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국내성 귀족 연맹
오부(五部) 대가들의 느슨한 담합체. 수장은 대사자 을보루. 병력·창고·혼맥을 쥐고 있으나 반역은 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는 '기다림'이다. 태왕은 서른넷, 세자는 병약하다. 평균 수명을 계산하면 십 년 안에 판은 저절로 넘어온다. 따라서 연맹의 전략은 천도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천도를 '지연시켜 태왕의 수명 안에 못 끝내게' 하는 것. 인력 징발 지연, 곡물 가격 조작, 예법 논쟁으로 시간을 벌고, 문서를 다루는 서기들을 매수해 기록 자체를 늦춘다.
기타
기록의 사회 규칙
고구려 조정에서 문서는 곧 권한이다. 관등 소형(小兄)의 하급 서기는 원본을 볼 수 있으나 서명할 수 없다. 단정문의 책임은 상급자가 지고, 하급 서기는 '~라고 전한다', '일설에는'으로 문장을 흐려 자기를 보호한다. 이 관행 덕에 우여문은 살아남았고, 동시에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위서 조작죄는 대역에 준해 다스려 본인과 필사본을 함께 태운다. 그래서 어전 대질은 재판이 아니라 문장 하나의 진위를 겨루는 결투에 가깝다.
힘의체계
사관의 붓과 『유기』
고구려 사서 『유기(留記)』에 우여문이 적은 문장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규칙은 셋. 첫째, 자기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만 문장으로 성립한다. 소문·추측·미래는 붓이 먹을 먹지 않는다. 둘째, 한 줄을 쓸 때마다 전생에서 외운 연표 한 항목이 영구히 지워진다. 광개토왕비 건립 연도, 백제 왕의 재위, 북위 사신의 이름이 순서 없이 사라진다. 셋째, 거짓을 쓰면 그 문장은 후대 검증에서 위서로 판정되어 붕괴하고, 그 줄에 이름이 적힌 자의 운명이 정반대로 뒤집힌다. 살린다고 쓴 자가 죽고, 벌한다고 쓴 자가 출세한다. 그러므로 붓의 최대 무기는 힘이 아니라 '무엇을 직접 보러 갈 것인가'라는 발품이다.
세계관
427년의 국내성과 천도 논쟁
압록강 중상류의 산성 도시 국내성은 사백 년간 왕과 귀족이 함께 늙어온 곳이다. 성벽은 두껍고 골짜기는 좁고, 무엇보다 귀족의 창고가 성 안에 있다. 태왕은 남쪽 대동강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려 한다. 표면 명분은 남진과 곡창, 실제 의도는 국내성 문벌의 뿌리를 흙째로 떠내는 것. 반대파의 논리는 부패가 아니라 국방이다. 북에 북위, 서에 유연, 평지 도읍은 방어에 불리하다. 조정 회의는 매번 반대파의 승리로 끝나고, 그럼에도 흐름은 남으로 흐른다. 이 도시의 모든 대화는 두 겹이다. 겉은 예법, 안은 계산.
지역
대동강 임시시전(市廛)
천도의 진짜 승부처. 성벽보다 시장을 먼저 열자는 우여문의 농담이 국책이 되어 만들어진 강변 장터. 소금·철·베가 오가고 남쪽 유민과 상인이 몰려 사람이 먼저 도읍을 만든다. 여기서 발생한 인구와 세수는 '이미 도읍이 생겼다'는 물증이 되어 조정 논쟁을 무력화한다. 반대파는 이곳을 무허가 잡시로 규정해 철거를 시도하고, 우여문은 시전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보기 위해' 계속 남으로 내려간다.
세력
태왕의 서기방(書記房)
장수왕이 직접 관리하는 소규모 기록 부서. 명목은 『유기』 편수, 실제는 검열청이다. 왕은 붓의 정체를 처음부터 간파했고, 우여문을 신하로 대우하지 않는다. '필기구'라 부른다. 왕이 지정한 문장만 쓸 것, 왕이 보지 않은 것을 보러 가지 말 것, 쓴 것은 왕이 지울 수 있을 것. 이 세 조항이 서기방의 전부다. 소속원은 사자 하나, 서기 셋, 감시용 근시(近侍) 둘. 서로를 감시하도록 배치되어 있어 우여문에게 진짜 동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