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폐허가 된 세가의 우물 밑에서, 소년은 붉게 우는 검 한 자루를 건져 올렸다.

멸문당한 남궁세가의 폐허. 남궁현에게 그곳은 어제까지만 해도 지겹도록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오늘, 공기의 결이 달랐다. 살갗에 닿는 바람 한 줄기까지 낯설게 곤두섰고, 그 낯섦은 분명한 예감이 되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가문을 멸한 혈교에 대한 십 년의 복수 — 그것이 눈앞에 던져진 순간, 남궁현의 심장이 크게 한 번 요동쳤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못 본 척 돌아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물러설 생각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남궁현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여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렇게 첫걸음이 놓였다. 되돌릴 수 없는 종류의 걸음이었다. 멸문당한 남궁세가의 폐허의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동안, 남궁현는 자신 앞에 펼쳐질 길의 무게를 아직 절반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제의 삶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날 밤 — 모든 것을 뒤흔들 첫 번째 이변이 남궁현를 찾아왔다.

첫 화목차마지막 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