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망치가 문짝을 두들겼다.

"한서율!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문 열어."

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너진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졌고, 아버지가 남긴 작업실 한가운데에 흰 천을 덮은 조각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는 천에 손을 올린 채 숨을 죽였다. 이 집을 지키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저 천 아래에 있는 것을 낯선 손에 넘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열라고. 야, 사흘 줬으면 됐지. 여기 등기 넘어온 거 몰라?"

박이 문틈으로 손전등을 들이밀었다. 빛줄기가 먼지 낀 공기를 갈랐다. 서율은 그 빛을 피해 조각 뒤로 물러섰다.

"내일까지 삼천 못 채우면, 이 집이고 뭐고 다 부순다. 아버지가 남긴 이 쓰레기 돌덩이도."
쓰레기 돌덩이. 그 말이 명치에 박혔다.

아버지는 이 돌 앞에서 죽었다. 완성하지 못한 채, 조각칼을 쥔 손이 대리석처럼 하얗게 굳어서. 의사는 원인 불명이라 했고, 협회는 조문조차 보내지 않았다. 한때 예술계와 이능계 양쪽에서 이름을 올리던 한씨 가문의 마지막이 그랬다. 조롱과 채무. 그게 유산이었다.

"안 열어? 좋아. 내일 새벽에 사람 데리고 온다. 아주 갈아버릴 거야."
발소리가 멀어졌다. 서율은 그제야 흰 천을 걷었다.

미완성의 인물상이 드러났다. 무릎을 꿇은 사람이 두 손을 하늘로 뻗은 형상. 손끝과 얼굴은 아직 거친 정 자국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이 얼굴을 끝내 새기지 못했다.
깨진 창으로 달이 들어왔다. 보름달이었다.

달빛이 조각의 등을 타고 흘러내리자,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깨선을 따라 실핏줄처럼 뻗은 미세한 선들. 별자리 같기도, 지도 같기도 한 문양. 서율은 손끝으로 그 선을 더듬었다.
"이런 걸 언제……."
말이 끝나기 전에, 손끝이 뜨거워졌다.

정확히는 뜨거운 게 아니었다. 달빛이 살갗 안으로 스미는 감각. 손등의 핏줄을 따라 은빛이 올라왔고, 문양이 그 빛에 응답하듯 잠깐 반짝였다. 서율은 손을 떼려 했지만 뗄 수 없었다. 무언가가 그의 손과 돌을 하나로 붙잡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창밖의 달이 달라져 있었다. 흰빛이 아니라 푸른빛. 시린, 물속 같은 파랑. 그 한가운데에 눈동자가 있었다. 사람의 것도 아니고 짐승의 것도 아닌, 세로로 긴 푸른 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율의 심장이 목까지 올라왔다.
"뭐야, 너—"

말을 삼킨 순간 눈동자가 좁혀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그의 등을 통해 손끝으로 밀려 들어왔다. 강물 하나가 통째로 몸을 통과하는 느낌. 서율은 무릎이 꺾였고, 손바닥이 조각의 뻗은 손과 맞닿았다.
빛이 터졌다.

미완성의 얼굴, 새겨지지 않았던 그 부분에서 정 자국이 저절로 매끈해졌다. 눈이 파였고, 콧날이 섰고, 입가에 희미한 선이 잡혔다. 아버지의 손이 멈춘 자리를, 서율의 손이 이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손이 알아서 움직였다.
조각의 뻗은 손끝에서 은빛 물방울이 맺히더니, 허공으로 떠올랐다.
떠오른 물방울은 새의 형상으로 굳었다. 손바닥만 한 은빛 새. 그것이 날개를 폈다. 돌이 날았다.

"허……."
서율은 뒤로 넘어졌다. 은빛 새가 그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다. 실체였다. 손을 뻗자 차가운 대리석의 촉감이 손끝을 스쳤고, 새는 그의 손짓을 피해 창틀에 내려앉았다. 살아 있는 것처럼.

그 순간 왼손 손등이 뜨끔했다.
내려다보니, 새끼손가락 아래 손등 살갗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 만져보니 딱딱했다. 사람 살이 아니라 돌의 감촉. 눌러도 아프지 않았고, 감각도 없었다.
아버지의 굳은 손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잡았던, 차갑고 단단하던 손.

