 그냥 눈빛이 그랬다.
"솔직히 말해봐. 자네 어제 몇 명 만졌어. 그 손, 나 봤어."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두 시간 안에 세 명. 다 중증. 그 손으로 오늘 또 뭘 하려고 했어?"
"만지면 압니다. 그게 제일 빠르니까."
"빠른 게 아니라 자네가 부서지는 거잖아!"
강민석의 목소리가 튀었다. 그가 손을 떼고 회복실 안을 두어 걸음 서성였다.
"내가 마취 20년 했어. 통증이 뭔지 안다고. 근데 자네 손은 통증을 다루는 게 아니라 통증에 먹히고 있어. 진통제도 안 듣지? 내가 어제 자네 링거에 뭘 넣어도 손 떨림이 안 잡히더라고. 그건 약으로 되는 게 아니야."
도현이 강민석을 봤다. 이 사람은 이미 절반을 알고 있었다.
"12층 올라가서 뭐라고 할 거야. '손 대면 병이 보여요'라고 할 거야? 그럼 진짜 매장이야."
***
12층 심사위원회 회의실은 서늘했다.
긴 테이블 끝에 박태오가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심사위원 두 명. 윤재경은 없었다. 대신 박태오가 서류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도현을 올려다봤다.
"서도현 선생. 어제 새벽 03시 47분, 응급의료센터에 입실한 총상 환자에 대해 CT 촬영 없이 응급 개복을 시행한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영상 진단 없이 개복 결정을 내린 근거는?"
"신체 검진과 활력 징후요. 복부 팽만, 저혈압, 후복막 반발통. 출혈이 진행 중이라 판단했습니다."
"반발통은 주관적 소견이죠. 그걸로 개복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다발성 장기부전 초기 소견을 보이고 있어요. 인턴이 상급자 컨펌 없이 절차를 무시한 결과가 이겁니다."
박태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회귀 전, 도현을 매장한 손. 서류로 사람을 죽이는 손. 도현은 그 손을 기억했다.
"징계위 회부까지 갈 사안입니다. 인턴 신분으로 이 정도 무리를 저질렀으니—"
"과장님은 왜 안 계십니까."
도현이 말을 끊었다.
"윤재경 과장님이요. 이런 심사면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이건 과장님 결정이 아니라 박 선생님 개인의 판단입니까?"
박태오의 손가락이 멈췄다.
도현은 테이블 위로 자신이 준비해 온 종이 한 장을 밀었다. 회복실을 나서기 전, 강민석이 던져준 것이었다. 강민석은 아무 말 없이 그걸 도현의 손에 쥐여주며 "이거 필요할 거야"라고만 했다.
"수술 소견서입니다. 어제 새벽 개복했을 때, 총알이 하행결장을 관통하고 후복막 정맥총을 손상시켰습니다. 활동성 출혈량 시간당 400cc 이상. 만약 CT 촬영을 기다렸다면—성심의료원 야간 응급 CT 대기 시간 평균 38분이죠—환자는 촬영대 위에서 실혈사했을 겁니다."
"그건 자네 추정이고."
"수술 사진이 있습니다. 후복막 혈종 크기, 출혈 궤적. 그리고 여기."
도현이 종이 아래쪽을 짚었다.
"현재 중환자실 다발성 장기부전은 개복 때문이 아니라 초기 출혈성 쇼크 후유증입니다. 즉, 제가 늦게 열었다면 후유증이 아니라 사망 진단서를 쓰고 있었을 거란 뜻이죠. 이걸 '예후 악화'라고 부르시겠습니까?"
심사위원 한 명이 서류를 넘겨봤다.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박 선생님." 도현이 목소리를 낮췄다. "제 진단이 틀렸으면 저를 거세요. 근데 그 환자, 지금 살아 있습니다. 죽은 환자로 저를 걸 순 없으실 텐데요."
박태오의 얼굴에서 여유가 빠졌다. 그가 서류를 주섬주섬 챙겼다.
"…이건 오늘 마무리할 사안이 아니군요. 추가 검토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검토, 저도 좋아합니다."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향해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박태오가 낮게 내뱉었다.
"손 떨리던데."
도현의 발이 멎었다.
"아까부터 계속. 서류 밀 때도 손이 떨리더군요. 어디 아프십니까, 서 선생?"
도현은 뒤돌지 않았다.
"긴장해서요. 심사위원회는 처음이라."
문을 닫고 나오자 복도의 찬 공기가 목덜미를 스쳤다. 도현은 벽에 잠시 손을 짚었다. 손바닥이 유리창처럼 떨렸다. 박태오는 이미 그의 약점을 봤다. 다음엔 그걸 파고들 것이다.
***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이름표에 '이서린'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도현 선생님."
"누구시죠."
"오늘 12층에 부르셨던 거, 총상 환자 건이죠. 박태오 선생이 자주 쓰는 방식이에요. 결과 나쁜 케이스를 서열 낮은 사람한테 붙여서 없애버리는 거."
도현이 그녀를 봤다. 이 여자를 안다. 회귀 전, 이서린은 카르텔의 은폐를 파헤치다 침묵당했다. 그리고 도현이 죽기 직전, 그녀만이 유일하게 도현의 말을 들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기자가 병원 12층까지 어떻게 올라옵니까."
"3년 걸렸어요. 여기 올라오는 데."
이서린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렸고, 그녀가 먼저 탔다.
"삼 주 전 대동맥 박리 환자 심초음파 수치, 48에서 42로 바뀐 거 눈치채셨죠. 차트 회수당하기 전에."
도현의 눈이 좁아졌다. 그 얘기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그 병원에 하나가 아니에요, 선생님. 수십 건이에요. 조작된 임상 데이터. 원본은 연구동에 있고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했다. 이서린이 손으로 문을 잡았다.
"증거 없는 정의는 소음일 뿐이에요. 근데 선생님은 뭔가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남들이 못 보는 걸. 언젠가 그 눈이 필요할 거예요."
문이 닫혔다. 도현은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봤다.
***
당직실로 돌아왔을 때, 지우가 사물함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넘어갔어. 일단은."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운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어디 가."
"나 이번 주 응급실 로테 끝났어. 다음 주부터 흉부외과 돌아. 7층."
도현의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7층. 윤재경의 성역.
"지우야."
"응?"
말을 골랐다. 회귀 전에 하지 못했던 말. 지우의 등을 밀어냈던 그 모든 순간에 하지 못했던 말.
"…아까, 3번 베드 때. 너한테 안 물어본 거. 미안하다."
지우가 가방 지퍼를 잠그던 손을 멈췄다. 오래도록 도현을 봤다. 그 눈에서 서늘한 벽이 처음으로 얇아졌다.
"…처음이네. 너 사과하는 거."
"처음이지, 아마."
지우가 가방을 어깨에 멨다.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말했다.
"넌 몰라도 돼. 근데 나 너 처음 만난 거 아니야."
도현의 숨이 멎었다.
"뭐?"
"네가 회귀 전에도… 딱 지금처럼 그랬어. 손 떨면서, 다 자기가 옳다고, 다 밀어붙이고. 그래서 내가—"
지우가 입을 다물었다. 삼키는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무언가 더 나오려던 말이 목 안에서 멈췄다.
"됐다. 잊어."
문이 닫혔다.
도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어.
지우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회귀를 안다는 건가. 아니면—그냥 말버릇인가. 도현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복도 저편에서 지우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현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