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고립된 첫날 밤, 305호의 벨이 울렸다. 삼십 년째 비어 있는 방이었다.
사람들은 설악의 오래된 산장 호텔를 스쳐 지나가는 배경쯤으로 여겼다. 정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운명은 언제나 가장 평범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날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으리라는 사실을, 그때의 정묘는 알지 못했다.
삼십 년 전 실종 사건과 똑같이 재현되는 겨울 — 그것이 눈앞에 던져진 순간, 정묘의 심장이 크게 한 번 요동쳤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못 본 척 돌아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그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조건은 하나야."
정묘는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떨림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끝까지 간다. 중간에 그만두는 건 없어."
그 말에 상대가 처음으로 웃었다. 서늘한, 그러나 흥미로 번들거리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첫걸음이 놓였다. 되돌릴 수 없는 종류의 걸음이었다. 설악의 오래된 산장 호텔의 하늘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동안, 정묘는 자신 앞에 펼쳐질 길의 무게를 아직 절반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제의 삶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주머니 속에서, 있어서는 안 될 것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