"이거였어……?"
서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버지를 죽인 게 이거였나. 조각을 실체로 만들 때마다 몸이 돌로 변하는 것. 재능의 대가가 아니라 재능의 형벌.
창밖을 보니 푸른 달은 사라지고 없었다. 평범한 흰 보름달만 걸려 있었다. 방금 그것이 꿈이었나 싶었지만, 창틀의 은빛 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

날이 밝기 전, 서율은 새를 헝겊에 싸서 품에 넣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박이라는 자에게 보이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가 예상보다 일찍 왔다는 것이다.

"어이. 밤새 도망갈 준비 했나 본데."

박이 인부 둘을 데리고 들어섰다. 한 명이 대형 해머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가 미완성 조각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것부터 부숴. 고철값이라도 나오나 보게."

"잠깐."
서율이 앞을 막았다. 심장이 뛰었다. 이건 내 판단이 옳은가—누가 이 조각의 가치를 인증해줬나. 아무도 없었다. 협회는 그를 계승자로 인정한 적 없고, 세상은 한씨 가문을 몰락한 사기꾼 취급했다. 그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나서야 하는데, 증명서 한 장 없는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망설임을 박이 비집고 들어왔다.

"자격 없는 놈이 자격 있는 척은. 네 아비도 그랬지. 대단한 예술가인 척, 대단한 이능자인 척. 결국 빚만 남기고 뒈졌잖아."
"닥쳐."
"뭐?"

인부가 해머를 들어올렸다. 조각의 얼굴을 향해. 아버지가 끝내 새기지 못했던, 그리고 어젯밤 서율의 손이 완성한 그 얼굴을.
"하지 마."
서율의 손이 저절로 뻗어나갔다. 어젯밤과 같았다. 손끝이 뜨거워지고, 왼손 손등의 하얀 반점이 시렸다.

품속의 은빛 새가 헝겊을 뚫고 튀어나왔다.
"으악!"
인부가 비명을 질렀다. 새는 그의 손목을 부리로 쳤다. 돌의 무게가 실린 타격이었다. 해머가 손에서 빠져 바닥에 떨어졌고, 콘크리트가 쩍 갈라졌다. 새는 다시 날아올라 두 번째 인부의 뺨을 스쳤다. 살갗이 베였고 피가 맺혔다.

"뭐야 저거! 뭐냐고!"
박이 뒷걸음질쳤다. 은빛 새가 그의 눈앞에서 날개를 폈다. 대리석 깃털이 아침빛을 받아 번쩍였다.
"돌이…… 돌이 날아……."

"나가."
서율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 자신도 놀랄 만큼.
"내 집이야. 아직은. 나가서 다시는 저 돌을 쓰레기라고 부르지 마."

새가 박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박은 인부들을 붙잡고 문밖으로 튀어나갔다. 트럭 시동 거는 소리, 타이어 긁는 소리가 이어졌다. 서율은 문틀을 붙잡고 서서 그들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
은빛 새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다. 왼손 손등의 하얀 반점이 어제보다 조금 커져 있었다. 손톱 두 개 크기. 힘을 쓴 만큼 굳는다. 이 계산은 명확했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왔다. 처음이었다. 몰락한 뒤로, 누군가를 물러서게 만든 것은.
"아버지."
서율은 조각을 돌아봤다.

"이게 우리 힘이었어요?"
*
소문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퍼졌다. 박이 어디서 떠들고 다녔는지, 마을 사람들이 폐가 앞에 몰려들었다. 손가락질과 수군거림.

"저 집 아들이 무슨 사술을 부린다더라."
"협회에 넘겨야지. 저런 건 등록도 안 된 놈이잖아."
"한씨 가문? 망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조각한다고 설치나."
정오 무렵, 검은 밴 두 대가 도착했다. 옆면에 은빛 별과 초승달을 겹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별조각 협회. 서율은 그 문장을 알아봤다. 아버지의 유품 상자 속 오래된 서류에서 본 것이었다.

