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왕의 십 년 더
글 고구려산낙지
관심 0—유효열람 010화
412년 봄, 국서방 최하급 사관 연서는 자기 사초에 십 년 뒤의 문장이 먼저 적히는 것을 본다. 첫 줄은 '태왕이 이 가을에 눕는다'였고, 마지막 줄은 '사관 연서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였다. 연서는 두 번째 줄을 고치기 위해 첫 줄부터 손댄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회의록을 쓰는 자만이 가진 권력 — 누가 무엇을 먼저 말했는지 순서를 정하는 힘. 연서는 강경 남진파의 발언을 회의록 끝으로 밀고, 조운 노선을 고치자던 늙은 창고 관리의 한마디를 맨 앞에 올려놓는다. 농담처럼 시작된 그 한 줄이 두 달 뒤 국가 조세 개편안이 되고, 태왕의 원정 일정이 한 계절 늦춰진다. 가을이 지나고 태왕은 눕지 않는다. 문제는 그 대가였다. 연서가 삼 년간 써온 국내성 화재 기록 한 권이 백지로 돌아가고,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아무도 그들을 애도하지 않는다. 연서 혼자만 기억한다. 그리고 십 년을 더 얻은 태왕은 멈출 생각이 없다. 정복은 계속되고 국고는 마르고, 미래 사초에는 새 문장이 돋아난다. '이 왕조는 태왕의 장수로 인해 기울었다.' 연서는 붓을 들고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왕을 살릴 것인가, 나라를 살릴 것인가.
#광개토대왕#정치만담#나비효과#사관의 주석#연호 정치
회차 목록 전체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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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이 이 가을에 눕는다
2026. 08. 07. · 6,64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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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순서는 붓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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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로 돌아간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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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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