내린 사람은 넷.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앞장섰고, 뒤따르는 이가 은빛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손바닥 크기의 검은 돌이 들어 있었다. 표면이 젖은 것처럼 빛났다.
"한서율 씨."
앞장선 남자가 신분증 같은 것을 폈다.
"미등록 이능 사용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영물 인증을 진행하겠습니다. 협조하시죠."
"인증이요?"

"당신이 진짜 달빛 조각가라면, 이 달빛석이 반응합니다. 아니라면……."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기꾼 하나 정리하면 되고."
구경꾼들이 목을 뺐다. 서율은 상자 속 검은 돌을 봤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거다. 이걸로 증명하면 된다. 저 사람들이, 이 마을이, 온 세상이 나를 인정하게 만들 수 있다. 아버지의 이름도.
그 생각이 그를 조바심 나게 했다. 어서 반응해라, 어서.
"손을 대세요."

서율은 손을 뻗었다. 검은 돌에 손끝이 닿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
돌은 차가웠고, 어둡고, 죽어 있었다. 어젯밤 조각을 만졌을 때의 그 뜨거움도, 은빛 새를 날린 그 감각도 없었다. 서율은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반응하라고, 제발.
돌이 반응했다.

그러나 그가 바란 방향이 아니었다. 검은 표면에 붉은 균열이 번지더니, 상자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터져 나왔다.
삐— 삐— 삐—
"부적합."
남자가 상자를 읽었다.
"판정: 자격 없음. 인증 거부."

"뭐라고요?" 서율의 손이 상자를 붙잡았다. "그럴 리 없어. 나 어젯밤에 분명히—"
"보십시오, 여러분." 남자가 구경꾼들을 향해 돌아섰다. 목소리가 낭독하듯 높아졌다. "달빛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자는 달빛 조각가가 아닙니다. 어디서 배운 잡술로 사람들을 홀린 겁니다. 한씨 가문의 몰락이 왜 정당했는지, 오늘 협회가 다시 확인해드립니다."
"거짓말!"
"봤죠? 붉은 균열은 사칭자에게만 나타납니다."

"어쩐지. 사기꾼 맞네."
"아비나 자식이나."
수군거림이 야유로 바뀌었다. 누군가 돌멩이를 던졌다. 서율의 어깨를 맞고 떨어졌다. 그는 손을 내려다봤다. 왼손 손등의 하얀 반점. 이게 증거인데. 어젯밤의 새가 증거인데. 그러나 새는 지금 작업실 안 창틀에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말은 아무 무게도 없었다.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는 증명할 방법조차 없었다. 이 모순이 그의 목을 조였다.
"내가—"

내가 진짜다, 라고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작업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우웅.
낮고 무거운 진동. 서율은 돌아봤다. 미완성 조각이 떨고 있었다. 받침대가 흔들렸고, 바닥에 실금이 갔다.
"뭐, 뭐야."

협회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진동이 커졌다. 어젯밤 서율의 손이 완성했던 얼굴 부분—눈, 콧날, 입가—그 매끈해진 표면에 다시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완성됐던 것이 도로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인증이 그를 부정한 순간, 조각 자체가 그 판정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창틀의 은빛 새가 날카롭게 울었다.

"손 떼! 다들 물러서!" 협회 남자가 상자를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검은 달빛석의 붉은 균열이 조각의 진동에 맞춰 함께 번지고 있었다.

서율은 작업실로 뛰어들었다. 조각의 뻗은 손끝, 어젯밤 은빛 새가 태어났던 그 자리에서, 미세한 문양이 다시 빛을 내고 있었다. 별자리 같은, 지도 같은 그 선들이. 그리고 그 빛이 스러질 때마다 조각의 한쪽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안 돼—"

서율이 두 손으로 조각을 붙잡았다. 손등의 반점이 순식간에 번져 손목까지 하얗게 뻗어 올라왔다.

조각은 멈추지 않았다. '미완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완성인 채로 무너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형상이, 그의 눈앞에서.
"이게 왜…… 왜 지금—"

붉은 균열과 은빛 문양이 뒤엉킨 채, 돌이 서율의 손안에서 산산이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